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술 집약 '질주 DNA' 보여주고 인정받는 가장 효과적 방법

박순봉 기자 2022. 7. 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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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 'AMG'·BMW 'M시리즈'·현대차 'N브랜드'
자동차 회사들이 고성능 모델에 집착하는 까닭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 콘셉트가 N Vision 74 | 현대차 제공
개발에 큰 비용 소요,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브랜드 간판 역할
적용 신기술 일반차에도 탑재, 판매가격 높이는 ‘낙수 효과’도
친환경·효율성 앞세우는 전기차 시대에도 고성능 경쟁은 계속

양산차 회사들은 고성능 모델을 꾸준히 개발한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 BMW의 ‘M’, 현대자동차의 ‘N’ 등 대다수 양산차 회사가 고성능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고성능 모델 개발은 양산차 회사들엔 일견 모순된 행동처럼 보인다. 고성능 모델은 개발비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많이 팔리지도 않는다. 대량생산, 대량판매로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양산차 회사의 숙명으로 보자면 역주행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양산차 회사들이 고성능 모델을 내놓는 이유는 뭘까.

현대차 N의 콘셉트카 ‘RN22e, N Vision 74’. 아이오닉5N의 기반이 되는 모델 | 현대차 제공

■ 레이싱에서 출발한 고성능 DNA

고성능 모델의 시작은 레이싱카다.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포드 V 페라리>(2019)는 1966년 양산차 회사 포드가 레이싱카 회사 페라리를 꺾기 위한 도전기를 담고 있다. 페라리를 인수하려다가 모욕을 당한 최고경영자(CEO) 포드 2세는 아예 페라리를 경주에서 꺾기로 결심한다. 영화에선 포드의 경주용차 개발의 계기가 포드 2세의 상처 입은 자존심에서 시작되는 걸로 묘사된다. ‘포드 GT40’은 그렇게 개발됐다. GT40은 1966~1969년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24시 우승을 연거푸 차지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자동차 회사들은 모터스포츠에 참여하기 위해 레이싱카를 제작했고, 그 후속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고성능 모델을 개발하게 됐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나 BMW의 M이 대표적이다. 고성능 모델인 AMG는 1967년 설립됐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신인 다임러 벤츠를 떠난 이들이 모여 경주용 차량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벤츠 경영진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자 대회 출전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레이싱을 좋아하는 이들이 벤츠를 떠나 새로운 회사를 차린 것이다. 이후 양산형 일반 모델을 개조해 고성능 버전을 판매했고, 1990년대에 다시 다임러그룹에 합병된다.

BMW 뉴 M4 컴페티션 쿠페 & | BMW 제공

1972년 만들어진 BMW M도 회사 내 모터스포츠를 담당하던 부서가 분사해 설립된 회사다. 레이싱 드라이버 35명이 회사의 첫 구성원이었다. 아우디 설립의 배경에도 자동차 경주가 있다. 1899년 벤츠의 엔지니어였던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자동차 경주에 소홀한 벤츠를 퇴사해 만든 ‘호르히’가 아우디의 기원이다. 아우디 내 아우디스포츠가 고성능 모델인 RS와 S를 개발하고 있다. 수입차 관계자는 “모터스포츠는 기술을 개발하는 근간이 됐고, 고성능 모델 개발은 히스토리상 떼놓을 수 없는 본질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현대자동차처럼 일반 양산차로 시작한 후발 주자들은 전통의 자동차 회사들의 ‘헤리티지’에 도전하기 위해 고성능차를 개발했다. 현대차는 2012년 고성능 모델의 기원이 되는 레이싱카 개발 도전을 선언했다. 2012년 9월 파리 모터쇼에서 ‘i20 WRC’ 콘셉트카를 발표했다.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도전을 공식화했다. 현대차는 이후 2014년 12월 BMW M을 개발한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을 고성능차 담당으로 영입했다. 고성능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기 위해서다. 2015년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고성능 N 브랜드를 공식 발표했고, 2017년에는 유럽에서 N을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월드투어링카컵(WTCR)에서 2018·2019시즌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달 25일에는 고성능 전기차 모델 ‘벨로스터 N ETCR’로 이탈리아에서 열린 순수 전기차 경주대회 ‘2022 FIA ETCR’ 5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전통의 독일 자동차 회사에 비해선 후발 주자지만, 경주에 참여해 기술력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고성능차, 적게 팔려도 좋다… 낙수효과

자동차 회사들의 고성능 모델 개발에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판매량이 높진 않지만 고성능차 개발로 만들어진 기술이 일반 모델에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 차원인 셈이다. 높은 단가에서 나오는 높은 수익률은 오히려 덤이다.

고성능차는 수요층이 적기 때문에 절대 판매량이 적은 건 숙명이다. 다만 브랜드별로 차이는 있다. 고급차로 인식되는 브랜드는 고성능 모델 판매도 그만큼 많다.

현대차의 N브랜드는 2017년 출시 이후 벨로스터N, 아반떼N, 코나N 등 3개 모델을 국내에 출시했다. 2018년부터 2022년 6월까지 3개 모델의 국내 총 판매량은 7921대다. 모델별로 벨로스터N이 2018년 출시 때부터 지난 6월까지 약 4년 반 동안 총 4221대가 팔렸다. 2021년 시판된 아반떼N은 올해 상반기까지 3287대 판매됐다. 코나N은 같은 기간 동안 413대 팔렸다. 볼륨 모델인 그랜저가 2022년 1~6월까지 3만3672대가 팔린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게다가 판매량도 감소세다. 벨로스터N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1156→1005→1388대로 판매량이 소폭 늘었지만 2021년엔 510대, 2022년 상반기엔 162대가 팔리는 데 그쳤다.

BMW 최초의 고성능 순수전기 모델인 i4 M50 | BMW 제공

반면에 고성능 브랜드 라인업이 다양한 벤츠와 BMW는 고성능 모델 판매 비중이 작지 않다. AMG는 국내에서 2016년 2057대였다가 꾸준히 판매량이 늘어 지난해 7613대가 팔렸다. M은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M하이 퍼포먼스 및 M퍼포먼스 모델이 총 2515대 판매됐다. BMW가 올해 상반기 전체 판매량이 3만7552대인 점을 감안하면 6.7% 비중이다. 미니(MINI)의 고성능 모델인 JCW도 비슷하다. JCW의 올해 상반기 국내 판매량은 491대로, MINI의 전체 판매량 5776대의 8.5% 수준이다. BMW 관계자는 “고성능 모델을 다양하게 출시해 라인업이 풍부해졌다”며 “고성능 모델 안에서도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주기 위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고성능차 자체의 판매량도 중요하겠지만, 고성능차 개발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일반 모델에 적용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일종의 기술 ‘낙수효과’를 내는 셈이다. 현대차는 “WRC 경주차와 양산차 간의 기술 내재화가 활발하게 일어난다”며 “경주차에 쓰인 기술을 다듬고 발전시켜 양산차에 반영하고, 다시 이 양산차를 기반으로 경주차를 만든다”고 밝혔다. 경주용차가 개발되면, 고성능 모델과 일반 모델에 모두 적용되는 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도요타는 고성능 모델 개발의 이유를 설명할 때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의 말을 인용한다. “자동차 경주는 단순 엔터테인먼트(재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동차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레이싱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올림픽 선수들이 자신의 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듯 자동차 또한 레이싱을 통해 한계에 부딪히며 점점 진화한다.” 고성능 모델은 경주용차와 일반 모델 중간 쯤에 위치한 연결고리다.

고성능 내연기관차 모델

메르세데스-AMG CLS 54 4MATIC+

고성능 전기차 모델

메르세데스-AMG EQS 53 4MATIC+

■ 전기차 시대에도 계속될 고성능 전쟁

전기차 시대에도 고성능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전기차는 효율성과 친환경에 초점이 있지만 ‘달린다’는 차의 본질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되는 전기차 시장에서 누가 더 기술력을 가진 강자인지를 가린다는 점에서도 자동차 회사들로선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현대차는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5N, 기아는 EV6 GT 출시를 준비 중이다. EV6 GT는 올해 하반기, 아이오닉5N은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벤츠는 올해 하반기 ‘메르세데스-AMG EQS 53’을 출시한다. 아우디는 고성능 브랜드 RS 모델 최초 전기차로 ‘아우디 RS e-트론 GT’을 내놓은 바 있다. 포르셰는 고성능 전기차 ‘타이칸 GTS’를 이달 국내에 출시했다. 친환경, 효율성이라는 전기차의 전통적 기준과는 달리 속도와 힘에 기준을 맞춘 고성능 전기차 모델들이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 시대로 가더라도 자동차 회사들이 성능 경쟁을 할 것”이라며 “운전의 재미나 스포츠용의 의미도 있지만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업체들로서는 고성능 모델 경쟁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서 오히려 제로백(시속 0→100㎞ 도달 시간) 측면에서 유리하다”며 “전기차 개발의 기술력 중 하나가 배터리의 전기를 얼마만큼 끌어내서 구동력으로 전달해낼 수 있느냐다. 고성능 전기차 개발 경쟁도 치열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내연기관차에서 느꼈던 운전의 재미를 전기차로 옮겨간다는 의미도 있다”며 “운전의 재미나 고성능화에 대한 수요는 전기차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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