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침해 공동소송대리' 논란/상] 과기·산업계 숙원.. 불붙은 국회논의 분수령

이준기 2022. 7. 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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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서 첫 발의후 폐기 반복.. 21대 진통끝 산자위서 의결
심결취소소송은 허용, 특허소송만 막혀.. "구시대 규제 개선을"
21대 국회가 특허침해소송에서 필요 시 변리사를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상임위를 거쳐 법사위에서 논의한다. <특허청 제공>

'특허침해소송 변호사-변리사 공동대리제도(이하 공동소송대리제)'는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20년 숙원이다. 공동소송대리제는 특허권, 상표권 등 특허침해소송 시 당사자(원고·피고)의 필요에 의해 변리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공동소송대리제 도입을 담은 '변리사법 개정안'이 처음 발의된 후 18·19·20대에서도 계속 발의됐지만, 법조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다. 2020년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다시 법안이 발의됐고, 진통 끝에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서 의결돼 현재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변리사법 개정안이 의결되자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과기계·산업계와 변리업계는 환영했지만, 변호사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최근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타결되면서 법사위를 중심으로 관련 공방이 격화될 예정이다. 관련 쟁점과 해외 선진국 사례, 향후 보완 사항 등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20년 간 변호사만 '특허침해소송' 대리 허용…변리사는 배제=최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천재 변호사 이야기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ATM(자동화기기)의 카세트(지폐 보관통)에 대한 경쟁 업체 간 기술탈취 사건을 다룬 내용이 방영됐다.

피고는 카세트 관련 기술을 개발해 실용신안으로 출원한 만큼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원고는 이미 공개된 미국 기술을 피고가 그대로 배껴 출원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출원 전에 다른 기업이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에 피고가 출원한 기술은 무효라는 점을 제시하며 법정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를 비롯해 소송 대리 변호사들은 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한 탓에 변론에 어려움을 겪었다.

드라마 속 장면처럼 우리나라 특허침해소송은 오직 변호사가 대리하고 있다. 특허의 기술적 내용과 권리범위, 기술 개발과정, 상대방의 기술·제품 분석 등 기술 전반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이해도가 높은 변리사를 소송 대리인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허침해소송은 상대방 특허의 유·무효와 침해 여부를 얼마나 명확히 변론하는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데, 법률 소비자를 대신해 이를 전문적으로 대리하는 기술·특허 전문가인 변리사의 참여가 막혀 있는 것이다.

◇심결취소소송은 가능하지만 특허침해소송만 막혀=아이러니는 특허침해소송과 동일한 쟁점을 다루는 심결취소소송은 이미 수 십년 간 변리사가 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특허침해소송은 오직 변호사만 대리하도록 모순된 법적 체계가 운영 중인 것.

이 때문에 주요 법률 소비자인 과학기술계와 산업계는 특허침해소송에 변호사뿐 아니라 필요 시 변리사가 대리할 수 있도록 지난 20년 가까이 공동소송대리제 도입을 요구해 왔다. 이 경우 소송 당사자들은 특허침해소송을 위해 변호사뿐 아니라 특허 유·무효와 침해여부 등 기술 변론에 도움을 줄 변리사를 따로 선임해야 하는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실제로, 특허침해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단독으로 소송을 처리하지 않고, 변리사와 함께 소송을 준비하거나 진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변리사협회 관계자는 "심결취소소송은 변리사와 변리사 모두 단독으로 대리할 수 있지만, 고도의 기술·특허 전문성이 필요해 실제 대다수의 심결취소소송은 변리사 또는 변리사 자격을 보유한 변호사가 대리하고 있다"며 "변리사를 특허침해소송에서 굳이 배제시켜 변호사 단독 대리를 고수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계·산업계·학계, "도입 필요" 한 목소리=지식재산권 분쟁을 겪고 있는 국내 기업 10곳 중 9곳은 영세한 중소·벤처기업이다. 이들 중 80%가 특허 분쟁 발생 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변리사를 침해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응답할 정도로, 특허침해소송의 핵심 당사자인 중소·벤처기업의 공동소송대리제 요구는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산업계와 학계에서도 갈수록 첨단화·고도화되는 특허침해소송에서 기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시를 내 왔다. 변리사는 특허 유·무효, 특허 침해여부 등에 초점을 맞춰 소송을 대리하고, 법률적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는 민사소송 절차, 집행, 손해액 산정 등 일반적인 법률 쟁점을 중심으로 협업하면 소송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변호사협회를 중심으로 법조계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특허침해소송은 기술 전문성이 일부 요구되긴 하지만, 일반 민사소송과 다를 바 없고, 법률 전문성이 부족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를 허용하면 오히려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동소송대리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변호사협회 측은 "특허심판원의 무효심판 절차 등에서 독자적 대리권을 행사하고 있는 변리사가 민사소송에서 소송 대리권을 행사할 경우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비용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체계적인 법률 교육을 받지 않고, 변호사 시험을 거치지 않은 비전문가인 변리사에게 포괄적 소송 대리를 부여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기업이 가진 유일한 무기인 특허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선 특허침해소송에서 산업재산권 전문가인 변리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국회와 정부는 특허침해소송 공동소송대리 제도를 도입, 구시대적 규제를 개선하고, 벤처·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 힘써달라"고 요구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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