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의 무덤' 그곳에 새들은 머리를 찧는다 [헬프! 애니멀]
조류충돌방지법 '선언적' 의미에 그쳐 .. 민간 참여 유도해야
유리 인공 구조물에 '빛공해'까지 새를 위협하는 도시 환경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그들 눈에 유리벽은 투명한 하늘과 같았다. 평소처럼 비행했을 뿐인데 더는 날지 못하게 됐다. 유리로 된 인공 구조물이 조류에게는 가로지르고 싶은 하늘처럼 보였다. 인간이 만든 유리창은 무수히 많은 조류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새들은 중력을 버티기 위해 평균 36~72km 시속으로 비행한다. 비행하던 와중 유리 인공 구조물에 부딪히면, 심각한 충격이 두개골과 몸체에 가해져 대개 뇌손상으로 죽게 된다. 운 좋게 살아남았더라도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부리가 부러져 먹이활동을 못하게 되거나 눈이 손상돼 자연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새들은 맹금류를 제외하고 천적을 피하기 위해 눈이 얼굴 정면이 아닌 측면에 있어 시야가 좁다. 유리 인공 구조물을 식별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국내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조류가 최소 연간 800만 마리다. 환경부가 지난 2019년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연간 800만 마리가 폐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에만 2만 마리가 부딪혀 폐사한다는 것이다.
국립생태원은 “일부 조류의 경우 인공조명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주변을 맴돌다 죽는 경우가 있다”며 “일례로 미국과 캐나다에선 주정부 주도하에 새들이 이동하는 봄·가을에 유리통창이 설치된 건물의 조명을 일정 시간 소등하는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캠페인은 빛 공해가 조류 폐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국립생태원은 전했다.
조류충돌방지법, 통과 됐지만 ‘민간규제’는 맹점
2022년 5월 29일, ‘조류충돌 예방·저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일명 조류충돌방지법은 국가기관 등이 투명 유리창 등 인공 구조물에 조류가 폐사하는 것을 저감토록 하는 첫 법적 근거다. 이 법에 따라 환경부는 인공 구조물에 의한 조류 폐사 실태를 조사할 수 있게 됐고, 필요 시 공공기관의 장에게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또 환경부 장관은 특정 지역에서 조류의 인공 구조물 충돌 폐사가 심각하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공공기관장에게 시정요청을 할 법적 권한을 갖게 됐다. 시정을 요구받은 공공기관 역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해당 조치에 따라야만 한다.
문제는 ‘공공기관’에만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체 유리 인공 구조물에서 민간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80%인 점을 고려할 때 유의미한 조류 충돌 저감을 이끌어내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결국 조류 충돌 저감 효과를 높이려면, 민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올해 신설된 조류 충돌 저감 조치 이행에 따른 국가 지원금(일부 혹은 전부 지원) 확대 적용이 필요하다. 현행 법률은 공공기관에 한해 비용 보전을 명시하고 있다.
조류 충돌 방지하려면 ‘5x10 규칙!’
국립생태원은 투명한 유리창에 새들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선 상하(5cm)와 좌우(10cm) 간격 이내로 특정한 문양을 넣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규칙만 지키면 어떠한 무늬든 새들이 유리창을 장애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현선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아직 관공서나 동물 관련 시설에조차 조류충돌 저감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곳이 대다수”라며 “조류충돌 희생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커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파주시 보광로 일대 도로 방음벽 조류충돌방지스티커 부착 봉사활동에 참여한 한 시민은 “이렇게 낮은 방음벽에도 새들이 부딪쳐 죽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도심 속에서도 유리로 된 건물이나 투명한 방음벽을 자주 보는데 저감 조치가 필수적으로 시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해당 투명방음벽은 동점산업단지를 조성할 당시 진입로와 그 아랫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도록 설치돼 마을 건너편 하천으로 이동하려는 새들에게 죽음의 장벽이었다. 태백시에 따르면 스티커를 부착한 뒤 조류 폐사체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김화빈 (hwa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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