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美까지 反세계화 보조금 경쟁.. 한국선 '특혜딱지'

박정일 2022. 7. 3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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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신설 외투기업 수십조 지원
대통령까지 나서 인센티브 화답
국내선 지원대신 '보상금타령'
정부 대책도 결국 기업 돈으로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같았으면 특혜와 정경유착 시비에 휘말렸겠죠. "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자국 내 반도체 등 제조공장 유치를 위해 자국 기업은 물론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해 수십조원의 직접 지원과 파격적인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쏟아내자 국내 대기업의 L 사장은 31일 부러움 섞인 반응을 보였다.

또다른 S사의 K 임원은 "반대로 우리나라에선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정부 지원은 말 뿐이고, 보상금을 안 주면 투자를 막겠다고 하는 등 지역 이기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31일 본보가 취재한 주요 대기업의 투자 담당자들은 "외국 정부는 투자 인센티브를 통해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힘썼다고 언론에 드러내놓고 자랑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정부와 기업 모두 이런 결정을 했다가는 '특혜'라는 욕을 먹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SK그룹이 22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발표에 미국 일자리가 2025년까지 4000개에서 2만개까지 늘릴 것이라며, "역사적 발표"라고 최태원 회장을 추켜세운 적이 있다.

미국 등의 파격적인 혜택은 반도체 뿐 아니라 자동차 등 제조업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2025년까지 미국 조지아주에 6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조지아 주정부는 18억 달러(약 2조3580억원) 규모의 인센티브로 화답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내놓은 21조원 수준의 투자계획에도 2조원 안팎의 인센티브로 보답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우리나라 여주시의회는 지난달 28일 '용인반도체클러스터의 상생방안 촉구 성명서'를 내고,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 남한강 물을 하루 57만3000톤 가져가는 여주시의 희생을 요구한다"며 "SK는 이에 상응하는 여주시에 상생방안을 제시하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여주시에 성장관리권역을 보장하고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하고 경기도는 여주시의 중첩규제 완화와 지역 상생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덧붙였다.

이 사업은 지난 2019년 사업계획 발표 이후 정부의 환경영향평가 지연과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3년 가까이 시작하지 못했다. 지난 4월에서야 기초공사를 시작했는데, 6월 지방선거 이후 새 시의회가 구성되자 여주시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21일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을 내놓고 "중대한 공익 침해 등 명백한 사유가 없을 경우에는 인·허가의 신속처리를 의무화 하도록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지 열흘도 채 안돼 국가 최대 반도체 산업단지 구성에 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관로와 용수공급 등은 지자체의 고유 권한이라 중앙정부가 강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정부가 해당 지자체에 산단 유치에 따른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진작에 내놨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텐데,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오해를 받을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지자체 주민의 갈등 해소를 기업에 떠넘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해당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나올까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직접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용인 클러스터는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 415만㎡ 규모 용지에 조성되는 초대형 반도체 산단으로, SK하이닉스는 이곳에 120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 4개를 신설한다. 이 자리에는 50여 개에 달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업체도 입주한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파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 의회는 자국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총 2800억 달러(약 364조원)를 투자하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을 지난주 통과시켰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산업보조금을 자유주의 경제의 독약이라며 세계화를 외치던 미국도 중국에 이어 보조금 경쟁에 나선 것이다.

이 법안에는 시설 건립 지원 390억 달러, 연구·인력 개발 110억 달러, 국방 관련 반도체칩 제조 20억 달러 등 총 520억 달러(약 68조원)에 이르는 정부의 직접 투자를 포함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투자액의 25%에 달하는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 계획에 따라 66조원에 이르는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를 조성했고, 일본은 반도체 생산기반 강화를 위해 6170억엔(약 6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자국 내에 공장을 짓는 반도체 업체에 투자액의 일부를 직접 지원해주고 있다.

이에 비해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21일 내놓은 '340조원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에 나온 지원 대책에는 대부분 기업들의 투자 내용만 담겼고, 정부의 직접 지원은 2030년까지 2조2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은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최대 12% 수준이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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