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겪은 암 투병, 환우들에 등대 역할 할 것" [차 한잔 나누며]

이진경 2022. 7. 3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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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위한 비영리단체 '아미다해' 조진희 이사장
국내 한 해 25만명 발생에도 불구
투병 어려움 극복·대처법 잘 몰라
치료 경험 바탕 환우에 도움 결심
환우 에세이집 출간·화보 촬영 등
힘든 이들에 행복·긍정의 힘 전해
‘아미(ARMY)’는 이제 전 세계에서 보이그룹 ‘BTS(방탄소년단)’의 팬클럽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자리잡았지만, 국내에는 또다른 특별한 ‘아미’가 있다. 바로 투병 의지를 불태우는 암환자들이다.
비영리단체 ‘아미다해’ 조진희 이사장이 31일 서울 성동구 아미다해 사무실에서 암 환우들의 어려움과 지원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암환자들에게 ‘아미’라는 애칭을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은 암환자·암생존자를 위한 비영리단체 ‘아미다해’와 암환우를 위한 출판사 ‘아미북스’를 이끄는 조진희 이사장이다. 아미다해도 ‘아미들이 다 할 수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조 이사장은 31일 “3년 전 책을 만들 때 암 환자라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쓰는 게 불편해 귀엽고 편하게 표현한 것”이라며 “암 환우 중 BTS 팬이 있어 그분은 ‘나는 아미(ARMY)이자 아미’라고 한다”고 전했다.
국내 암 유병자는 2019년 기준 250만명이다. 한 해 약 25만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5년 암 생존율이 70%를 넘는다. 주변에서 쉽게 암 환자 혹은 암 완치자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암 환자들은 신체적·심리적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주변에선 암 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암 환자들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해주고,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워 주는 것이 조 이사장이 하는 일이다.
암 환자를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선 이유는 조 이사장 스스로 암을 겪었기 때문이다. 디자인회사를 운영 중인 그는 2018년 암 진단 후 수술을 받았다. 진단·치료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도움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고, 이는 암 환자들 다수가 공감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조 이사장은 “한 암 환우 모임에 나가게 됐는데 한 청년이 ‘아무라도 좋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장은 계속 다녀야 하는지,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는 있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며 “암 환자들은 투병 중 식단이나 운동 등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얻지 못해 인터넷만 뒤적인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에서 영양 등 자기관리, 마음 다스리기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고, 병원에서 운영하다 보니 병원을 멀리하고 싶어하는 환자들은 참여를 꺼리기도 한다. 조 이사장은 “먼저 겪은 암 환우가 ‘내가 이러이러했는데 결국 괜찮아지더라’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며 “암에 걸린 젊은 친구들이 나처럼 길을 돌아가지 않고 직선으로 갈 수 있게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독서모임 등을 진행하다, 지난 3월 아미다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자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아미북스는 암을 만나서도 밝고 솔직하게 사는 환우들의 이야기 엮은 책을 만든다. 매거진 형태의 ‘암밍아웃’부터 최근 출간한 에세이집 ‘이제야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까지 총 5권을 선보였다.
암 환우와 그 가족들이 함께 힘을 모아 ‘암티플’ 프로젝트도 하고 있다. 화장과 멋진 의상으로 암환우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시켜 화보를 찍어주는 작업이다. 암환자 유가족인 스타일리스트가 나섰고, 암 환우들이 스태프로 참여한다. 단발성 이벤트로 시작했는데, 호응이 좋아 지금까지 21명이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을 모아 지난해와 올해 두 번의 전시회도 개최했다. 조 이사장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찾는 긍정적 효과를 봤다”며 “촬영장에 함께 오는 가족, 친구들도 같이 행복해한다”고 전했다.
암 환자 스스로 의욕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 이사장은 강조한다. 그는 “암을 먼저 겪는 것일 뿐, 더 건강한 습관과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암 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물으니 ‘편견 없이 봐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암=죽음’이라는 인식 탓에 가정이 흔들리고, 치료가 끝나도 직장 복귀가 어렵다는 것이다. 조 이사장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고, 지원해주는 합리적 배려가 필요하다”면서 “암 환우는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치료가 끝나고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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