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외국인 자금 5개월 연속 유출 .."'디폴트' 확산 우려↑"
"다음은 아프리카될 수도..튀르키예도 안심 금물"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신흥국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5개월 연속 빠져나갔다. 사상 최장 기간의 자금 유출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신흥국들이 통화가치 하락과 차입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자금유출은 외채 상환에 버거워하는 신흥국 경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국제금융연구소(IIF)는 이번 달 신흥국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총 105억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이탈했다고 밝혔다. 5개월 연속 순유출이다. IIF는 신흥국의 외국인 자금 순유출이 5개월간 진행된 것은 2005년 이후 최장 기간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간 유출된 자금은 총 380억달러로 집계됐다.
JP모건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 발행하는 신흥국 외화채권 시장에서도 올해 총 300억달러가 인출됐다. 이같은 자금 유출 탓에 신흥국 국채 금리는 큰 폭 인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FT가 JP모건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소 20개의 신흥국과 프론티어(제2의 신흥국)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외화채권 금리는 미국채에 비해 평균 10%포인트 높다. 이 수치는 높을수록 신흥국들 경제가 불안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흥국들의 자금 유출은 매우 급격하고 어느 국가를 가릴 것 없이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IIF의 조나단 포천 바가스 이코노미스트는 “올 초까지만 해도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를 수출하는 신흥국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은 좋았다”며 “그러나 최근 몇 주 안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한 신흥국에서 빠져나가면 다른 신흥국으로 옮겨가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 신흥국 전체에서 유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준, 침체 오더라도 금리 올릴 것…디폴트, 대형 신흥국까지 번질 수도”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은 연준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완화를 최우선 과제로 선포하고 강도 높은 긴축을 진행하면서, 신흥국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달러로 표시된 채무 상환 비용을 증가시키는데, 상대적으로 외환보유액이 적은 신흥국에는 치명적이다.
남아시아 신흥국의 경우 이미 디폴트를 선언하거나 위기에 처해있다. 자금 유출은 달러가 모자란 이들 국가의 상황을 더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디폴트를 선언했고, 파키스탄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에 11억7000만달러를 지원받기로 한 데 이어 방글라데시도 지난 24일 IMF에 45억달러 규모의 차관 지원을 요청했다.
일각에서는 아프리카 신흥국들도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투자사 애버딘의 케빈 달리 투자 책임자는 아프리카 가나는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달러 채무가 급격히 늘어 외환보유액이 작년 말 97억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말 77억달러로 줄었다며 “달러가 향후 1년간 이같은 속도로 사라진다면 가나도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비교적 체력이 튼튼한 대형 신흥국들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연준이 계속해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자금 유출이 지속되면 이들도 디폴트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리 인하를 고집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튀르키예(터키)에 대한 염려가 크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고금리는 만악의 근원”이라며 저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고준혁 (kotae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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