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호황효과 내년부터지만..3조원대 러 수주대금 '뇌관'

안태호 2022. 8. 1.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정부·산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속도
분리매각 등 현실성 떨어져..통째 매각필요
높은 선가 수주선박 곧 건조..청산은 일러
러시아 제재에 쇄빙LNG선 대금 못 받을라
지난 25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작업자가 진수 작업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51일간 이어진 하청지회 파업이 대우조선해양의 존재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쌍용자동차와 더불어 윤석열 정부의 구조조정 숙제로 던져진 대우조선해양 민영화가 이번 파업으로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현재 분리매각 등 여러가지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르면 9월 산업은행이 내놓을 대우조선해양 경쟁력 강화를 위한 컨설팅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시나리오와 매각 전까지 추가적인 혈세 투입 없이 정상화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여부를 점검해봤다.

■ 분리매각·삼성중공업 합병 현실성↓

<한겨레>가 만난 조선업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대우조선해양의 앞날에 대한 질문에 “지금은 뾰족한 수가 없다”며 답답해하면서도, 결국 회사를 정상화해 통째로 매각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언급된 특수선(방산) 분리매각이나 삼성중공업과 합병 등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분리매각은 잠수함·수상함을 건조하는 특수선 부문을 떼어내 따로 매각하자는 아이디어다. 이렇게 하면, 회사 몸집을 줄여 매수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방위산업체 매각 규제를 피해 외국계 회사에 매각할 수도 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2016년에도 분리매각을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조선소 공정상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한 조선업체 특수선사업부 담당자는 “대우조선해양 잠수함 건조는 (일반 상선과) 건조 공간이 물리적으로 전혀 겹치지 않아서 가능할지 몰라도, 수상함 건조는 일부 건조 공정을 공유하기 때문에 분리매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의 반대도 넘어서야 한다. 노조는 회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분리매각에 반대한다.

국내 조선업계 3위 삼성중공업과의 합병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국내 대형 조선 3사를 2개사로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저가 수주를 방지하자는 방안은 2015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몸집을 줄여 경쟁을 완화하고 불황기를 무사히 버텨보자는 목표였다. 실제 2019년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지만 유럽연합(EU)의 제동으로 무산됐다. 삼성중공업 합병 시나리오도 같은 이슈가 도사리고 있지만 업계 2위와 3위가 합친다는 점에서 유럽연합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실 삼성중공업 합병 시나리오는 조선업계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삼성중공업은 거제에 자리한 덕에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사도 상당수 겹쳐 합병 시너지가 높다. 문제는 삼성그룹의 의지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간 삼성의 행보를 보면 중후장대 산업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삼성중공업을 유지하는 선에서 조선업을 영위하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나머지 방법은 제3자 매각이다. 과거에도 대우조선해양이 정상화한 시점에 매각을 시도한 적이 있다. 2004년부터 이어진 조선업 호황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몸값이 높았던 2008년이었다. 당시 포스코·한화그룹·지에스(GS)그룹·현대중공업이 인수에 뛰어들었다.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한화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담에 매각 대금 분납을 요청했으나 산업은행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김영훈 경남대 교수(조선해양시스템공학)는 “조선업이 호황이던 2000년대 초반에 매각을 해야 했는데, 정부와 산업은행이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매각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사항이다. 지금은 안정적으로 운영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조선시황, 대우조선에 유리하게 전개

22년째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약 13조원에 달한다. 매각이 가능할 때까지 대우조선해양은 추가 자금 투입 없이 정상화할 수 있을까. 현재 재무구조만 보면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난해 1조7546억원의 영업손실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470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3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523.16%에 이른다. 올해 1분기 영업활동현금흐름도 마이너스 7천억원대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청산까지 언급되는 이유다.

하지만 현 시점의 재무상태만을 보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많다. 조선 시황이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어서다. 조선사의 수익성은 수주량 못지않게 뱃값에 좌우된다. 수주를 많이 해도 싼값에 수주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2010년 초부터 120~130대에 머물던 선박가격지수는 2021년부터 꾸준히 상승해 최근 160까지 올라왔다. 지난해부터 수주한 선박들은 제값 받기에 성공했다. 다만 높은 뱃값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 선박들이 아직 건조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일반 기업과 다른 회계 기준을 적용한다. 일반 기업은 매출과 비용이 발생했을 때 바로 인식하는 ‘발생주의’를 택한다. 반면 공사기간이 긴 조선업은 발생주의 중에서도 ‘진행주의’를 적용한다. 선박 건조에는 2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공정단계마다 매출과 비용을 나눠 반영한다. 선박 수주 금액은 고정돼 있다. 공정단계마다 받아낼 돈(매출)은 정해져 있지만 선박 건조에 쓰는 돈(비용)은 수시로 바뀐다. 지금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중인 선박들은 과거 불황기에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 선박으로, 매출이 작게 인식된다. 반면 건조 비용은 철강재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크게 늘어났다. 매출은 일정한데 비용이 급증한 것이다. 요즘 조선업이 겪는 어려움이다.

내년부터 높은 가격에 수주한 선박들이 건조에 들어가면 실적도 안정화 단계에 돌입할 전망이다. 최근 철강재 가격도 하락하고 있어, 받아낼 돈은 많고 쓰는 돈은 줄어들 상황이 곧 다가온다고 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올해까지는 2020년 이전 낮은 가격에 수주한 선박의 건조가 완료되고, 내년부터 2021년 이후 높은 가격에 수주한 선박 건조가 시작돼 수익성 측면에서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선업 호황이 금방 꺼지지는 않을까. 실제 조선업은 2004~2008년 짧고 굵은 호황을 맞이했다. 경제 성장에 따른 물동량 증가를 예상한 선주들이 선박을 대거 발주하면서 선가가 크게 올랐지만 곧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물동량이 급감하고 선박이 남아돌면서 조선업은 긴 불황의 터널로 들어섰다. 당시 컨테이너·유조선·벌크선 등 모든 선종이 공급 과잉을 겪었다. 발주해 건조된 배를 가져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 호황 주기는 과거와 다르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동현 대신증권 분석가는 “코로나19 이후 컨테이너선 수주가 많았고, 지금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호황 주기인데 원유운반선은 아직 시황이 돌아오지 않았다. 선종 포트폴리오가 조선업의 리스크를 완화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선종별 호황 주기가 불일치해 조선업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도 10~15년간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 러시아발 리스크, 정상화 발목 잡을 수도

다만 러시아발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로부터 수주한 규모는 약 25억달러(3조260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금융제재 탓에 선박 건조 대금을 받을 길이 사라졌다. 특히 빙하를 부수고 항해하는 쇄빙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을 수주한 터라 러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재판매하기도 어렵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러시아에서 수주한 쇄빙선이 또 하나의 뇌관이다. 건조를 취소하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지, 일단 건조하고 나서 나중에 돈을 받아낼 건지 결단해야 한다. 만약 건조대금을 못 받으면 또 수조원어치 부실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