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적 고위험군에만 집중해 온 한국의 정책..취약계층 방역을 위한 '과학'은 없다[전문가 기고]

최홍조 건양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2022. 7. 3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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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6차 대유행 극복 어떻게 ④ <끝>
최홍조 건양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월20일 취임한다. 바로 다음날 대통령의 이름으로 행정명령을 발표한다. 그 제목은 ‘형평적 팬데믹 대응과 회복을 위한 행정명령’이다. 뒤이어 다양한 인종과 민족, 학생과 의료 공급자, 이주민과 장애인과 성소수자, 공중보건 전문가와 지역공동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코로나19 건강형평성 특별위원회’가 미 보건복지부 산하에 구성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의 초과사망률이 가장 높은 시기를 막 지나던 때였다. 이는 미국 내 취약계층이 어떤 위험에 직면했는지 과학적 근거를 찾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과정이다.

한국의 새 정부는 코로나 유행 이후 가장 큰 초과사망률이 발생한 시기를 지나던 때에 출범한다.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과학방역’을 천명한다. 하지만 2022년 여름 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 어떤 과학이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남의 나라 이야기 한 가지만 더해보자. 미국의 예방접종자문위원회는 과학과 윤리적 원칙에 근거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위원회는 보건의료 노동자와 장기요양시설 입소자의 다음 순서로 75세 이상과 ‘필수노동자’들을 백신 접종의 우선집단으로 정한다. 필수노동자는 경찰, 소방관, 교정시설 종사자 등 공무원뿐만 아니라, 식량 농업분야 종사자, 공장 노동자, 마트 직원, 대중교통 종사자, 교육과 아동 돌봄 종사자를 포함한다. 위원회는 필수노동자들이 어떤 위험에 놓여 있는지, 이들의 대면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면 어떤 위험이 전파될 수 있는지 과학과 윤리적 근거를 토대로 설명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예방접종 우선순위를 정할 당시 취약계층 혹은 취약 노동자들의 위험을 판단할 ‘과학적 근거’는 부족했고, 윤리적 원칙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벌써 1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의 방역정책은 고위험군 중심의 전략으로 전환한 지 오래다. 고위험군은 면역기능이 약한 어린이나 고령 혹은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한 이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즉 한국 방역정책이 다루는 취약성은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병리적 취약성’에 한정된다. 취약성의 개념이 학술적으로 다양하지만, 사회적·경제적·문화적·생태적 취약성은 병리적 취약성보다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루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예방접종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고, 4차 접종을 하는 지금도 예방접종사전예약시스템은 시각장애인과 이주민, 비문해인이 사용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인의 감염 위험과 사망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지만, 이 수치화된 과학은 장애인이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일상생활과 고통의 크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쪽방 주민을 포함한 홈리스에게는 역설적으로 코로나19의 위험이 결핵과 같은 다른 감염질환의 위험이나 더위·추위로 인한 위험과 다르지 않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위중증 환자와 보호자들은 경증을 거쳐 위중증으로 악화하는 동안 정부의 늑장 대응을 성토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취약계층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은 중증질환자나 입원 경험이 있는 가구들 중 약 20~30%는 재정적 고통(재난적 의료비)을 겪는 나라다.

코로나19 위중증으로 치료받는 환자들의 치료비 지원은 20일이 경과하면 중단되고, 더 이상 위중증 병상을 이용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격리 해제 기준인 7일 이후 위중증으로 악화되면 공식적으로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아니다. 장기간의 호흡기 치료 후 생존한 환자들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위중증 환자가 경험하는 이 모든 과정의 재정적 고통은 사회가 보호하지 않는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부터 코로나 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까지, 취약계층 방역을 위한 ‘과학’은 없었다. 그리고 그 ‘과학’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의 방역당국 어디에도 취약계층의 편에 서서 방역정책을 조율할 팀이나 주체는 없다. 이들의 방역을 위해 지금 어떤 ‘과학’과 ‘정치’가 필요한지 끊임없이 물어야만 지금의 위기, 또 다른 변이의 유행, 그리고 제3의 감염병 위기에 대응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최홍조 건양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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