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선도부' 유럽의 후퇴, 대러 갈등에 흔들리는 기후대응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탈석탄 계획 줄줄이 지연
러시아도 '서방 제재' 핑계, 탄소중립 후퇴 가능성 언급
패권갈등에 기후위기 가중…"공동대응 아니면 집단자살"
▶ 글 싣는 순서 |
①'탈탄소 선도부' 유럽의 후퇴, 대러 갈등에 흔들리는 기후대응 ②산업혁명 이후 '탈탄소혁명'…미·중 新패권전쟁 |
러시아가 무력 침공을 벌인 반년 간 우크라이나 동부는 쑥대밭이 됐다. 동시에 러시아의 무력행사가 초래한 유럽과 러시아의 상호 제재는 '탈석탄 선도부' 유럽을 석탄발전 광풍에 내몰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기후위기에 함께 맞서자는 국제 공조체계가 지정학적 갈등에 얼마나 취약한지 확인시켰다.
'유럽 대장' 독일, 석탄발전 심폐소생술
독일은 최근 에너지안보 관련법을 개정하고 꺼져가던 석탄화력발전의 불씨를 되살렸다. 연방상원의회는 하원에서 통과된 '천연가스 절약을 위해 가능한 한 가스화력발전을 대체한다'는 취지의 대체발전소관리법 개정안을 지난달 8일 가결 처리했다.
3일 뒤 공포된 이 법률은 석탄화력발전 폐지 조치를 최대 2024년 3월 31일까지 유예하도록 하고 있다. 정상 운용 중이던 곳의 가동 지속 뿐 아니라, 폐지 수순에 들었던 석탄화력발전소도 부활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되살아난 석탄화력발전 설비규모는 최대 10GW에 육박하는데, 이는 독일 전체 전력생산의 3분의 1을 떠맡을 용량이다. 지난해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은 28%였다. '녹색당' 소속인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부총리(경제·기후 장관)는 "유예기간 석탄화력발전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대신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80%를 채운다는 계획이었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이웃나라도 석탄 경쟁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이 이러는 동안 주변국도 친석탄 행보에 돌입했다. 석탄화력발전 증강을 단행하거나 검토하는 나라가 생겼고, 수출 호기를 맞아 석탄 생산량을 늘리는 나라도 생겼다.
오스트리아는 2020년 4월 가동 중지했던 남부 멜라흐 소재 246MW급 석탄화력발전소를 우선 재가동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는 이 석탄화력발전소를 멈춰세운 그때 '탈석탄 달성'을 선포한 바 있다. 다만 정비 문제로 당장 운용되지 못하고, 내년에야 재가동될 것으로 알려졌다.
2029년 탈석탄을 목표로 석탄화력발전의 발전 비중을 35%로 제한하던 네덜란드는 이 '35% 상한'을 없애기로 했다. 이 조치는 2024년까지 유지된다. 네덜란드는 즉각 가동할 수 있는 4개 석탄화력발전소를 통해 기존 가스화력발전의 발전량 중 46%를 충당한다는 전망이다.
2028년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할 계획이던 그리스도 계획을 이탈해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두 배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도 지난 2월 가동 중단했던 600MW급 에밀 위셰 석탄화력발전소를 올 겨울 재가동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2025년 탈석탄을 추진 중인 이탈리아는 구체적 계획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석탄화력발전 재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석탄 생산국인 폴란드는 올해 생산량을 늘리는 한편, 품질규제까지 완화해 국내외에 석탄 공급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러시아 '밸브 차단'에 퇴보…'우크라 사태' 상호 제재
유럽이 취한 석탄 더 때기, 석탄 더 쏟아내기는 탄소중립 기조를 명백히 거스른다. 극악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국제사회의 최우선 퇴출대상이 바로 석탄이었다. 전세계 기후대응을 주도하던 '선도부' 격의 유럽이 당당히 뒷걸음질을 친 셈이다.
이미 EU 27개국의 석탄화력발전량은 2020년 351.38TWh로 바닥을 찍고는 지난해 420.79TWh로 약 20% 반등한 상태였다. 최근 동향에 비춰보면 올해 수치는 더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퇴보 사유는 러시아의 '가스 옥죄기'다. 발트해를 지나는 노드스트림1 가스관로는 최대 용량의 40% 선으로 가스공급이 줄었고, 폴란드를 경유하는 야말-유럽 가스관로는 공급이 중단됐다. 러시아는 노드스트림1 공급량을 20%까지 더 감축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이후 유럽을 비롯한 서방세력은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취했다. 러시아도 유럽을 맞제재하면서 천연가스의 '루블화 결제' 강제 등 반격을 취하더니, 결국 유럽을 향하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잠가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EU는 러시아에서 1550억㎥의 천연가스를 수입했는데, 이는 역내 가스 수입의 45%, 총 가스 소비의 40% 수준에 달한다. 국가별 러시아 가스 수입의존도는 EU통계국(Eurostat)의 2020년 집계치 기준으로 체코·라트비아가 100%였고, 핀란드(97.6%), 헝가리(95%), 에스토니아(93%) 등도 압도적 비중이다.
이처럼 러시아 의존도가 컸던 유럽은 혹한기 난방연료 비축을 위해 가스화력발전을 멈추고 석탄을 때기 시작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러시아가 유럽 가스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면, 유럽의 석탄발전 설비가 장기 가동되고 석탄 발전량도 증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서방 제재가 탈탄소 방해"
이 와중에 러시아 정부는 '유럽 제재 탓에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엄포를 내놨다. 현지 언론에 지난 3월 보도된 내용을 보면, 러시아 에너지부는 자국내 에너지산업에 대한 감세 등 재정 지원책을 준비하면서 "서방의 제재 때문에 탄소배출량 감축 계획 달성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2020년 11월 UN에 제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70%까지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EU(1990년 대비 55%)보다 야심찬 목표였으나, 최근 정세를 탓하며 '달성 못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낸 것이다.
이는 유럽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한편, 정책의 부실 가능성을 외부 탓으로 선제 회피하는 동시에, 전세계 탄소중립 공조 대열에서의 '이탈 의사'까지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세계 4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통하는 러시아는 매년 전세계 이산화탄소의 5%를 대기에 내뿜고 있다. 특히 온실효과로 역내 영구동토층이 급속 해빙되면서 다시 대규모 온실가스가 방출되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 영구동토층 해빙 문제를 놓고는 미지의 고대 병원체 해동에 의한 팬데믹 위협까지 제기된다.
세계 모두의 기후대응 아니면 '집단자살'
물론 유럽 각국의 석탄회귀 행보는 대체로 일몰시한을 정한 한시 조치다. 독일 정부는 "2030년 탈석탄 목표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EU 집행위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석탄 사용량이 일시 증가하지만 중장기적 탄소중립 정책 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후퇴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이르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를 벗어나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내년까지 천연가스 비축량 10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선포했다. 그런데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0으로 끌어내리는 그날까지 어떤 지정학적 변수도 없을는지, 또 다른 퇴행이 발생하지 않을는지 알 수 없다.
독일의 경우 올해 최종적으로 가동 중단키로 했던 원전 3기를 재가동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나선 지경이다. 이같은 유럽의 퇴보는 특히 교토의정서·파리기후협약 체제를 주도하고, 탄소국경세제를 최초 도입하는 등 세계 기후대응을 이끌던 행적에 비춰 더 비판받는다.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40개국 기후회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선진 유럽'의 친석탄 행보를 겨냥해 "선진국들은 야심차게 선두에 서야 한다. 기후 리더십은 안락할 때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도전과 논란에 맞딱뜨려 무엇을 하느냐에 있다"고 질타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회의에서 "전세계적 기후위기에 직면해 놓고도 세계가 다자공동체로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동대응 또는 집단자살 중 하나"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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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장관순 기자 ksj0810@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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