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조기입학 선행' 불안 자극..5살 '놀 권리' 빼앗는 국가

방준호 2022. 8. 1.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만 5살 초등입학' 논란]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추진 논란
아동정책선 '놀 권리 보장'이 핵심
교과중심 조기 취학에 기조 퇴색
정부, 학습격차 해소 명분 삼지만
"사교육 시장만 더 키울 것" 비판
사진은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모습. 연합뉴스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데 만족해요. 그냥 신나게 놀고 오거든요. 잠깐만요. 애가 놀고 있어서.”

31일 전아무개(36)씨와 나눈 대화는 2019년생인 3살 아이가 옹알댈 때마다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앞당긴다’는 정부 방침대로면 그의 아이도 2025년부터 시작할 만 5살 초등학교 입학 어린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전씨는 말했다. “놀이 중심의 누리과정(만 3~5살 공통 교육과정)에 속해 있다가 초등학교에 1년 일찍 들어가 학교 수업을 받는 건 분명히 차이가 있죠. 국가 차원에서 아이가 놀 시간을 줄이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요.”

7월29일 교육부가 내놓은 학제개편안에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살로 1살 낮추는 내용이 포함되자, 학부모와 전문가들은 ‘놀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의 유아 교육·보육 체계가 후퇴할 가능성을 염려한다. 2020년부터 적용된 새 누리과정에선 교사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가 놀이에 몰입하고 심화·확장하는 자유 시간을 2시간 이상 보장하도록 했다. 초등학교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도 즐거운 생활 교과 중심으로 실외 놀이 및 신체활동 강화가 언급돼 있긴 하지만, 놀이와 연계한 ‘학습’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놀이권’ 보장을 핵심 과제로 두었다. ‘유아 중심, 놀이 중심’을 전면에 걸고 누리과정과 2020년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만 0~5살) 개정이 이루어졌다. ‘놀고 싶을 때 놀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가 ‘유엔 아동권리협약 이행 보고서’ 등에 꾸준히 언급된데다, 자발적인 놀이가 아동 발달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쌓인 영향이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그동안 놀 권리를 중심으로 누리과정이 발전해 오고 있었는데, 학제 개편으로 이 모든 것이 다 헝클어지는 상황이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에서 만 5살의 놀 권리가 누리과정처럼 보장되긴 어렵다고 본다. 임미령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협동조합 이사장은 “초등학교는 교과 중심이고 더군다나 집단적인 체계”라며 “아이의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적응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놀이 수업이라고 해도 누리과정이 지향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주체적이고 무계획적인 놀이가 아니라 학습을 앞세운 어른 중심의 놀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놀이권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이런 우려를 키운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9일 업무보고 내용을 설명하며, “미국 킨더가든(유치원)의 경우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이 좀 늘고 놀이는 좀 줄어든다. 만 5살로 (초등학교 입학이) 앞당겨진다면 놀이 중심이되 교육 부분이 좀 더 명시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앞당기는 사유로 ‘공교육 편입 앞당겨 학습격차 해소’를 내세웠지만, 오히려 조기 입학이 해마다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 시장 규모를 더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종로학원은 31일 “조기교육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된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 간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공교육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으로 격차가 해소될 거라는 안이한 기대”라고 짚었다.

조기취학의 문은 이미 열려 있지만, 학부모들 역시 동급생보다 어린 자녀가 경쟁에 뒤처지고 학교폭력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조기취학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2021학년도 초등학교 조기입학 아동은 537명으로, 전체 입학 인원 42만8405명의 0.125%에 그쳤다. 2019년생 자녀를 둔 또 다른 학부모는 “사교육업체 카카오톡 단체 채팅 방에서 벌써 언니, 오빠, 형과 함께 학교 보내는 불안을 자극하며 ‘선행시켜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