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81] 수박을 기리는 노래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8.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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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여름의 나무 (…)

황색 태양, 지쳐 늘어짐 (…)

목은 탄다, 이도 입술도, 혀도:

우리는 마시고 싶다

폭포를, 검푸른 하늘을, 남극을,

그런 뒤 제일 찬 것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을,

그 둥글고 멋지고, 별 가득한 수박을,

그건 목마른 나무에서 딴 것.

그건 여름의 초록 고래. (…)

물의 보석 상자, 과일 가게의 냉정한

여왕, 심오함의 창고, 땅 위의 달!

너는 순수하다 네 풍부함 속에

흩어져 있는 루비들, 그리고

우리는 너를 깨물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1904~1973)

(정현종 옮김)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여름에 갈증을 식히는 데 수박만 한 게 또 있을까. 단골 카페에서 수박 주스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한다. 시원한 것 중에 제일 시원한 것, 입에 들어오는 순간 그 청량함이 목을 지나 온몸에 분수처럼 퍼져나가고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수박을 ‘여름의 초록 고래’ ‘물의 보석 상자’에 비유하다니, 멋지다.

‘초록 고래’를 읽는 순간 태평양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떠오르며 가슴이 시원해진다. 언어란 참 묘한 것이다. 덥다고 말하면 더 덥다. 찌는 듯 무더운 오후, 오븐에 구워진 생선처럼 활기를 잃고 멍하게 있는 사람들에게 ‘물의 보석 상자’를 추천한다. (아이스크림? 단것을 먹으면 입이 즐거우나 갈증은 더 심해진다.) 한 통은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 수박을 자르는 칼질이 귀찮아 ‘과일 가게의 냉정한 여왕’을 사서 마신다. 주문하면 직접 갈아서 내놓는 신선한 음료. 남극을 입에 집어넣고, 내 얼굴을 수박 속에 파묻고 세상만사 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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