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민간임대사업자를 활용할 생각이 여전하다면
새 정부가 신생아 다루듯 조심스레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있다. 투자심리를 자극해 집값이 더 오르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예들 들어 분양가 상한제는 물가 상승을 겨우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만 손질됐다. 이 때문에 여전히 알짜 분양단지는 후분양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큰 가치로 두고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한 번에 뒤엎을 급진적인 정책 카드는 손 안에 없다고도 했다. 뭔가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그간 뒤틀린 제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새 정부가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애매한 것이 하나 있다. 등록임대사업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거다.
정부는 최근 상생임대인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4년간 집을 내주고 시세대로 보증금을 받지 않는 대신, 임대인이 2년간 거주한 것으로 계산할 수 있다. 임대인은 그 집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고도 매도할 때 양도차익의 12억원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제도는 전셋값이 급등할 것을 우려해 나온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이 제도는 1가구 1주택자를 기준으로만 적용된다. 1가구 1주택자가 거주기간을 채우러 세입자를 내보내는 것만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주택자도 상생임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양도소득세 비과세 특례는 주택이 한 채인 사람만 적용받을 수 있어 거의 무용지물이다. 임대주택 공급자는 통상 다주택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셋값 안정에 큰 효과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민간임대사업자들은 이런 상황이 황망하기만 하다. 전 정부에서 임대차 2법 통과와 맞물려 자리를 잃었던 것처럼 상생임대인 제도 도입으로 자리 회복의 꿈을 버려야 하는지도 고민 중이다.
민간임대사업자들은 세금 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직전 보증금의 연 5% 미만으로만 보증금을 증액할 수 있고 전세보증보험에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이 덕분에 민간임대사업자의 집을 얻은 임차인은 상대적으로 낮은 부담을 안고 지냈다.
유경준 국민의 힘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기초로 발표한 ‘등록임대주택과 일반 주택의 임대료 차이 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서울 민간 등록임대아파트 전셋값은 3억8472만원이었는데, 일반 아파트의 전셋값은 평균 6억7792만원이었다. 약 두 배 차이다.
월세도 마찬가지다. 2022년 6월 기준 서울 민간 등록임대아파트의 평균 월세 보증금은 1억1222만원으로 시중 일반 아파트의 월세 보증금인 2억399만원보다 44.9% 저렴했고, 평균 월세는 민간 등록임대아파트는 87만원, 시중 일반 아파트의 월세 평균인 126만원보다 30% 가량 낮았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민간임대사업자를 국가가 하지 못하는 임대주택 공급을 돕는 자로 봐야한다고 언급할 뿐, 눈에 띄는 조치는 않고 있다. 민간임대사업자를 제 위치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예고만 여러 번이고 전 정부가 만들어 둔 왜곡을 아직 바로잡지 않고 있다.
아파트 임대사업자의 강제말소는 현재 진행 중이다.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임대인이 거주할 수 없는 주택이기에 주택 수에서 계산을 제외해준다는 조항은 고무줄이다. 종합부동산세는 제외하지만 재산세·취득세에서는 포함하고, 그마저도 임대사업자 등록 시기마다 그 적용이 달라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이 일일이 다 알 수도 없다. 이에 임대사업자 스스로가 세금이 부과될 때마다 담당자에게 법 조항을 들이밀어 따져야 한다.
민간임대사업자들은 종종 스스로를 문재인 정부가 낳은 ‘사생아’라고 부른다. 그 만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나서 “피치 못하게 다주택자를 해야 하는 분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해서 세금 혜택을 받으시라”라며 적극 장려한 제도가 어느 순간부터 ‘없어져야 할 적폐 제도’로 꼽혔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임대시장 안정화에 어느 정도로 기여할 것인지 그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 임대차 2법을 폐지할 정도로 손질하고 상생임대인 제도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민간임대사업자 제도를 활용할 것인지를 먼저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민간임대사업자를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면 그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2020년 7·10 대책을 언급하며 국토교통부 담당자는 비공식적으로 “소급적용이란 무리수를 뒀다”고 했다. 무리수가 낳은 불신을 바로잡는 데에도 골든타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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