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이수만 '행복', 희망을 놓지 않고 살다보면..

2022. 8. 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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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왔건만 숙박료가 크게 올라 선뜻 예약하기가 어렵다.

난세에 무엇이 위로가 될까마는 이수만이 부른 '행복'과 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가져보자.

이수만은 노래 속에서 '가난하지만 행복을 그리며 살다보면 파도를 넘듯 넘길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수만은 포기하지 않고 제작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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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이 직접 작사·작곡한 ‘행복’이 수록된 앨범.

휴가철이 왔건만 숙박료가 크게 올라 선뜻 예약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금리·유가 상승으로 고통 받는 국민이 한둘이 아니다. 바다로 떠나 파도를 만끽해야 할 때지만 ‘여름이 와도 여름 같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난세에 무엇이 위로가 될까마는 이수만이 부른 ‘행복’과 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가져보자.

오늘날 케이팝(K-Pop) 상징으로 여겨지는 SM엔터테인먼트 수장인 이수만은 1981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솔로음반 몇장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1977년 직접 작사·작곡해 발표한 ‘행복’은 그의 대표곡이다.

이수만은 노래 속에서 ‘가난하지만 행복을 그리며 살다보면 파도를 넘듯 넘길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삶은 노래처럼 되지 않았다. 1985년 귀국해 당시 유행하던 뉴에이지 장르 음반을 발표했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제작을 결심하고 SM기획을 설립해 ‘현진영과 와와’라는 팀을 결성했다. 이들은 ‘슬픈 마네킹’이란 곡을 발표해 성공하는 듯했지만 현진영이 마약 투약으로 구속되면서 2집 음반 40만장을 폐기처분했다. 불행은 파도처럼 연달아 밀려온다고 했던가. 도매상이던 광화문레코드까지 부도가 나면서 음반 미수금 5억원을 잃었다. 이후 함께 창업했던 매니저와 ‘와와’ 2기였던 김성재·이현도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럼에도 이수만은 포기하지 않고 제작을 이어갔다. 그는 1995년까지 한동준·김광진·유영진 등과 음반 10장 남짓을 연달아 제작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제작·실패하면서 노하우를 쌓았다.

그러다 이수만은 미국 아이돌 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 ‘엔 싱크’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더불어 음반시장 구매력이 성인에서 십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흥미롭게도 언급한 그룹은 모두 5인조였다. 이수만은 십대 다섯명으로 그룹을 기획했고 이것이 1996년 한국형 아이돌 시초인 ‘에이치오티(H.O.T.)’가 탄생한 배경이다. 돌이켜보면 실패가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 음악계를 강타한 케이팝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회 전체가 어려운 시기지만 특별한 해답이 없는 유병무약(有病無藥)의 시대다. 이럴 땐 ‘행복이 파도를 넘는 때가 곧 오리라’ 생각하며 이수만 ‘행복’과 같은 희망적인 노래를 한곡 들어보자. 작게나마 위로가 되길 빈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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