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보상·성과 꽉막혀".. 7급은 탈출, 국장은 '납작'
권한 줄고 인사적체 "미래·보람 못찾겠다"
과장 확실 '에이스급'도 민간 이직 "사기 떨어져 후배 잡지도 못해요"
고참들 '정년버티기'에 적체 극심.. 세종시로 근무 고립된 것도 문제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에서 17년 차 서기관(4급)이 대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보수가 많지 않고, 업무가 과도한 것 등이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과장 승진이 확실시되던 일 잘하는 ‘에이스’의 사표는 직원들에게 충격을 줬다. 경제 부처의 한 국장은 “공직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사기도 떨어지고 있다. 책임만 남고 권한은 줄었다. 떠나는 후배들을 잡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24년 차 부이사관(3급)은 작년 하반기 가상화폐거래소 계열사 임원으로 이직했다. 청와대 행정관 등을 거쳐 국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차관 후보였는데 미련 없이 떠나더라”는 말이 나왔다. 공정위에서는 올 들어 과장급 1명이 대기업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 2020년 핵심 보직인 경쟁정책국 총괄서기관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떠나기도 했다.
공무원이 되고 5년 이내에 ‘옷을 벗는’ 2030세대 공무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한편에서는 정년 퇴직 공무원이 역대 최대로 늘어나는 것은 공직의 위상 하락과 관련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직 사회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견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한 공직자는 “공무원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행시 출신들은 물론이고, 7급이나 9급 공채들도 인사, 성과 보상 모든 측면에서 꽉 막혀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신입들이 떠나는 조직
행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회의 힘이 강해지는 추세라 젊은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이런 현상이 강하게 보인다. 법 개정 사항인 정책 변경의 경우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좌절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관가에서는 “과거와 같이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결정은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원들이 여론이나 지역구 사정 등을 이유로 정책 결정을 백지화시키는 경우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 한 고위 관료는 “경제와 국가 시스템이 선진화되면서 개발도상국식 관료 주도 성장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관료 집단의 힘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퇴직과 이직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체된 분위기에 고참 공무원들은 정년까지 납작 엎드려 있고, 젊은 직원들은 떠난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고참급 인사 적체가 골머리다. 국세청 한 간부는 “2000년 이전에 입사한 직원들은 5급 이상으로 5년 이상만 근무하면 퇴직과 함께 세무사 자격증이 나오는 반면, 이후 입사자들은 세무사 시험을 따로 쳐야 한다”며 “행정고시 기준 44회 이후 젊은 직원들은 굳이 남아있을 이유가 한 가지 사라진 셈”이라고 했다.
기재부는 인사 적체가 가장 심각한 부처다. 주요 부처 차관급이 행정고시 36회인데, 기재부 36회 12명 중 5명이 아직 두 단계 아래인 국장급이다. 공정위도 1963년생 국장이 현직 차관보다 입사 3년 선배인데 내년 정년 퇴임 대상이다. 행시 출신 정년 퇴직은 경제 부처에서는 드문 경우였지만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세종시에 고립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 한 과장은 “민간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도 줄고, 민간 지식을 따라잡기도 벅차 유능한 사무관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공무원을 상대로 거대한 실험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몸만 바쁘고 보람이나 성취감은 전만 못해
최근 경제 부처들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위기 대응에 바쁘게 움직이지만, 파괴력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8일 대통령 주재 첫 비상경제민생회의 후 경제부총리와 기재부 내 주요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가졌지만 별 다른 메시지가 없었다. 그러자 젊은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위기 대응을 하는 것인지 회의 대응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왔다. 한 과장은 “회의 준비를 위해 스테이플러를 찍어 자료를 만드는 ‘스태이플러 공무원’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부처 내에서도 확실한 밥그릇을 보장해주는 부서가 인기를 모은다. 기재부 주요 부서였던 정책 3국(정책국·조정국·구조국)이 젊은 직원 선호도 꼴찌를 차지하고, 상대적 비인기 부서였던 예산·세제실 배치 희망이 늘었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민간 영역이 점차 고도화되다 보니 정부가 지식·정보 측면에서 우위를 갖는 분야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그나마 고유 업무와 자기 영역이 명확한 예산과 세제가 조명을 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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