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200통 편지 전한 다산학자의 진심.."공정·청렴 더 외쳐야죠"
"18년간 눈물겹게 지켜온 뚝심..공정과 청렴, 지금 시대에도 필수"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역사는 점진적으로, 세월이 갈수록 조금씩 발전합니다. 그런데 아직 '공렴'(公廉·공정과 청렴)한 세상을 못 만들었으니 더 부르짖고 외쳐야지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힘써 온 박석무(80)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자타 공인 '다산 전문가'다. 스스로는 '다산학자'라는 호칭을 즐겨쓴다.
그가 다산의 삶과 저술을 소재로 써 온 칼럼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가 1일로 1천200회를 맞는다.
2004년 연구소를 세운 뒤 첫 사업으로 칼럼을 내놓은 지 18년 만이다. 때로는 따뜻하게 다산의 가르침을 전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현 사회 세태를 비판해 온 글은 지금도 36만 명 이상이 받아본다.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지난 18년 동안 칼럼을 통해 알려온 '공렴'의 논리는 음으로, 양으로 곳곳에 스며들면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1942년 전남 무안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전남대 대학원에서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며 다산에 푹 빠졌다.
그는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산 서간을 번역해 1979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이후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평전' 등의 저서를 꾸준히 펴내며 50여 년을 다산 연구에 바쳤다.
이번 1천200회 글의 주제는 '다시 공렴의 세상을 희구하며'. 박 이사장이 숱하게 외쳐온 '공렴'이다.
그는 "처음 연재를 시작한 2004년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는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이뤄지고 있다. 여전히 공렴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산이 희구하고 인류가 희구하는 평화 세상은 말 그대로 공정함과 청렴함이 살아있는 세상"이라며 "시대가 달라지고 세월이 변했지만, 그 정신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이사장은 공정하고 청렴한 세상을 만들자는 논의가 자칫 '실효성' 없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강한 어조로 의견을 냈다.
그는 "뇌물을 받지 않고, 부패하지 않고, 도덕성을 챙기는 일련의 모든 것이 인류의 영원한 과제"라며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지금 우리 시대의 최대 화두가 '공정'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그 중요성을 설파했다.
"모든 국민이 원하는 것이 공정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면 청렴이고요. 공정하지 못한 대통령, 청렴하지 못한 대통령을 쫓아내려 했을 때 '촛불'이 나온 걸 생각하면 우리는 분명 변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덧 한국이 경제 강국으로 등극하고 여러 변화를 거쳐왔지만, 아직 공정함과 청렴함, 두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며 "국가 정책을 추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짚기도 했다.
처음 칼럼 연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은 한결같다.
박 이사장은 200자 원고지에 수성 사인펜으로 손수 원고를 쓴다. 어떤 내용을 다룰지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일단 결정한 후에는 막힘없이 써 내려간다고 한다. 정해진 날짜를 어긴 적도 없다.
그렇게 완성해 온 원고지가 지금껏 9천∼1만 매. 그의 책장 한가운데를 채운 보물이다.
그간의 원고를 모아 책으로 낼 생각도 있다. 다만 책에서 칼럼 전부를 다룰지 일부를 추릴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저로서는 눈물겹게 한 일입니다.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는 다산을 공부해 온 내가 해야 할 필수적 사명이고 책무예요. 기력이 닿는 한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웃음)
200년 세월을 넘어 우리가 다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이사장은 "동양 사상의 중심이었던 성리학 체계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체계를 만들고 집대성한 게 다산"이라며 "전통적 학문의 방향을 바꿨다는 점에서 그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목민심서' 두 권이야말로 다산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30대 후반의 나이로 번역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개정 작업을 거치며 그가 쓴 서문만 5편에 이를 정도로 의미 있는 책이다. '목민심서'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책인데 이 두 권은 항상 곁에 두는 책이라 한다.
박 이사장은 "다산의 편지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목민심서는 어떻게 나라를 나라답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수양하고 다른 사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사상"이라고 설명했다.
"두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평생 다산을 연구한 보람을 느낄 것 같습니다.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만 하더라도 여기서 많이 나오지요. 특히 '목민심서'는 죽을 때까지도 꼭 읽으라고 권할 겁니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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