<신보영의 시론>尹 '처칠의 언어' 배워야 한다

기자 2022. 8. 1. 11: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보영 국제부장

양극화·분열 속 민주주의 위기

‘리더다운 리더’ 사라진 세계

올바른 언어가 위기 극복 수단

英 처칠의 ‘짧고 친근한 단어’

지지율 하락세 尹 교훈 삼아야

국민 접촉 방안도 재검토해야

정치인에게 ‘말(言)’은 자신을 알릴 최고의 무기이고, 정치적 소명을 실천할 최적의 수단이다. 행동하기 전까지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말’뿐이다. 정치가 서로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을 설득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정치인의 말은 정치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려면 먼저 발언에 신뢰가 가야 하며, 화자(話者)에 대해서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에게 공약 이행 여부와 함께 도덕성을 따지는 이유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인 윈스턴 처칠(1874∼1965) 영국 총리는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위기 속에서도 침착했으며,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솔직했다. 처칠 총리는 1940년 5월 13일 취임 후 첫 하원 연설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 이외에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상황을 진솔하게 고백했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처칠 총리가 얼마나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도 잘 묘사돼 있다. 한계와 조건이 불리한 위기 상황에서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바로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처칠 총리는 “짧은 표현이 최상이며, 익숙한 표현이면 금상첨화(Short words are best and the old words when short are best of all)”라고 했다. 쉽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6년 미국 카네기멜런대 언어기술연구소(LTI)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역대 대통령 연설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정도의 학력이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또, 혼동된 메시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단어가 수위와 상황에 적합해야 하며, 말실수(gaffe)는 피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세계에는 이렇게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는 리더가 사라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말실수’가 잦은 것으로 유명하다. 차분하면서도 솔직한 화법으로 신뢰를 받았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올해 은퇴했으며, 이탈리아에서 드물게 안정적 리더십을 발휘했던 마리오 드라기 총리도 연정 내분으로 최근 사임했다. 글로벌 상황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7월 말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 제목을 ‘우울하고, 더 불확실한(Gloomy and more uncertain)’이라고 붙일 정도로 악화일로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리더다운 리더가 없는 자유 세계(Leaderless free world)”라고 표현할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어 역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지난 5월 취임사의 핵심 단어인 ‘반지성주의’는 너무 어렵다. 경찰의 인사 유출 논란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대한 반발을 윤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이 “국기 문란” “쿠데타 시도” 등으로 규정한 것은 과하다. 중간 수위의 단어·표현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에게 보낸 문자 속 “내부 총질”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검찰 지상주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고 갸우뚱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취임 80일 만에 지지율이 28%까지 추락한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위기다. 대다수 나라에서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갈라치기’가 성행한다. 민주주의 선도국인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도 30%대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대중을 설득하는 수단은 무력이 아니라 언어이기 때문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필립 콜린스는 최근 국내에서도 발간된 ‘블루 스퀘어:세상을 외치다’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는 시대에 위대한 연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다만, 지도자와 정치인의 언어가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가 더 필요하다. 처칠 총리가 강조한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반론은 평범한 유권자와의 5분 대화”. 취임 100일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윤 정부와 여당이 벌써 초심을 잊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일이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