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사랑해요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2022. 8.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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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를 가르며 나는/ 새들의 날개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 사랑일기

이 노래가 수록된 ‘시인과촌장’의 2집(1986년)은 명반으로 꼽힌다. ‘한계령’과 ‘가시나무’로 유명한 하덕규와 탁월한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합작한 이 앨범은 ‘푸른 돛’ ‘고양이에게’ ‘진달래’ ‘풍경’ 등 서정의 극치를 이룬 곡들로 가득하다. 요즘처럼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들으면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하덕규가 그린 파스텔톤 재킷 그림까지도 신선하다.

하덕규가 대구까지 내려가서 함춘호를 영입했지만 이 앨범이 시인과촌장으로 낸 유일한 결과물이었다. 하덕규의 시적인 노랫말에 함춘호가 세련된 연주로 호흡을 불어넣었다. 하덕규는 이 앨범에서 고양이와 비둘기, 새벽공기를 가르는 새를 통해 자유를 노래했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YS와 DJ가 패배하자 크게 좌절한 그는 주변에 투쟁가를 쓰겠다고 선언한다. 3집앨범을 녹음하면서 정치권을 맹렬히 비판하는 곡들로 채웠지만 마지막에 모두 폐기했다. 새벽기도에 가서 자신이 누군가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물었고, 그 화답으로 나온 노래가 ‘가시나무’와 ‘나무’ 등의 노래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라고 노래한 그는 이후 CCM(기독교음악)에 매료되어 대중음악계에서 사라진다. 그렇지만 그가 대중음악의 노랫말에 시적 감수성을 불어넣은 몇 안 되는 아티스트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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