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몰아냈지만 여당 장악 의회는 건재..의회 개혁이 다음 과제"

김혜리 기자 2022. 7. 3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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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반정부 시위 활동가 차미라 데드두와 인터뷰
지난 9일 스리랑카의 대통령궁을 점거한 반정부 시위대. 콜롬보 | EPA연합뉴스
물가·연료 부족 사태 심각
중 일대일로 사업 ‘애물단지’
새 대통령도 군경 동원 탄압
목숨 건 투쟁은 현재 진행형

지난 9일 스리랑카인들은 정부에 최후통첩을 날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수도 콜롬보에 집결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20여년간 권력을 독점해온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하지만 시위의 최전선에 섰던 활동가 차미라 데드두와(36)는 30일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반정부 시위대의 목숨을 건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경제난의 주범인 정치 카르텔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또 새로 취임한 라닐 위크레마싱헤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시위대를 급습하고,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이들을 색출해 체포하는 작업에 나섰다고 전했다.

- 반정부 시위를 초래한 스리랑카의 경제난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1년 전에 점심 한 끼를 해결하는 데 150루피(약 545원)밖에 안 들었는데 지금은 400~500루피, 심지어 700루피를 써야 할 때도 있다. 비싼 걸 사 먹는 것도 아니고 쌀밥에 카레처럼 평범한 식사를 하는데 예전보다 3~4배 비싼 값을 줘야 하는 셈이다. 연료 부족 사태도 심각하다. 가스로 밥을 해 먹을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장작을 패서 불을 때 밥을 해 먹는 시대로 회귀했다. 택시 운행도 멈추고 개인 차량 이용도 거의 끊긴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디젤유를 구매하려고 72시간씩 정유소에 진을 치고 기다린다. 차를 타고 직장에 갈 수 없으니 재택근무를 하게 됐는데, 하루 평균 5~6시간, 심지어는 13시간씩 정전이 일어난다. 이것이 노동계급을 거리로 내몬 계기였다.”

- 연료 부족이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방아쇠’였나.

“그런 셈이다. 이번 스리랑카의 반정부 시위가 여느 반정부 시위와 차별화되는 점은 중산층 노동계급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다는 것이다. 연료나 전력 부족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들은 교외 지역에 거주하고 도시로 와서 일하는 중산층 계급이었다. 이들이 정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지면서 도시는 기능을 멈추기 시작했다.”

- 현재 스리랑카의 경제난을 초래한 요인들은 무엇인가.

“우선 정부의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이 형편없었다. 기민한 대응의 부재가 결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됐다. 또 스리랑카의 주력산업인 관광업이 코로나19로 위축됐다는 점도 경제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나.

“이용객이 너무 없어 ‘유령공항’이라 불리는 마탈라 공항이랑,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있는 크리켓 경기장도 중국 자금으로 세워진 애물단지 건축물들이다. 또 중국의 융자는 금리가 굉장히 높은 데다 상환기간도 아주 짧게 설정한다. 예컨대 일본은 우리에게 0.1% 금리로 경전철(LRT)을 설치하는 데 15억달러를 빌려줄 것을 제안했는데, 정부는 이걸 거부하고 중국으로부터 2% 금리로 25억달러를 빌리려 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낸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디지털전략가 차미라 데드두와. 로이터연합뉴스

- 반정부 시위는 올해 초부터 시작됐는데, 어떻게 7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다.

“시민 수천명이 대통령 집무실로 행진하면서 하야를 요구했던 4월9일이 반정부 시위의 분기점이었다. 이날부터 사람들은 집무실 인근 공원에 텐트를 세우고 점거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여기다 음악가들, 의사들, 변호사들, 시위대를 위한 심리상담가 등이 모이기 시작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까지 마련됐다. 그런데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 지지자들이 곤봉을 들고 몰려와 텐트를 철거하라며 우리를 급습했다. 그 후 우리는 조직적으로 시위를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결성된 위원회가 7월9일 시위 계획을 짰다.”

- 위원회는 어떤 이들로 구성돼 있나.

“마케팅업계 종사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가, 교수, 의사, 예술가, 변호사 등 수백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SNS로 사람들에게 소식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도 컸다. 스리랑카인들은 거의 다 페이스북 등 SNS 계정이 있다.”

-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사임한 지금, 시위가 성공했다고 보나.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해 스스로에게 무한한 힘을 부여할 만큼 막강한 대통령이었다. 시민들은 그렇게 힘센 대통령을 몰아내고, 사임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의회다. 전 대통령을 지지한 여당인 스리랑카인민전선(SLPP)은 여전히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의회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반정부 시위의 목적은 완전히 달성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 위크레마싱헤 대통령은 취임 후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급습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는데.

“지금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이끈 주요 인물들을 하나씩 단속해 나가고 있다. 나도 당장 내일 경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투쟁은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돼왔다. 대통령궁에 있던 현금을 보안요원들에게 넘겼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의회 개혁, 경제 정상화 등 여러 가지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고한 정치 카르텔에 맞설 힘을 실어달라.”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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