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칼럼] 남방큰돌고래와 반려동물

2022. 7. 3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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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드라마 '우영우' 속 고래는
영혼의 반쪽·자유로움을 의미
반려동물 현행법상 '물건' 취급
우리사회도 동물권 논의할 때

지금은 스페인에서도 투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물학대라고. 그래야 할 것 같다.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관광 구역으로만 남은 투우장에서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귀에 쏙,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케렌시아(Querencia)였다. 케렌시아는 투우장에서 싸우는 소만 아는 장소다. 싸우다 지친 소가 돌아와 잠시 숨을 고르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회복의 장소란다. 동물에게서 배우는 지혜가 있는 것 같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에게서 본능이 길임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대학 다닐 때 철학개론 시간에 던져졌던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영혼을 영혼답게 하는 것은 영성 혹은 신의 형상일 텐데 본능밖에 없는 동물과 이성이 본질인 인간은 존재론적 차이가 있는 거 아니겠냐고. 그렇지 않다면 동물을 먹는 인간의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되겠냐고.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나는 생각한다. 그런 구태의연한 대답을 참고 견뎠던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자문한다. 그때 왜 나는 그렇게 ‘존재론적 차이’까지 거론해가며 동물들을 이겨먹고자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상식과 편견을 생각 없이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대문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반가워 펄쩍펄쩍 뛰면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던 우리 집 강아지 루비와의 기억이. 그때 나는 루비와 함께 산야를 돌아다녔었다. 그런 루비를 잃어버리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느닷없는 이별이 몸과 마음에 어떻게 구멍을 내는지를 배운 것 같다.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먹은 밥이 소화가 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정을 나눈 강아지가 있었으면서 어떻게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는지. 그때 내게 영혼이라는 말은 인간중심적인 아집의 틀,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혼 속에는 남방큰돌고래가 있다. 우영우에게 그 돌고래는 영혼의 반쪽, 혹은 그림자다. 변호사인 그녀는 2009년, 제주 신풍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퍼시픽랜드로 끌려온 돌고래들이 법원의 판결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간 사건을 잊지 못한다. 고래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고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일이 그녀에게는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렇듯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는 우리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이 들어있다.

개 혹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점차로 많아진다. 개나 고양이가 가족으로 들어오면서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졌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기질을 아는 일이다. 본능과 기질을 알아야 교감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들과 교감을 하다보면 마음이 쉴 자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기대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상대의 본능과 감정을 존중해주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영혼의 길임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으니 종종 개물림 사고가 일어나고, 이에 따라 책임소재를 가려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때 벌의 근거가 되는 죄목이 과실치상이란다. 어떻게 과실치상이 될까 했더니 개를 범죄에 사용된 물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반려동물들은 현행법상 ‘물건’이다. 반려동물을 공격해서 상처를 입힌 자를 벌하는 죄목도 타인의 재물을 부수거나 망가뜨려서 손해를 입힐 때 적용하는 재물손괴죄라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를 물었던 80년대에서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되지 않는지.

이제 우리 사회도 동물권을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동물권은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지금 논의되고 있는 동물학대는 어떤 유형으로 나타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함께 사는 동물에 대해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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