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檢리더십… ‘수사독립·정치중립’ 기본으로 돌아가면 답 보인다
■역대 검찰총장 리더십
카리스마형
송광수, 대선수사 與野모두 겨눠
김진태, 혼란한 조직 빠르게 안정
외유내강형
이명재, DJ정권때 두 아들 구속
김종빈, 수사지휘권 반발해 사표
방파제형
문무일, 경찰청 방문 등 ‘탈권위’
“검찰 조직은 사실상 만신창이가 됐다.” (전직 법무부 장관 A)
지난 3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배출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검찰이 74년 사법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데 법조계 내 이견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측근 인사들이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을 줄줄이 꿰차면서 ‘검찰공화국’이 도래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직접 수사 범위가 부패·경제 등 2대 범죄로 한층 더 축소되자 검찰 내부에선 “팔다리가 완전히 잘렸다”는 탄식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인사를 통해 노골화한 ‘편 가르기’로 내부 균열도 심하다. 새 정부 들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도로 단행된 3차례의 인사 과정에서 50명이 넘는 검사가 사표를 썼다. 한 전직 법무부 고위 인사 B는 “예전처럼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검찰 전체가 똘똘 뭉치는 분위기가 이젠 없다”고 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탄생과 최측근 한 장관의 등장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키워 국민 신뢰를 낮아지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 대한 각종 검경 수사를 놓고 ‘보복 수사’ 등 정치적 논란이 커질 조짐이다. 최근 국가정보원의 고발로 정치 쟁점화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 등도 문 정부의 대북 정책 뒤집기라는 야권의 집중 비판을 받고 있다. 변호사 C는 “모든 수사는 객관성을 잃어버리면 끝”이라며 “윤 대통령의 당선은 곧 검찰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새 정부 초대 검찰총장 자리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법조계 원로들은 이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검찰의 수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이 1순위 덕목으로 거론된다. 공정한 수사와 국민 인권 보호라는 검찰 본연의 기능에 대한 신념과 조직 내부 통합, 변화된 수사 환경에 맞는 새로운 ‘검찰 상(像)’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등의 자질이 복합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검찰총장 중 성공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는 인사들을 통해 위기의 검찰 조직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카리스마형 송광수·김진태=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강단 있게 조직을 이끌어나갔던 선례로는 단연 노무현 정부 초대 검찰총장이었던 송광수(72·사법연수원 3기) 전 총장이 꼽힌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최초의 총장인 그는 2002년 대선 과정의 불법 자금 수사를 통해 여야 모두를 겨눴다는 점에서 검찰의 중립·독립성을 성공적으로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사를 지휘했던 송 전 총장과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은 ‘송짱’ ‘안짱’ 등으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국민 검사’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법조계 인사들은 그가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데다 직에 연연하지 않는 올곧은 모습으로 후배 검사들에게 본보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퇴임 전 대검찰청 과장·연구관들과의 티타임에선 “더 실력이 있거나 더 올바른 총장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송 전 총장만큼) 올바른 데다 실력까지 갖춘 사람은 다신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수사뿐 아니라 내부 기강을 다잡는 데도 충실했다. 취임 초기 대검 차원의 감찰 기능을 대폭 강화하던 시절에는 ‘감찰총장’이라고 불렸다. “선배들도 함부로 못 하고 후배들은 달달 떨게 만들었던” 송 전 총장에게는 “까탈스럽다” “시니컬하다” 등의 수식어도 함께 따라붙곤 했다.
박근혜 정부 두 번째 검찰총장으로 ‘원칙주의자’로 이름난 김진태(70·14기) 전 총장 역시 강단 있는 면모로 후대 법조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1995년 대검 검찰연구관으로 있을 당시 국내 재벌 총수들을 직접 전수조사하는 등 특수 수사의 계보를 이은 인물로 분류된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쓰이면 목숨 바쳐 나라에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지으며 살아도 족하거늘. 권세 있는 자에게 알랑거려 뜬구름 같은 영화를 훔치는 것은 나의 수치로다”(최유해 ‘이충무공행장’ 중)라는 말을 검사 생활 내내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대검에서 일했던 변호사 D는 “김 전 총장은 자신이 수사해서 기소한 사건은 단 한 건도 무죄 판결이 난 적이 없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다”며 “검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고 했다. ‘강골 특수통’이라는 명성에 비해 총장 재임 기간 이렇다 할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은 흠이다. 그러나 박 정부 초대 총장이었던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자 파문’ 이후 혼란했던 검찰 내부를 빠르게 안정시키는 등 조직 장악력만큼은 인정받았다.
◇외유내강형 이명재·김종빈=이명재(79·1기) 전 총장은 송 전 총장과 함께 ‘검찰총장의 표상’으로 빈번히 거론된다. 송 전 총장이 철두철미하고 기획력이 강한 스타일의 ‘지장(智將)’이라면, 이 전 총장은 비교적 온화한 성품을 지닌 ‘덕장(德將)’으로 널리 신망을 얻었다. 임명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러 후보를 반려하다 재야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이 전 총장 차례가 돼서야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진들의 삼고초려 끝에 제의를 승낙한 이 전 총장은 10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재임 기간 김 전 대통령의 두 아들을 구속하며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꼿꼿함을 보여줬다. 취임사를 통해 남긴 “진정한 무사는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을 행동으로 옮긴 셈이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수사 검사”라는 극찬을 받았던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세대가 기억하는 최고의 총장”(변호사 E)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양복 한쪽 주머니에 늘 사직서를 품고 다녔고, 집무실에 일체의 개인 물품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2002년 서울중앙지검에서 발생한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에 책임을 지고 미련 없이 직을 내려놨다.
‘폭탄주 금지령’ ‘골프 자제령’ ‘절제와 안분(安分)의 선비 문화 정착’ 등을 주창했던 김종빈(75·5기) 전 총장도 부드럽지만 뚝심 있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것이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과 수사지휘권을 놓고 벌인 기 싸움이다. 천 전 장관이 ‘한국전쟁은 북한의 통일 전쟁’ 등의 발언을 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하자 김 전 총장은 이에 반발해 취임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대검 중수부장 출신 변호사 F는 그가 “총장이 뭘 하는 자리인지를 확실히 알았던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방파제형 문무일=문 정부 초기 적폐 수사를 지휘한 문무일(61·18기) 전 총장도 국정농단 사태와 검찰 개혁 드라이브 등으로 어수선하던 시절 검찰 조직을 무난하게 이끌었다. 검찰 개혁 등 핵심 과제에서의 성과는 미흡했다는 일각의 평가가 있지만, 대검 내 인권부 신설, 수사심의위원회 도입, 의사결정 기록 의무화 등 여러 제도 개선에 나서 자체 정비에 힘썼다. 역대 총장 중 처음으로 경찰청을 방문하고, 과거 수사에서 검찰이 저지른 과오를 공식 사과하는 등 검찰의 ‘탈권위’에 앞장서기도 했다. 검찰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면서도, “옷(검찰)이 흔들리면 그것이 시작되는 부분이 어딘지 봐야 한다”는 작심 발언을 했던 그를 후배들은 “검찰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강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한 전직 변호사협회장 H는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참석자 모두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데, 문 전 총장 혼자 하늘만 보고 있더라”며 “출세에는 관심이 없고 초연하게 할 일 하며 임기를 채운 사람”이라고 했다.
◇‘실세 장관’ 한동훈의 선택은=한 장관은 지난 2013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제도가 도입되고 난 이래 최장 기간인 66일의 공백을 두고 추천위를 꾸렸다. 일각에선 “총장 없이도 검찰은 제 할 일을 하며 잘 굴러가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떨어진 조직의 사기를 되살리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 I는 “수사 지휘 능력은 기본이고, 검찰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는 총장이 나와 미래 검찰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변호사 J도 “검찰의 힘은 팀으로 움직이는 데서 온다”며 “서로 단결하는 문화를 복원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고 짚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준표 “이재명 사건, 박근혜 미르재단과 유사...김의겸, 공천받으려 허위폭로하면 총선 전 감
- [속보] 3호선 무악재역 선로 화재...약수~구파발 상하행선 한때 중단
- ‘30여명과 성관계 불법촬영’ 회장 아들, 마약 투약 혐의도 수사
- KAI, 소형무장헬기(LAH) 3020억원 규모 최초 양산계약 체결
- “이선희 방패막이 세우지 말라”, 팬클럽연합 성명서 발표
- 文사저·尹대통령실 어쩌나… “대통령 관저 100m 집회 일괄금지 과도” 헌법불합치
- “호날두, 사우디서 2030년까지…1조5500억원 계약”
- “이재명 죽이려 살 쏘는데 잘 안맞는다고”…李 ‘사필귀정’ 언급
- 신현영, 15분만에 이태원 떠난 이유…유인태 “이미 할일이 없었다고”
- 부채 66조로 회사 파산하고 보석금만 3200억, 역대 최대…FTX 창업자, 美송환·가택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