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R의 공포'에 접어들었다?

김재중 특파원 2022. 7. 3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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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열되는 '경기침체' 논쟁
NBER은?

20세기 초에 설립된 민간 연구단체. 산하에 있는 경기순환판단위원회에서 경기침체 시작과 끝을 공식 판정한다.
2분기 연속 GDP 역성장…“시작”
야당인 공화당, 경기 둔화에 공세
위키피디아선 ‘편집전쟁’ 벌어져

미국 경제가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역성장을 하면서 경기침체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2개 분기 연속 역성장’은 경기침체의 대표적인 지표라고 주장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경기가 둔화됐을 뿐 침체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경기침체의 시작과 끝을 판정해온 오랜 역사를 가진 민간 연구단체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미 공영라디오 NPR는 30일(현지시간)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위키피디아’에서 최근 경기침체의 정의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편집자로 새로 등록한 일부 사용자들이 경기침체 항목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두 분기 연속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면 경기침체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출처나 근거 없이 추가하자 관리 역할을 맡은 기존 편집자들이 이를 삭제하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인용 출처가 없거나 의심스러운 내용을 올려선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며, 논쟁적이거나 정치적 주장이 깔린 내용은 ‘토론 페이지’에 올리도록 하고 있다.

편집 전쟁이 반복된 끝에 경기침체 항목에는 “경기침체의 정의는 국가와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두 분기 연속 감소는 경기침체의 정치적 정의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이 추가됐다.

다만 부정확한 내용이 포함된 버전이 언론에 인용되는 등 파문이 커지자 기존 편집진은 경기침체 항목을 8월3일까지 수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했다고 NPR는 전했다.

최근 논쟁은 지난 28일 미 상무부가 2분기 GDP 성장률이 연율 기준 -0.9%라고 발표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GDP 성장률이 1분기의 -1.6%에 이어 두 분기 연속 뒷걸음질 치자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R의 공포’가 현실화됐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정부·연준 “아직 아니다”
일자리·투자 증가 들며 적극 방어
경기침체 판가름 ‘NBER’에 이목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실업률이 낮고 고용과 외국 자본의 미국 직접 투자도 늘고 있다면서 경기침체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뚜렷한 둔화를 목격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한 달에 약 4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경기침체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경기침체 여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야당 입장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경제 관리를 잘못해 경기침체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싶어하고, 정부·여당은 경기둔화이지 경기침체는 아니라고 반박하기 마련이다.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민간 연구단체인 NBER에 쏠리는 관심도 커지고 있다. 20세기 초에 설립된 NBER은 경기침체 시작과 끝을 공식적으로 판정하는 기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NBER은 산하에 경기순환판단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권위를 인정받는 경제학자 8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일례로 NBER은 2020년 6월 미국이 코로나19로 인해 그해 2월부터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이후 NBER은 경기침체가 2개월 만에 끝났다고 판단했다. 코로나19 초기엔 미국의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에 경기침체에 대해 이견이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엇갈리는 지표들이 나오고 있어 논쟁이 치열하다.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이 ‘두 분기 연속 GDP 성장률 감소’를 경기침체의 기술적 지표로 인정한 것과 달리 미국에선 경기침체의 정의가 느슨한 것도 논쟁을 키우는 요소다. NBER은 경기침체를 “경제 활동의 현저한 저하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몇 달간 지속할 경우”라고 정의한다. GDP뿐 아니라 고용, 소득, 지출, 산업 생산 등 6~7가지 지표를 검토한다. 경기순환판단위원회 위원장인 밥 홀 스탠퍼드대 교수는 “모든 지표를 동등하게 검토하며 어느 한 지표에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단일 지표만으로는 경기침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NBER이 실시간으로 경기침체 시작과 끝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경기의 고점과 저점에 대해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지난 뒤에 발표가 나왔다.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통계가 나중에 수정되는 사례가 많고, 가용한 모든 통계 수치를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NBER의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기순환판단위원회를 사후 시신을 검사하는 ‘검시관’에 비유했다.

이 위원회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처럼 공적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회의가 정기적으로 열리지도 않으며, 회의 결과를 반드시 공표해야 하는 의무도 없다. 위원 개개인은 만장일치 결정이 나오기 전에는 경기 순환에 대한 개인 의견을 언론 등에 섣불리 공표해서도 안 된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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