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말한다] 연행되는 함석헌, 1979년 11월 24일

2022. 8.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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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면서 학생들과 재야 인사들이 계엄당국의 눈을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혼식을 위장한 불법집회를 YWCA 강당에서 거행했다.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체육관선거로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고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500여 명의 하객들 앞에서 사회자가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라는 선언을 하자 박종태 전 의원이 단에 올라와 '국민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때 수백 명의 계엄군이 들이닥쳐 하객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일부 하객들이 창문을 통해 도주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함석헌이 연행되었다. 함석헌은 "사람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 할 일을 다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소장이 전투복 차림으로 서빙고를 방문해 연행된 김상현 전 의원에게 "나는 생사를 초월한 지 오래다. 재야에서 혼란을 유도하는 시위를 벌이면 참지 않겠다"고 협박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전민조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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