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웹, 과학을 수호하는 관료[김우재의 플라이룸](30)

2022. 8. 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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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망원경의 이름이 된 제임스 웹은 우주과학자도, 기술자도 아닌 공무원 출신의 나사(NASA) 국장이었다.

미국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한국사회가 백척간두에 선 지금도, 한국 매체들은 혼탁한 정치뉴스로 대부분의 지면과 방송시간을 채운다. 그나마 좋은 소식을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과학기술과 관련된 미담들이다. 최근 허준이 교수의 필즈메달 수상 소식이 좋은 사례다.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소식 대부분은 과학기술 영역에 속해 있다.

우주개발기술은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정책의 수립과 관료의 혁신은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과학기술은 정치와 경제에 종속된 하부영역일 뿐이다. 한국 모든 뉴스의 마지막은 스포츠와 연예뉴스가 장식한다. 과학기술 분야의 일상적인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는 일은 없다. 한 사회가 보여주는 가치의 우선순위는 해당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국사회는 과거와 현재의 정치·경제적 사건들을, 미래의 과학기술적 비전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임스 웹과 누리호 7월 11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첫 우주사진을 직접 공개했다. 그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 선언했고, 이 성과가 “우리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무엇을 더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라는 미국 과학기술의 성과를 통해 자국의 위상을 드러내고, 국민에게 미국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줌과 동시에 미국의 미래세대에 하나의 공통된 꿈을 심어주려 한 셈이다. 미국의 인터넷은 제임스 웹의 은하사진 밈으로 아직도 뜨겁다.

미국과 중국이 화성을 두고 군비경쟁을 벌이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민간우주선 사업에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세상에서 한국 누리호의 작은 출발은 하찮아 보일지 모른다. 미국과 소련이 달착륙 경쟁을 벌이던 시기에 한국은 식민지를 거쳐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분단 이후에도 한국의 미사일 발사 기술 개발은 미국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런 국제정치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고 누리호의 발사를 바라보면, 미국처럼 엄청난 국민적 지원도 없이 여기까지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을 이끌어온 연구원들의 노력이 새삼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누리호 발사 현장은 미국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사진보다 더 거대한 역사적 이벤트가 돼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 자리에 가지 않았고, 누리호의 성과를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지도 않았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자 그제야 항공우주연구원에 내려가 삼계탕과 전복죽으로 연구원들의 노고를 치하했을 뿐이다. 그는 우주의 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제임스 웹, 공무원의 과학기술 미국과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비교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우리는 미국을 이길 수 없다. 규모의 경제가 돼버린 현대의 과학기술 국가경쟁력은 국력과 비례한다. 따라서 한국의 과학기술은 결코 단시간에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과 과학기술관료의 수준은 다르다. 우리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없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유지할 연구자금이 부족하지만, 과학기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이끄는 정책과 관료를 당장 보유할 수 있다. 우주개발기술은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정책의 수립과 관료의 혁신은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주망원경의 이름이 된 제임스 웹은 우주과학자도, 기술자도 아닌 공무원 출신의 나사(NASA) 국장이었다. 그는 트루먼 행정부에서 관료로 임용된 이후 기업을 전전하다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1961년 나사 국장에 임명된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면, 국회의원 비서로 이력을 시작해 재무부 등에서 국방 관련 예산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항공우주연구원장이 된 셈이다.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는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낙하산으로 나사의 국장이 된 공무원이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이 허블처럼 과학자의 이름을 가진 우주망원경의 후속작이자 인류역사상 최대 프로젝트에 동원됐다면 마땅히 모두가 동의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1961년은 미국이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로 시끄럽고, 유리 가가린의 우주 비행으로 충격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제임스 웹을 나사 국장으로 임명한 이유를 바로 이런 상황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 우주 경쟁은 단순히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아니라 두 국가의 운명과 자존심을 건 국제정치적 상황이었다. 제임스 웹은 과학기술자 출신은 아니었지만, 이런 대통령의 의도와 우주개발의 국제정치적 맥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관료였다.

그리고 그의 이런 배경은 우주개발에 수백조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미국 정부에 대한 국회와 여론의 공격으로부터 나사를 보호하는 데 탁월하게 쓰였다. 제임스 웹은 특유의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나사의 아폴로계획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나사의 엔지니어들을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했다. 동성애에 대한 비난으로 논란이 일긴 했지만, 나사의 엔지니어들이 제임스 웹의 이름을 수백조원짜리 과학기술사업에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나사의 정치적 우산이 돼준 신뢰할 만한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과학기술관료의 수준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이 임기가 끝난 상황에서 10박11일의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는 뉴스가 보인다. 그는 ‘한·유럽 과학기술학술대회(EKC) 참여와 독일 함부르크, 스웨덴 스톡홀름 연구현장 탐방’을 목적으로 출장을 떠났다고 변명하지만, 연구원이 아닌 행정직원 2명과 출장을 떠났다. 임기가 끝나고 차기 원장 선임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유럽으로, 그것도 직원들과 떠난 출장을 노조와 언론이 전형적인 외유성 출장으로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는 기관평가에서 ‘보통’을 받아 연임불가 판정을 받은데다 임기 중엔 순창군수 출마를 하겠다며 노골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인 인물이다.

나사 국장으로의 경험을 끝내면서, 제임스 웹은 “우주 탐사의 행정과 경영”이라는 팸플릿을 작성했다. 이 팸플릿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NASA는 지금까지 민간 우주 프로그램과 관련된 행정적 문제를 솔직하고 유능한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려면, 지금까지 요구됐던 것보다 훨씬 더 지속적인 관심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공공과 민간 모두, 기술 기반의 대규모 조직 및 관리 영역보다 더 혁신이 필요한 곳은 없습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아직 먼 미래지만, 제임스 웹은 당장 가능한 미래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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