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조기교육 시킬판".. '만 5세 입학' 반발 확산
하반기 국민 설문.. 2025년 시행
"아이들 학력격차 더 벌어질 것"
학부모·교원단체 등 반대 목소리
교육부가 이르면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하향, 유보(유치원 어린이집)통합 등이 포함된 학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이 조정되면 1949년 ‘교육법’ 제정 이후 76년 만에 처음으로 학제가 바뀌게 된다.
●초등학교 입학연령 1년 앞당겨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9일 이런 내용이 핵심으로 하는 새 정부 업무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업무계획을 보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현재 만 6세에서 만 5세로 1년 낮추는 학제개편방안을 추진한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이르면 2025년부터 시행한다. 현행 6-3-3-4제(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4학년)는 그대로 유지된다. 시행 초기에는 교원 수급이나 학교 공간 등의 한계로 4년간 25%씩 입학 연도를 당기게 되는 방안이 유력하다. 예를 들어 2025년부터 학제가 개편된다면 2025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들은 2018년 1월∼2019년 3월생이 되고 2026년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에는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에는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이 취학한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영유아 단계에서 국가 책임대상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결과적으로 대학 졸업시점을 1년 앞당겨 사회 진출하는 입직연령을 낮추도록 한다는 게 목표다.
이와 관련 아직 출범 전인 국가교육위원회가 주요 역할을 맡게 된다. 올해 말에 학제 개편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를 시작해 2023년에 학제 개편 시안을 내놓고 2024년에는 이를 확정해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한 후 2025년에는 전국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구상이다.
교육부는 ‘유보통합추진단’을 설치하며 추진단은 교육 중심의 관리체계 일원화 방안을 마련한다. 또 다양한 고교유형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방침을 뒤집고 자사고를 유지하기로 했다. 2025년 3월 일반고로 전환될 예정이었던 외국어고(외고)는 예정대로 폐지될 전망이다.
일반고는 다양한 분야의 교과 특성화학교를 운영하고 정보 교과 과목을 신설하는 등 교육역량을 높인다. 온라인 학교를 신설하고 인공지능(AI) 융합 교육 중심고도 운영한다. 학생과 학부모 각 1만 명을 대상으로 현행 대입정책과 앞으로의 대입 개편 방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하고 학생과 학부모 의견 중 추진 가능한 과제를 ‘2022 개정 교육과정’과 ‘2028 대입제도 개편안’에 반영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오는 12월에, 대입제도 개편안 최종안은 2024년 2월 확정된다.
이밖에 대학평가와 대학설립 운영 규정 등 핵심 규제를 전면 개선하고 한계 대학은 구조 개선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경영 위기 대학의 경우 구조개선 목적의 적립금 사용, 재산 처분 등의 규제 특례를 인정하고 학교 간 통폐합도 지원한다. 회생 불가 대학은 지역의 공익·사회복지법인으로의 기능 전환 등의 퇴로를 마련한다. 국립대는 국가 전략 분야와 인문학 등을 중심으로 특성화하고 ‘국립대학법’을 제정해 국가·지자체와의 협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책무를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을 놓고 학부모는 물론 교원단체, 입시학원계조차 비판적인 의견이 내놓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생을 키우는 워킹맘 성모(41) 씨는 “유아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싶다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공교육화하면 된다. 지금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제대로 연락이 안되고 돌봄도 안되는 등 어려움이 많은데 더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가 어떻게 돌보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아를 둔 부모들은 이미 “아이들 학원 다니는 시기가 더 앞당겨지겠다”, “태어나자마자 조기교육 시켜야 할 판”, “입시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개편해야 하는데 그것까지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유아의 인지·정서발달 특성상 부적절하며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시기를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의 단체는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연대’를 결성하고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역시 재검토 입장을 내놨다. 교총은 논평에서 “학제개편은 특정 시점의 학생이 두 배까지 늘 수 있다는 점에서 대폭적인 교사 수급, 교실 확충과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한 것은 물론 이들이 입시, 취업 등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등 이해관계의 충돌, 갈등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도 초교 조기 입학이 허용되지만 호응도가 낮고 OECD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적절하지 않다는 점도 제기됐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논평을 통해 “지금도 1년 일찍 입학할 수 있지만 2009년 9707명이던 조기 입학생은 2021년 537명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OECD 38개국 중 26개국가 만 6세에 초등에 입학하며 4개국만 5세에 입학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학습자 삶 중심의 학제개편’ 보고서를 보면 유럽연합 33개국 중 초등 취학연령이 ▷만 4세 1개국 ▷5세 5개국 ▷6세 19개국 ▷7세 8개국이다.
학제개편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사립 유치원들의 반발도 거세다.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는 “만 5세 유아는 전체 유치원 유아의 40∼5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유치원의 주요 교육 대상이다. 강경 추진한다면 정권 초기의 엉뚱하고 다급한 발상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입시전문업체인 종로학원도 전망 자료를 내고 “조기 입학을 준비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간 학력양극화와 입학 전 선행 및 사교육 분위기 확산이 우려된다”며 “특히 지금도 대학생이 졸업 유예를 하는 상황에서 반수 재수 증가도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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