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탈탄소혁명'..미·중 新패권전쟁
에너지 대란 속 LNG 수출로 '조용한 미소'
대외 의존도 낮추려는 中, 재생에너지·원전에 올인
EU, 불안정한 미국보다 중국?..지정학적 변수도 주목
▶ 글 싣는 순서 |
①'탈탄소 선도부' 유럽의 후퇴, 대러 갈등에 흔들리는 기후대응 ②산업혁명 이후 '탈탄소혁명'…미·중 新패권전쟁 |
역대 최고 수준의 에너지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맞은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대열에서 이탈하는 가운데 눈에 띄는 나라가 있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등 탄소중립 선도 국가가 아닌 중국이다.
러시아의 가스 차단에 EU는 다시 석탄을 때고, 트럼프 정부에서 파리기후협약을 등졌던 미국은 정권교체 후에도 보수화된 분위기가 씻기지 않았다. 선도국들의 탈탄소 방향성이 흔들리자,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인 중국이 기후대응 리더십을 행사하는 기묘한 상황마저 예견된다.
흔들리는 탄소중립 동맹…못믿을 미국?
지난 6월 말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 권한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석탄 주산지인 텍사스와 인디애나, 웨스트버지니아 등 공화당이 집권한 주(州)들이 연방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정책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내자 이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정부기관인 환경청이 석탄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규제의 근거가 되는 대기오염방지법에서 환경청에게 그러한 규제권한을 명확하게 부여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다.
존 로버츠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석탄발전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한하는 것은 현재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다"면서도 "그 정도 규모와 파급력이 있는 결정은 의회가 하거나 의회로부터 명확히 임무를 받은 기관이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절차상 문제를 들어 규제권한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트럼프 정부 시절 보수 법관으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에서 이같은 판결이 나오면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던 바이든 정부는 물론이고 국제사회도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백악관은 "나라를 퇴행시키려는 파괴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했고, UN에서도 "이번 결정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승소한 20개 주의 석탄배출량은 미국 전체 탄소배출량의 57%를 차지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탄소중립 선언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 실제 사례로 확인된 셈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내에서는 겨울철 대비 화목난로와 땔감 구입이 폭증하는 등 서민의 연료비 부담이 가중될 수록 정치권의 탈탄소 정책도 더욱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그나마 미국 경제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화석연료라는 점도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러시아가 서방 제재국가들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미국은 올 상반기 LNG 최대 수출국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지난달 25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국제천연가스정보센터(CEDIGAZ) 자료를 인용해 올 상반기 미국의 LNG 수출량이 일평균 112억큐빅비트로 작년 하반기 대비 12% 증가했다고 밝혔다. 수출량의 약 71%는 유럽으로 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2일 미국 내 에너지기업 경영진과 정부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최근 급성장한 LNG 무역은 미국의 중요한 지정학적, 경제적 도구로서 에너지 수출을 증가시켜 무역수지를 안정화하고 상대국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혁명·정보혁명 이어 '탈탄소혁명'…새 패권국은 어디?
EU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중국의 탄소배출량은 약 116억톤으로 세계 탄소배출량의 32.5%에 달하는 상황이다. 2위 탄소배출국인 미국(45억톤)의 2.5배를 넘는 규모로, 현재로선 중국의 획기적인 탄소감축을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약 10년 만에 탄소배출량이 2.4배 증가하는 등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의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황사' 등 대기오염은 물론이고 강도를 높여가는 폭우와 태풍, 폭염 등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20년 기준 세계 평균의 7배 수준으로 높은 상황이다.
특히 서방의 견제로부터 힘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에너지 대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분야 등의 생산력과 기술 수준이 최근 몇 년 사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이 그 결과다. 탄소중립이라는 국제적 연대에 합류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실익을 위해 탄소배출을 규제해야 할 유인이 큰 셈이다.
태양광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산 패널 등 제품의 효율이 국내 제품과 비교하면 떨어지긴 하지만 가격경쟁력, 가성비 면에선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과거 중국이 관련 기술을 다른 국가에 물어보고 배우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선두권에 서있다"고 말했다.
비민주적인 정치체제가 가지는 특수성도 있다. 주민 수용성 문제 등으로 부지선정에만 수십년이 걸리기도 하는 원전을 오는 2035년까지 100기 이상 추가 건설한다는 정책을 발표하고 실행한다는 점이다. 또 철강·석탄·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생산량을 엄격하게 통제하는가 하면, 비화석연료를 이용하는 탈탄소 공정으로의 전환도 정부 주도로 가능한 구조다.
실제로 강화된 탄소배출 규제를 중국 내 지방정부들이 매우 경직되게 적용하고 석탄가격 상승으로 인한 전력수급 불균형 문제가 겹치면서 지난해 10월 중국 전역에서는 대규모 전력난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무리 탄소중립 정책을 강하게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중국경제 전문가인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에너지 대란 상황에서 중국 역시 다른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값싼 화석연료를 다시 찾는 등 후퇴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재생에너지와 원전으로의 에너지 전환 방향 자체는 확고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탄소중립 체제로의 전환은 중국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앞서나가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도 섰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정보혁명 등을 거치며 산업과 기술 패러다임을 선점한 국가가 세계 패권을 쥔 역사를 고려해볼 때, 탈탄소 시대의 중국이 '최대 탄소배출 국가'에만 머물러 있진 않을 것이란 평가다.
지 선임연구위원은 "EU가 반도체 등 경쟁분야에서는 중국을 견제할 수 밖에 없지만 대등한 협력의 영역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등 탈탄소 전환이 그 공간이 될 수 있다"며 "언젠가 기후협약에서 또다시 이탈할 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미국보다 탄소중립의 파트너로 중국을, 중국 역시 서방의 동맹을 약화시킬 계기로 EU를 향할 여지를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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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장관순 기자 ksj0810@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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