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고 버텨' 짠돌이 된 영끌족.."5억 주담대, 月200만원 내야"
[편집자주] 윤석열정부가 민간 주도 성장을 천명했지만, 정작 민간의 소비와 수출, 투자 모두 흔들리고 있다. 고물가 속에 금리가 뛰고 자산가격이 떨어지면서 소비가 얼어붙고 있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공급망 불안에 엔저와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수출과 투자마저 위축되는 복합위기가 우려된다. 이 '퍼펙트스톰'을 막을 방법을 찾아본다.
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Prefect Storm) 경고등이 커졌다. 여러 폭풍이 합쳐진 퍼펙트 스톰은 대개 '복합 경제위기'를 뜻한다.
GDP(국내총생산)를 구성하는 4대 요소인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이 일제히 위축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책임졌던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은 위기를 경고하면서 윤석열 정부 경제팀에 과감한 대응을 조언했다.
31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매판매는 지난 3월 전월대비 0.7% 감소한 이후 4월 -0.3%, 5월 -0.2%, 6월 -0.9%로 넉 달째 줄었다. 소매판매가 4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1998년 이후 약 24년 만이다.
소비 부진의 최대 요인으로 고물가가 지목된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 대비 6%나 뛰며 24년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소비 경기에 큰 부담이다.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물가 상승 → 기준금리 인상 → 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꼽았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역임한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글로벌 공급 측면의 문제로 인한 물가 상승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 결국 경기 침체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차관을 역임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 현상의 심화 여부"라며 "무역수지 적자 확대, 민간부채 부실화로 경제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충북 청주공장 증설 계획을 잠정 보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년동월대비 설비투자는 3월과 4월 각각 5.4%, 11.7% 감소한 후 5월 5.4% 반등했지만 6월 다시 0.7% 줄었다.
기재부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지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기업들이 총수요 감소에 따른 경기 둔화를 예측하고 계획했던 투자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며 "세금 완화, 공정거래 환경 구축, 환경 규제 완화, 노동 규제 유연화 등으로 기업인의 투자 애로를 점진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에도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엔화 가치 하락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기대비 3.6% 증가했던 수출이 2분기엔 감소세로 전환(-3.1%)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으로 수입가격이 크게 뛰면서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GDP에서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 기여도는 1분기 1.7%포인트(p)에서 2분기 -1.1%p로 하락 전환했다.
과거 불황 때 경기를 떠받쳐준 정부지출의 역할도 이번엔 기대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나랏빚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났다고 보고 앞으로 확장재정을 멈추고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하기로 했다.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은 퍼펙트 스톰에 대해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 경착륙을 감수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경기 연착륙을 위해 소비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재경부 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은 "경기 둔화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경기 둔화를)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재경부 차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광림 퇴계학연구원 이사장은 "여력이 있는 분들은 소비를 조금 늘려주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은 대체로 △적절한 정책 조합(policy mix) △서민 지원 강화 △강력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선 의견이 일치했다.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의 이희범 경북문화재단 대표는 "일정 부분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른바 '빅스텝'은 투자 위축, 서민 부담 가중을 초래하기 때문에 지양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은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에 무게중심을 둬야한다"고 했다. 기재부 출신으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낸 김철주 금융채권자 조정위원장은 "정부가 기준금리에 대해 왈가왈부할 순 없으니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 투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성윤모 한국공학대학교 이사장은 "단기적으로는 물가·환율·금리·국제수지 등 거시경제 지표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며 "본질적·중기적 과제는 혁신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 경제·산업구조를 갖춰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기업 투자를 지원하는 세제·금융·입지·인력양성 등 지원 사항과 환경·노동 등 규제개혁 관련 사항의 조속한 입법·제도화로 기업에 투자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주택담보대출 5억원을 받아 서울 소재 아파트를 사들인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가 오르면서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가 이른바 '무지출 챌린지(돈 안쓰고 버티기)'에 나서게 된 이유다. A씨는 "은행 대출 금리가 치솟으면서 한달 원리금 상환 비용만 200만원을 훌쩍 넘어섰는데, 집값과 주가는 떨어지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덜 먹고 덜 쓸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고물가·고금리 속에서 부동산·주식 등 보유 자산의 가치까지 떨어지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투자에 나섰던 청년층의 소비 심리가 식어가고 있다. 코로나19(COVID-19) 재확산세도 부담이다. 소비심리 악화는 내수경기를 짓눌러 자칫 경기의 경착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전직 경제관료들은 민간 일자리 확충 등 가계의 구매력을 끌어올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31일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소매판매지수(소비)는 전월 대비 0.9% 하락한 118.3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부터 4개월 연속 하락세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월까지 넉 달 간 소비가 줄어든 이후 최장기간이다.
이 같은 소비 둔화는 △금리 인상 등에 따른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치 하락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역자산 효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등이 겹친 결과다.
28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연 3.92~6.254%로, 한 달 전 변동금리 연 3.70~5.896% 대비 큰 폭 뛰었다. 6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0%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여기에 집값과 주가 등 자산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7월 25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일주일 전보다 0.07% 하락했다. 2020년 4월 27일(-0.07%)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말 2977.65에서 6월 말 2332.64로 20% 넘게 떨어졌다. 6개월 간의 주가 하락률을 기준으로 1990년(-22.31%) 이후 32년 만에 가장 크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고물가가 소비심리 악화의 주범"이라며 "소비재 할당관세 확대나 해외자원 개발 지원 강화 등으로 국제 원자재 수급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내수가 둔화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민간 일자리 창출 확대를 통한 가계의 실질 구매력 확충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과 재경부 차관을 지낸 김광림 퇴계학연구원 이사장은 "여력이 있는 분들이 소비를 조금 늘려주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가안정도 중요하지만 경기 연착륙을 위해 어느 정도의 소비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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