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전현직 대통령의 상반된 업무 방식

김형호 2022. 7. 3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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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분량 좀 줄여주세요."

이 관계자는 "'첨부 자료까지 읽겠느냐'는 생각에 관성적으로 넣었는데 문 대통령은 다 읽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부턴 보고서를 핵심 중심으로 줄여서 올렸다"고 전했다.

검찰 시절에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인사는 "후배들이 수십페이지의 조사보고서를 들고 가면 첫 페이지의 요약본만 읽어보고 '잘할 수 있지' 하고선 사인해주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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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호 건설부동산부장

“보고서 분량 좀 줄여주세요.”

2019년 4월 강원 고성군과 속초시 일대를 덮친 강원도 산불 진화 작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과의 면담 시간에 색다른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핵심 사안 중심이어야 하는데 수십 장의 별첨 자료까지 붙어 있어 다 읽느라 힘들었습니다.” 자신을 ‘활자중독’이라고 여기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공직사회의 ‘보고서 폭탄’에는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첨부 자료까지 읽겠느냐’는 생각에 관성적으로 넣었는데 문 대통령은 다 읽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부턴 보고서를 핵심 중심으로 줄여서 올렸다”고 전했다.

책이나 보고서 등 활자를 통한 정보 습득을 편하게 여긴 문 대통령의 성향은 청와대 바깥의 생생한 소식을 경청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퇴근 후에도 보고서를 즐겨 읽어 집권 기간 내내 ‘바깥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따라다녔다.

 물·기름처럼 이질적 보고 스타일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에게 긴급 현안 보고를 들어간 A장관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수일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마련한 보고서를 들고 갔다. 여러 경로를 통해 대통령의 보고 방식을 수소문해봤지만, 정부 출범 초기인지라 속 시원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기존보다 분량을 줄이고 주요 내용 중심으로 정리한 보고서와 관련한 도표를 준비해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장관이 들고 온 도표 중 눈길을 끄는 내용에 대해서만 20여분 동안 물어봤다고 한다. 보고서는 첫 페이지조차 열어보지 않았다.

이런 윤 대통령의 스타일은 검사 시절에도 비슷했다고 한다. 검찰 시절에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인사는 “후배들이 수십페이지의 조사보고서를 들고 가면 첫 페이지의 요약본만 읽어보고 ‘잘할 수 있지’ 하고선 사인해주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보고서 안에 들어 있는 텍스트보다 일하는 사람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국민 공감도 높이는 리더십 절실

부처 장관과의 1 대 1 부처 업무보고도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윤 대통령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통 새 정부의 업무보고에는 해당 부처 실·국장급뿐 아니라 청와대 핵심 참모, 여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상임위원장과 간사 등 당·정·청 관련 인사가 모두 참여한다.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을 한 번에 공유하는 자리를 통한 정권 초기의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반면 1 대 1 방식은 주변을 물리고 궁금한 부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다만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여러 단계의 하향식 전달 경로를 거치는 게 맹점이다.

최근 들어 윤 대통령의 업무보고 방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9일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 후 갑작스레 튀어나온 ‘입학 연령 만 5세 하향’ 추진이 대표적이다.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은 대통령 공약에도 없었다. 1949년 교육법 제정 이후 76년 만에 대한민국의 학제를 바꾸는 정책이 난데없이 등장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이도 없다. 일각에선 ‘최소 100만 표는 날아갈 사안’인데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책은 절차적 정당성과 숙의를 통한 국민의 수용성을 확보하는 게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람 만나는 일보다 활자를 가까이 한 리더십도 아쉬웠지만, 정책 과정을 담은 보고서나 숙의 과정을 경시하는 리더십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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