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人]'지구 끝까지' 범죄자 잡으러 가는 경찰청 인터폴

이소현 2022. 8.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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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홍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 인터폴계장
'동남아 3대 마약왕' 마지막 피의자, 송환 주역
총 20년 경찰 생활 중 12년간 인터폴 활약
"베트남 공안과 형·동생 불러..남태평양 섬도 간다"

[이데일리 이소현 권효중 기자] “너 수배자지?”

지난달 17일 베트남 호찌민 중심가에 있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현장을 수색하던 전재홍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 인터폴계장(경정)은 낯익은 얼굴에 특이한 이름을 듣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전화금융사기 혐의를 받는 피의자 A씨는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재홍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 인터폴계장(사진=김태형 기자)
‘일타쌍피’의 순간, ‘동남아 3대 마약왕’이라고 불렸던 한국인 3명 중 우두머리 격인 ‘사라 김’으로 불린 김모(47)씨 주거지에서 ‘별건 피의자’를 함께 붙잡은 것. 올해 상반기 기준 291명에 달하는 국외 도피사범의 신상을 꿰고 있던 전재홍 계장의 눈썰미 덕분이었다. 그는 “베트남 공안만 출동했으면 피의자를 놓쳤을 수 있다”며 “직접 현장을 가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전 계장은 ‘지구 끝까지’ 범죄자를 잡으러 가는 경찰청 인터폴이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간부후보생으로 경찰에 입직, 총 20년 경찰 생활 중에 인터폴 관련 업무만 12년째다.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남태평양 피지까지 가서 국내 송환한 국외 도피사범만 2000여명. 전 계장은 “죄를 짓고 해외로 도망가면 처벌 안 받는다는 의식이 팽배하면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며 지구 반대편까지도 달려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범죄자를 잡는데 국경은 없지만, 지켜야 할 절차는 있다. 영화 ‘범죄도시2’ 마석도 형사와 달리 국내 경찰은 국외에서 무력행사를 할 수 없다. 현실에서 공조수사에 성공하려면 현지 공안과 ‘라포(신뢰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경찰이 첩보를 입수해 베트남 공안과 3년간 공조수사한 끝에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마지막 피의자를 붙잡을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김씨는 베트남에 머물며 2018년부터 텔레그램을 이용해 경찰이 확인한 것만 10만 명분, 70억 원어치의 필로폰과 합성 대마 등을 국내에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전 계장은 “평소 베트남 공안과 많은 교감을 하면서 거의 ‘형·동생’ 하는 관계라 경조사에 자녀 선물까지 챙긴다”며 “거의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조직화 돼 있다”고 했다.

전재홍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 인터폴 계장이 경찰청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전 계장은 인터폴 적색수배서가 발부된 김씨를 국내 송환하는 과정에서 함께한 직원들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번 작전을 축구로 비유하면 저는 주전에 스트라이커 역할이었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며 “경찰주재관, 공동조사팀, 본청 외사국, 전국 수사관서는 공조수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사건 등을 해결했을 때 경찰관에 ‘특진’ 기회가 부여되지만, 아쉽게도 사건당 1명만 해당한다고 한다. 전 계장은 “결정적 첩보를 입수한 인천청 공조팀 후배를 특진 대상으로 올릴 계획”이라며 “나머지는 ‘마음의 보람’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웃어 보였다.

국제공조수사 업무를 하면서 가장 뜻깊은 일은 더 많은 범죄자를 잡을 수 있게 된 점이다. 경찰청은 2017년 4월부터 경제사범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기준을 50억 원 이상에서 5억 원 이상으로 낮췄다. 또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물의를 일으켜서 수사관서에서 특별히 요청한 경우’라는 항목도 둬 인터폴 수배 대상을 대폭 늘렸다. 전 계장은 “잡아야 할 범인이 많아져서 피곤해진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끝까지 직접 설득해서 수사대상의 재량권을 넓혔다”며 “피해자 입장에선 돈 잃으면 상심이 얼마나 크겠나, 전세사기와 중고사기처럼 죄질이 나쁜 경제 도피사범도 피해액수에 상관없이 잡는다”고 말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 회원국은 195개로 UN 회원국(193개)보다 많다. 그는 세계에 뻗친 거미줄 수사망으로 국외도 범죄자에게 도피처가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전 계장은 “범죄의 씨앗을 자라게 두면 점점 커지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억제하는 게 경찰의 역할”이라며 “사람만 바뀔 뿐 범죄는 끝없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범죄자를 잡으러 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소현 (atoz@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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