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둔촌주공, 페북, 메타버스

한겨레 2022. 7. 3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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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지난 6월5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연합뉴스

[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2000년대 초반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저술한 <아파트 공화국>은 아파트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욕망을 해부해 주목받았다. 당시엔 타워팰리스 등 주상복합이 막 등장하던 시기라 면적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정도만 언급됐는데, 저자가 최근의 아파트 고급화 추세를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사인보드 아래로 지하 주차장 진입로가 말끔한 단지 입구는 쇼핑몰을 연상케 한다. 육중한 자동문이 열리는 로비로 들어서면 컨시어지 데스크가 맞아주는 장면은 흡사 호텔 같다. 수영장과 라운지는 기본이고 도서관과 짐, 골프 연습장만으론 부족하다. 인피니티풀이며 실내 테니스코트, 오페라극장까지 들여놓겠다는 재건축 단지들도 속속 나온다.

올림픽공원을 지나 서하남 나들목(IC)으로 향하다 보면 ‘유치권 행사 중’ 같은 시뻘건 펼침막을 두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이다. 일개 재건축 중단 사태가 제법 비중 있는 경제 뉴스로 다뤄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향후 재건축 사업의 향배를 가늠케 해줄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라 부연한다. 부동산 시장에서 재건축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며 수급 문제 등은 내 알 바 아니지만, 어릴 적 그 단지에 살았던 친구들이며 지금 어딘가 임시 거처에서 새집이 완공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조합원들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도시의 고급 신축 아파트를 갖게 된다는 것은 광고 문구처럼 차별화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며 강력한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반면 둔촌주공 재건축 중단 사태나 재건축 조합의 각종 비위를 둘러싼 분쟁을 접하게 되면 아파트에 속박된 재산권이 과연 온전히 내 것인지 의심하게 한다. 대단지 아파트의 효용성과 재산권 행사의 자유 사이에 나 있는 크레바스의 간극. 아파트 소유가 과거엔 도시 주거의 물적 토대를 만들기 위한 공동구매였다면, 이제는 배타적 이용권과 재산 증식의 환금성을 갖춘 초고가 회원권 개념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쯤 되니 엔에프티(NFT·대체 불가능한 토큰)와 아파트 소유권 사이 거리가 단독주택과 아파트 간 그것보다 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둔촌주공 사태만큼이나 화제가 된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의 일방적인 개인정보 활용 동의 약관 개정 사태는 온라인에 구축된 내 정보, 콘텐츠, 사회적 관계에서 내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나의 정보를 상업화하는 것에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나를 기꺼이 배제하겠다는 메타의 으름장은 다수결의 횡포로 무장한 재건축 조합의 전횡과 닮았다. 웹3.0이 자주 거론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역설하는 대목이다. 나를 중심으로 내가 구축에 참여하고 속한 네트워크의 소유권이 엉뚱한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가능성.

올해의 유행어로 등극하고도 남을 메타버스에서 아바타 캐릭터니 땅따먹기, 증강현실 같은 건 그저 신축 아파트 단지의 광고 전단과도 같은 것이다. 알렉사, 지니, 누구 등의 생경한 이름을 더는 어색하게 불러대지 않는데도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하는 것처럼, 로지나 한유아 같은 버추얼 캐릭터가 흥행하는 것이 메타버스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실은 물질세계에 종속돼 있던 권리들이 추상화되고 가상화되는 역사적인 과정이 비가역적인 지점에 이르게 된 사회를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기술적 한계로 물리적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경제가 관심사와 경험 같은 비물질의 영역으로 이동해 왔고 이제는 사회적 관계며 경제적 권리관계까지도 탈물질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파트 소유권은 무엇인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있는 내 정보는 진정 나의 것인가? 웹3.0과 메타버스의 ‘멋진 신세계’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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