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수도 명장] '한국 자동차 엔진 역사' 현대차 김기준 주임
"공정 개선 아이디어·특허 모두 품질향상뿐만 아니라 안전 위한 것"
[※ 편집자 주 = 울산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산업수도'입니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업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명장과 장인들이 경제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제 4차 산업 시대라고 합니다. 현장이 자동화하고 로봇으로 대체된다고 하지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사람 입니다. 연합뉴스는 그동안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을 위해 묵묵히 산업현장을 지켜온 울산 지역 명장과 장인들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매월 첫째 월요일에 송고합니다.]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30년 전 순수 국내 기술로 처음 자동차 엔진을 만들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시 엑센트에 탑재됐는데, 로열티를 안 줘도 된다는 게 뿌듯했지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김기준(54) 주임은 우리나라 주조 분야 명장이다.
울산공장에서 40년 가까이 엔진 실린더블록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왔다.
1980년대 도로에 등장한 '프레스토'와 '스텔라', 1990년대 국내 스포츠카 쿠페 모델로 이름을 알렸던 '스쿠프'에서부터 지금의 제네시스에 들어간 엔진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조금이라도 더 품질 높은 엔진 실린더블록을 만들기 위해 집에서도 연구했고, 공정 개선 아이디어를 제출한 것은 2천600건이 넘는다.
제출된 아이디어는 공정에 반영돼 총 41억원 정도를 절감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국내 기술 특허 5건과 디자인 특허 2건 출원으로 이어졌다.
특허는 주조 위 형틀과 아래 형틀이 서로 정확히 맞물리게 하는 기술 등을 담았다.
형틀을 정밀하게 해 불량을 줄이고 품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점을 인정받아 2015년 울산시 최고장인, 2021년 대한민국 명장에 올랐다.
김 주임이 주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3년 충남 장항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칠갑산 옆 청양에서 육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기술을 배워서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에 공고로 진학했다.
울산 북구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만난 김 주임은 "고교 1학년 때 용접, 판금 등등 이런 과목을 돌아가면서 실습했는데, 쇳물을 받아서 주입해 제품을 만드는 큐폴라(주철용 용해로)를 보니 위험한 것 같으면서도 기술 다운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조 작업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주조로 진로를 정한 김 주임은 학교 기능경기대회 훈련반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하루가 멀다고 밤 11시, 자정까지 실습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5년, 학교 추천을 받아 충남지역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게 된 김 주임은 주조 부문 3위에 올라 전국기능경기대회에도 나가게 됐고, 4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가 곧바로 입사 제의를 해오면서 그해 11월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김 주임은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에 울산공장에 들어와 38년째 다니고 있다"며 "이제는 불량 판정 난 실린더 모습만 봐도 어느 공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바로 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 주임이 긴 세월 자신의 손길이 닿은 엔진 중 가장 의미가 크다고 꼽는 것은 1994년 현대차 순수 기술로 개발한 '알파 엔진'이다.
그는 "이전에는 엔진 기술을 일본에서 받아와서 생산했는데, 알파 엔진을 만들면서 로열티를 하나도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며 "당시 반응도 좋아서 알파 엔진이 엄청 많이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 알파 엔진 개발로 장영실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인증한 기술 명장이지만, 지금까지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장 반장을 맡았던 11년 동안 무사고를 기록한 것"이라는 다소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입사했을 때만 해도 작업 현장 조건이 상당히 열악했다. 지금은 모두 기계로 하지만 그때는 일일이 사람 손으로 작업했다"며 "그러다 보니 협착 사고 등 안전사고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공정 개선 아이디어를 계속 제출한 것도 사실은 공정 개선을 통해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며 "용탕 출구 장치, 개폐 장치 등과 관련해 출원한 특허 역시 품질 향상뿐만 아니라 현장 안전과도 연관된 것이다"고 강조했다.
명장으로서 꿈도 내비쳤다.
그는 "기술을 전수하고 싶어도 주조를 하려는 후배들이 많지 않아 아쉽다"며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기술 관련 책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세상은 4차 산업혁명, 자동화, 로봇화를 이야기하는데, 원천기술을 가진 것은 결국 사람이다"며 "가공은 로봇이 하더라도,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사람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can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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