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속았다"..77년 전 일본서 부르던 노래 아직도 부른다

정대하 2022. 8. 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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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전남 나주시 대호동 ㅎ아파트 경로당에서 어르신 6명이 모여 화투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일제 때인 1945년 2월 일본 후지코시강재공업에 동원된 주금용(95)씨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아, 오셨소. 잠깐만요"라고 했다.

전남 나주 대호동 출생인 주씨는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현 후지코시강재에 동원됐다.

일본 후지코시 공장으로 간 주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쇠를 깎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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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금용씨 후지코시강재서 강제노동
"죽기 전 보상이나 쪼까 주믄 좋제"
1945년 2월 여성 근로정신대로 일본 후지코시강재에서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을 한 주금용 할머니. 정대하 기자

지난 17일 오후 전남 나주시 대호동 ㅎ아파트 경로당에서 어르신 6명이 모여 화투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일제 때인 1945년 2월 일본 후지코시강재공업에 동원된 주금용(95)씨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아, 오셨소. 잠깐만요”라고 했다. 1927년생인 주씨는 잠시 화투판을 접고 나와 “나 같은 사람한테 뭐 물어볼 것이 있다고 왔느냐?”고 물었다.

전남 나주 대호동 출생인 주씨는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현 후지코시강재에 동원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후지코시에서 교실로 찾아왔다. “뭐 일본을 가면 돈도 벌고, 뭣도 허고, 어쩌고 헌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데요.” 주씨 학급에서 2명이 ‘지원’했다. “엄니헌테 일본 가서 돈 벌란다고 헌께, ‘네가 애린(어린)것이 거까지 가서 뭔 돈을 벌어야’ 하고 엄니도 울고, 나도 울었제.”

일본 후지코시 공장으로 간 주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쇠를 깎는 일이었다. “인자 밥하고 국 요만썩만 나오믄 고놈 묵고, 자고, 날마다 가서 쇠만 깎았제.” ‘공부시켜준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임금도 한 푼 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주씨는 당시 한국인 친구와 지어 불렀던 노래 한 곡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후지코시 요이또 타레가 유따아(후지코시 좋다고 누가 말했나)/ 사쿠라 고까 께노 키노 시다떼(사쿠라 나무 그늘 아래서)/ 진지노 기무라가 유따 소다(인사과 기무라가 말한 듯하다)/ 와따시와 맘마토 미마사레다(나는 감쪽같이 속았다)”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 회원 등이 2012년 6월8일 일본 도쿄 시내 후지코시강재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정남구 기자

죽음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1945년 7월, 미군 폭격기가 출몰하는 날이 잦아졌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공장 밖으로 피신했다. 후지코시는 “촌이라 나무도 많고 하도 캄캄한께 우리 쪽으론 폭탄을 안 떨어뜨리더라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8월15일 해방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오사카와 부산을 거쳐 나주로 왔다. 고향에선 주씨가 사망한 것으로 소문이 났었다고 한다. 열일곱에 고향에 와 열아홉에 결혼한 그는 아들 4형제에 딸 둘을 뒀다. “일본 갔다 온 이야기는 안 했어. 시누들도 몰라. 아직.”

주씨는 2019년 4월 후지코시강재를 피고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어린 나이에 가서 그러고 고생했은께 얼마라도 보상을 주믄 헌디, 안 준디 어떻게 받어? 나 죽기 전에 보상이나 쪼까 주믄, 나 묵고 자운 거, 입고 자운 거 쓰다 죽으믄 소원이 없겄구만.”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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