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글쓰기로 여름나기

국제신문 2022. 8.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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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쨍쨍한 여름 오전, 어린이집 바깥 놀이터는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다. 어깨에 물통을 둘러멘 채 물총으로 물을 뿜어내고 플라스틱 낚싯대로 대어를 낚겠다고 분주하다. 연못에서 진짜 물고기를 잡는 아이도 있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물세례를 받으며 날쌘 다람쥐마냥 도망을 다닌다. 아이들은 저마다 즐겁게 여름을 난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는 선생님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거나 말거나.

시인 이육사는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린다고 했다. 어린이집 7월은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익어가는 시절 여름철 이야기들이 주절이주절이 열린다.

즐겁게 여름을 나는 아이들과 반대로 지쳐서 돌아온 나는 도통 이 여름이 싫어 죽을 지경이다. 맑고 푸른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송사리를 잡고, 할아버지 원두막에서 참외를 먹어본 (동요 노랫말처럼) 그런 기억이 있기나 한지, 까마득하다. 해운대 바닷가 한 번 가지 않는 내게 여름의 추억 같은 건 없다. 되레 더위와 싸우는 살인의 추억에 더 가깝다.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 놓고 바닥에 드러누운 채 뒹굴뒹굴거리기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끔은 대자로 뻗은 강아지나, 나나, 누가 더 바닥에 오래 붙어 있나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일어날 생각이 없다. 무의미하고 무성의한 여름이었다. 이 여름이 얼른 가주기를 바랄 뿐이다.

슬기롭게 여름나는 방법을 궁리해 보다가 우리 옛 선조들의 여름나기는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기를 쓰고 일어나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어를 쳤다.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 8가지의 더위를 피하는 법이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청점혁기(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허각투호(정자에서 투호놀이), 괴음추천(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 동림청선(동쪽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월야탁족(달 밝은 밤에 계곡 물에 발 담그기) 등 요약하면 이러하다. 무더운 날 졸음이 와서 책 읽기가 싫은 참에 손님 모으고 바둑 구경을 한다/튕겨 나온 화살의 점수는 곱절로 계산해야 한다면서 좌중이 떠들썩하게 웃는다/그네 타는 것이 굴러서 올 땐 허리 굽은 자벌레 같고 세차게 갈 땐 날개 치는 장닭 같다/둔한 마음 맑게 해탈했으니 신선이다/처마 아래 근심 털며 석양을 보낸다.

더운 건 고금을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슬기로운 지혜에 감탄만 연발 한다. 여름을 제 삶처럼 열정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나도 뭔가 해야 할 일들이 있을 듯했다. 그제야, 써야 할 글과 고쳐야 할 글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도 퇴고하지 않았던 몇 편의 단편들, 구상만 하고 있었지, 시놉시스 한 줄 쓰지 못했던 장편소설이 있었다. 다시 읽어봐도 문장은 엉성하고, 구성은 엉망인, 빈약한 상상력에 피식, 피식 헛웃음만 나오는 글들을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요즘, 나는 퇴근시간만 기다린다. 꿀이라도 발라 놓은 듯 이상하게 서둘러 집에 가고 싶어진다. 전화도 하지 않고 약속도 잡지 않는다. 집에 오면 방바닥과 한 몸이던 내가, 노트북을 켜고 글부터 고치기 시작한다. 글을 고치고 있노라면 바둑을 두듯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마치 그네를 타기 위해 용쓰는 허리 굽은 자벌레가, 날개 치는 장닭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매미 소리에 머리가 맑아진 듯 복잡한 머릿속에도 바람이 솔솔 인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듯 더위도, 세상 근심 걱정도 사라진다. 이렇게 즐거운 여름나기가 또 있을까 싶다.


아이들은 물놀이로, 옛 선조들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놀이로 나름 여름을 났다. 올여름 글쓰기로, 나만의 여름을 나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 편의 단편집과 또 한 편의 장편 소설집을 만나게 될지도. 부푼 기대감을 품는다. 올여름, 글쓰기로 나만의 추억을 더해 보는 프로젝트 하나가 만들어 진 것 같다. 여름아! 부디, 잘 부탁한다. 모두 지지치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이 여름을 보내기 바란다. 글쓰기로 나만의 성숙한 여름 나기를 꿈꾼다.

장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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