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국만 '해법찾기' 분주..국론 분열 뇌관되나
정부 '현금화 전 대안' 마련 모색
피해자 쪽 "일 직접 사과 선행돼야"
2018년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행을 거부한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현금화’ 조치가 임박하자 국내 피해자 단체와 정부가 엇갈린 행보를 보이며 갈등을 빚는 양상이다.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구성한 ‘강제징용 민관협의회’에 피해자와 피해자 소송 대리인 일부가 불참하기로 한 것도 그중 하나다.
■ 폭풍 전 고요?
지난 14일 외교부에선 조현동 1차관 주재로 ‘강제징용 민관협의회’ 회의가 열렸다. 지난 4일 첫 회의가 개최된 지 보름도 안 돼 열린 2차 회의다. 전범 기업 국내 자산의 현금화를 놓고 격화된 일본과의 갈등을 풀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지난 18·19일엔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일본 총리와 외무상을 만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거론하며 자산 현금화 시작 전 대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에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소송 대리인단이다. 이들은 민관협의회 불참까지 선언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상임대표는 “일본 기업이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원인이다. 미쓰비시 등 일본 강제동원 기업이 먼저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한 뒤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해자인 일본 기업은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뒷짐을 지고 있는데, 피해자인 한국 정부가 애가 타서 움직이는 건 ‘저자세’를 넘어 ‘굴욕’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을 두고 ‘갈등을 풀려다 자칫 일본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국론 분열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실제 피해자 단체와 이들의 소송 대리인 일부가 정부가 구성한 민관협의회 참여 자체를 거부하기로 한 건 새 정부의 대일 외교 행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다. 이들은 왜 그토록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라는 일각의 비난을 무릅쓰고 ‘일본 기업의 사과와 직접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가.
■ 문제의 시작…두 얼굴의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전면에 부상한 계기는 3년여 전 대법원 판결이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고 여운택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쪽 손을 들었다. 1인당 1억원 안팎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양금덕(93)·김성주(93) 할머니 등 5명(생존 2명)도 같은 해 11월 ‘한 명당 1억~1억5천만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이후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인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해 강제집행 절차를 밟았다. 전범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한 뒤 팔아 배상금을 일부라도 확보하기 위해서다. 양 할머니 등은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특허권 6건과 상표권 2건)에 대한 압류명령을 법원에 신청해 지난해 9월 압류 결정과 매각 결정을 받아냈다. 이르면 8~9월께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전망이다. 고 여운택씨 등도 일본제철이 소유한 피엔알(PNR·제철 부산물 재활용 기업) 주식 강제집행 절차를 밟고 있다.
자산 현금화를 위한 강제집행 절차를 밟는 까닭은 일본과 해당 기업이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고 배상 책임을 부인하고 있어서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정부가 맺은 ‘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사라졌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50여년 전에 피해자 개인을 대신해 배상금을 모두 받아 갔다는 주장이다. 일본이 2019년 반도체 핵심 소재를 포함해 일부 품목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린 건, 한국의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의 성격이 짙었다.
한-일 관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와중에 일본이 중국에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는 사실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 예로 일본 니시마쓰건설은 2009년과 2010년 일제강점기 일본 수력발전소 공사에 동원된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두차례에 걸쳐 화해금 47억원 상당을 지급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했다.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이 회사를 상대로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단행된 조처였다.
■ 첫단추 잘 끼워야…“죄 인정하고 사과부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선 다양한 의견과 해법들이 제안된 상태다. 피해국인 한국이 먼저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막힌 상황을 타개하려면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한 뒤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른바 ‘대위변제’ 방안이다. 대위변제 방안만 하더라도 누구 돈으로 배상하냐를 두고서 견해가 갈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피해자들의 입장에 대한 존중’이다. 피해자들 다수는 여전히 전범 기업의 직접 사과를 최우선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전히 계류 중인 소송들이 많다는 점도 변수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그만큼 중요한 셈이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집계를 보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중 계류 중인 건은 모두 66건이며, 원고는 1102명에 이른다. △대법원 계류 9건(125명) △2심 계류 4건(85명) △1심 계류 53건(892명)이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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