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손배소송은 어찌해야 하나
2022. 8. 1. 09:22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손배가압류가 '지워버린 것들'
지워진 법과 원칙 손배가압류로 ‘불법파업’을 멈추겠다는 발상은 첫째, 파업이 불법이어야 하고 둘째, 파업이 모든 갈등상황의 원인일 때나 가능한 발상이다.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판단을 받은 바 없고, 파업이 갈등 원인도 아니다. 대통령이 주장한 ‘법과 원칙’에 따라서도 파업을 함부로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애초에 노동권 행사는 헌법이 보장한 합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손배가압류 소송은 ‘노동권 행사가 아닌 행위’에 대해서만 제기돼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6월 30일 ‘손잡고’는 1989년부터 최근까지 제기된 손배소 중 197건의 소송기록을 아카이브로 정리해 공개했다. 쟁의행위 사유별로 나눠보면 단체교섭·단체협약 관련 사안이 82건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파견,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 등 회사의 불법과 관련한 사안이 70건이었다. 해고 관련 사안은 43건, 집회·시위 관련 사안은 41건으로 집계됐다. 대다수 쟁의행위가 노동권 행사가 부정됐을 때 발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노동권 행사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은 어땠을까?
전체 150건의 1심 법원 판단만 놓고 보면 회사가 오롯이 승소한 사건은 11건으로 회사가 패소한 사건(37건)보다 적었다. 이것만으로는 사법부가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폭넓게 보장해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법원이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정당하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한 경우는 1건에 그쳤고, 나머지 36건은 회사의 입증이 불충분하다고 본 경우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1심 판단의 60% 이상(93건)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었다. 회사도 쟁의행위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보고 노동자들의 배상책임을 일부 제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노동자들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임금 등 근로조건과 관련 없는 쟁의행위로 분류돼 배상 책임을 지는 경우가 65건으로 가장 많았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 원청을 상대로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벌였다가 손해배상 책임을 진 바 있다. 쟁의행위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절차나 수단이 정당하지 않다고 본 경우도 40건에 달했다. 절차를 다 지켜도, 시설물 파손 등의 손해가 있을 경우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총파업 등 집회참가나, 사업장 내 집회, 1인 시위 등도 면책권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8건 있었다. 물리적 손실이 없었더라도 회사 측에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본 판결도 27건에 달했다. 사실상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면책권이 발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노동권 행사라고 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한 협소한 범위 내에서만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판례가 쌓이면서 회사는 이제는 비용을 들여 소송을 청구하는 수고 없이 ‘손배소를 제기하겠다’는 위협만으로 노사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지워진 삶 헌법상 노동3권의 출발점은 단결권이다. 개인에게 부여된 기본권이지만 개개인이 행사할 수는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운다.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지게 된 개인은 회유와 협박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는 소송기록에서도 나타난다. 197개 사건 중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187건에 달했다. 이중 34건은 회사의 요구사항을 노동자가 수용하는 조건으로, 회사가 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회사는 희망퇴직이나 노조탈퇴,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포기 등을 요구했다. 반성문이나 대자보를 쓰도록 요구한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조건을 받아들여 피고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해도 전체 손해배상 금액은 줄지 않는다. 회사의 회유에 응해 떠난 사람은 혼자 지옥을 탈출했다는 죄책감을 떠안고, 남은 사람들은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노동자들은 소송기간 내내 거액의 손배소송을 내세운 회사의 ‘인간성 시험’마저 견뎌야 한다.
그 과정도 지난하다. 1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26개월이 걸렸고, 최장 84개월이 걸린 소송도 있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은 이 기간 동안 ‘피고’로 살아야 한다.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2019년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과 손잡고, 와락이 공동으로 조사한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236명 첫 실태조사’ 결과, 손배소송을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30%가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소 제기 고집은 하청노동자들을 언제 끝날지 모를 소송의 굴레에 던져넣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지워진 책임 회사로부터, 정부로부터, 사법부로부터 노동자들이 노동권 행사의 책임을 강요받는 동안, 쟁의행위를 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회사는 어떤 책임을 졌을까. 소송과정에서 회사의 불법이 법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창조컨설팅 노조파괴시나리오에 대한 유죄판결이다. 그럼에도 노조파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제기된 손배소는 면책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됐다. 국가폭력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장이 쌍용차 국가폭력을 사과했지만 국가는 손배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반면 경영실패, 오너리스크로 인한 손실에 대해 회사의 배상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우조선해양도 같은 맥락이다. 파업으로 인한 손실 이전에 분식회계 등 경영상 문제를 지적받았지만 경영진에게 배상책임을 묻진 않았다. 노동자에게만 엄격한 행위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노동권이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의미에 맞게 제도를 다시 세워야 한다. 합법적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는 ‘노란봉투법’이 해법이 될 수 있다. 2014년 시민들의 제안으로 19·20대 국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21대 국회에도 발의된 법안은 현재 상임위 계류 중이다. 사법부의 전향적 판결을 기다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국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51일 만에 마무리됐다. 지난 5~6년 동안 빼앗긴 임금을 원상회복해달라는 요구에 정부는 ‘불법’ 낙인을, 회사는 수천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주장했다. 이 같은 정부와 회사의 태도는 노사 합의로 파업이 끝나고도 계속되고 있다. 합의 이후 정부는 노사 양쪽을 압박해 합의를 이끌어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노사 합의 과정에서 ‘불법’, ‘공권력 투입’을 정부가 언급한 것은 그 자체로 개입이다. 노동자만을 압박해 합의를 했고, 손배소의 불씨까지 남겨두는 결정적인 역할을 정부가 한 셈이다.
지워진 법과 원칙 손배가압류로 ‘불법파업’을 멈추겠다는 발상은 첫째, 파업이 불법이어야 하고 둘째, 파업이 모든 갈등상황의 원인일 때나 가능한 발상이다.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판단을 받은 바 없고, 파업이 갈등 원인도 아니다. 대통령이 주장한 ‘법과 원칙’에 따라서도 파업을 함부로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애초에 노동권 행사는 헌법이 보장한 합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손배가압류 소송은 ‘노동권 행사가 아닌 행위’에 대해서만 제기돼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6월 30일 ‘손잡고’는 1989년부터 최근까지 제기된 손배소 중 197건의 소송기록을 아카이브로 정리해 공개했다. 쟁의행위 사유별로 나눠보면 단체교섭·단체협약 관련 사안이 82건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파견,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 등 회사의 불법과 관련한 사안이 70건이었다. 해고 관련 사안은 43건, 집회·시위 관련 사안은 41건으로 집계됐다. 대다수 쟁의행위가 노동권 행사가 부정됐을 때 발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노동권 행사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은 어땠을까?
전체 150건의 1심 법원 판단만 놓고 보면 회사가 오롯이 승소한 사건은 11건으로 회사가 패소한 사건(37건)보다 적었다. 이것만으로는 사법부가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폭넓게 보장해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법원이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정당하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한 경우는 1건에 그쳤고, 나머지 36건은 회사의 입증이 불충분하다고 본 경우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1심 판단의 60% 이상(93건)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었다. 회사도 쟁의행위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보고 노동자들의 배상책임을 일부 제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노동자들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임금 등 근로조건과 관련 없는 쟁의행위로 분류돼 배상 책임을 지는 경우가 65건으로 가장 많았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 원청을 상대로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벌였다가 손해배상 책임을 진 바 있다. 쟁의행위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절차나 수단이 정당하지 않다고 본 경우도 40건에 달했다. 절차를 다 지켜도, 시설물 파손 등의 손해가 있을 경우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총파업 등 집회참가나, 사업장 내 집회, 1인 시위 등도 면책권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8건 있었다. 물리적 손실이 없었더라도 회사 측에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본 판결도 27건에 달했다. 사실상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면책권이 발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노동권 행사라고 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한 협소한 범위 내에서만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판례가 쌓이면서 회사는 이제는 비용을 들여 소송을 청구하는 수고 없이 ‘손배소를 제기하겠다’는 위협만으로 노사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지워진 삶 헌법상 노동3권의 출발점은 단결권이다. 개인에게 부여된 기본권이지만 개개인이 행사할 수는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운다.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지게 된 개인은 회유와 협박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는 소송기록에서도 나타난다. 197개 사건 중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187건에 달했다. 이중 34건은 회사의 요구사항을 노동자가 수용하는 조건으로, 회사가 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회사는 희망퇴직이나 노조탈퇴,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포기 등을 요구했다. 반성문이나 대자보를 쓰도록 요구한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조건을 받아들여 피고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해도 전체 손해배상 금액은 줄지 않는다. 회사의 회유에 응해 떠난 사람은 혼자 지옥을 탈출했다는 죄책감을 떠안고, 남은 사람들은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노동자들은 소송기간 내내 거액의 손배소송을 내세운 회사의 ‘인간성 시험’마저 견뎌야 한다.
그 과정도 지난하다. 1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26개월이 걸렸고, 최장 84개월이 걸린 소송도 있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은 이 기간 동안 ‘피고’로 살아야 한다.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2019년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과 손잡고, 와락이 공동으로 조사한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236명 첫 실태조사’ 결과, 손배소송을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30%가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소 제기 고집은 하청노동자들을 언제 끝날지 모를 소송의 굴레에 던져넣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지워진 책임 회사로부터, 정부로부터, 사법부로부터 노동자들이 노동권 행사의 책임을 강요받는 동안, 쟁의행위를 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회사는 어떤 책임을 졌을까. 소송과정에서 회사의 불법이 법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창조컨설팅 노조파괴시나리오에 대한 유죄판결이다. 그럼에도 노조파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제기된 손배소는 면책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됐다. 국가폭력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장이 쌍용차 국가폭력을 사과했지만 국가는 손배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반면 경영실패, 오너리스크로 인한 손실에 대해 회사의 배상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우조선해양도 같은 맥락이다. 파업으로 인한 손실 이전에 분식회계 등 경영상 문제를 지적받았지만 경영진에게 배상책임을 묻진 않았다. 노동자에게만 엄격한 행위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노동권이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의미에 맞게 제도를 다시 세워야 한다. 합법적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는 ‘노란봉투법’이 해법이 될 수 있다. 2014년 시민들의 제안으로 19·20대 국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21대 국회에도 발의된 법안은 현재 상임위 계류 중이다. 사법부의 전향적 판결을 기다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국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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