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얻어낸 '포스코 노동자' 지위..다음 세대는 차별 없는 세상에 살아야죠"

유선희 기자 2022. 7. 3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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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불법파견 소송 첫 제기
양동운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
양동운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왼쪽)이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동료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아래 사진은 그가 2018년 대법원 앞에서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문재원 기자·양 전 지회장 제공
하청노동자 독립업무 불가능 구조
대법원서 명확히 한 점 의미 있어
30년 넘게 일하고 지난해 정년퇴직
남은 1만8000명에 희망준 것 기뻐

지난 28일 대법원은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59명이 포스코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며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제철업종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한 첫 사례였다. 11년 전 이 소송을 시작한 양동운 전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3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고 저한테 한마디 했어요. ‘너 참 잘했다. 그동안 힘들었지’.”

소송은 2011년 5월 시작됐다. 그러나 11년 동안 싸운 양 전 지회장은 정작 판결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양 전 지회장은 지난해 12월31일 정년퇴직했다. 애초 대법원 선고일이 지난해 12월30일이었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싸움은 아니었다. 양 전 지회장은 “정규직으로 인정한다는 명확한 판결을 받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현재 근무하는 1만8000명의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줬다는 생각에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양 전 지회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포스코 생산구조상 하청노동자 업무가 독립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정규직과 업무를 구별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점이 의미 있다”면서 “또 포스코가 운영하는 전산관리시스템인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지시에 따라 원·하청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한 판결이었다”고 했다.

양 전 지회장은 1987년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입사해 30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열연공장에서 컨베이어를 타고 이동하는 코일을 크레인으로 들어 운반하는 일을 도맡았다. 양 전 지회장은 “크레인을 운전하려면 원청사인 포스코 지시가 있어야 했다. 하청사 독자적으로 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도급이라면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지 않고 원청에서 수주한 일감을 자체적으로 처리해 결과물만 납품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작업표준서도 포스코에서 만들어 배포했다.

하청사들은 포스코가 요구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에 불과했다. 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에는 근로자 파견이 금지된다. 또 파견법은 사용기한을 2년으로 제한하는데,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원청은 직접고용 책임이 있다.

양 전 지회장이 바꾸고 싶은 것은 또 있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은 하청노동자들이 도맡아 하는데도 임금격차가 컸다. 2011년 기준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정규직에게는 영업이익의 5.5%를 성과금으로 지급했는데 비정규직은 한 푼도 없었다. 2010년대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현장복과 안전모 색깔도 달랐다. 양 전 지회장은 당시 자신이 착용한 파란색 현장복과 노란색 안전모를 또렷이 기억했다.

양 전 지회장은 이 같은 문제제기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다 쉽지 않자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 나섰다. 소송 이후 사측은 하청사 반장을 대리인으로 세웠지만 업무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포스코는 또 MES에서 사용하는 ‘지시’라는 용어를 ‘정보공유’로 변경하며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양 전 지회장은 증거 하나하나를 차곡차곡 모았다. 포스코 손을 들어줬던 1심은 2심에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양 전 지회장은 “잘못된 부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권리주장한 결과로, 뿌듯함이 컸다”며 “제가 자식이 3명인데 우리 자식들이 ‘비정규직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보는 감정도 남달랐다. 양 전 지회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황은 임금차별 등 전국 어디든 똑같구나 느꼈다”며 “하청노동자 없이 생산라인은 돌아가지 않는다. 사용자가 하청을 쓰는 이유가 결국 노무비 절감이나 노무분쟁 감소일 텐데 이는 기업경쟁력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직 간 갈등으로까지 번진 것을 두고는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반으로 쪼개놓은 결과로 보인다. 언젠가 정규직 일자리도 위협받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청노동자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게 공정한 사회”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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