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독재자 몰아낸 스리랑카 시민들은 왜 "절반의 성공"이라 말할까[인터뷰]

김혜리 기자 2022. 7. 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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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낸 ‘아라갈라야(투쟁)’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활동가 차미라 데드두와(36).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스리랑카인들은 정부에 최후통첩을 날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수도 콜롬보에 집결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20 여년간 권력을 독접해온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하지만 7·9일 시위의 최전선에 섰던 활동가 차미라 데드두와(36)는 3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반정부 시위대의 목숨을 건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경제난의 주범인 정치 카르텔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또 새로 취임한 라닐 위크레마싱헤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시위대를 급습하고,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이들을 색출해 체포하는 작업에 나섰다고 전했다.

“가스 불로 밥도 못 해 장작 패는 시대로 회귀”
스리랑카인들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수도 콜롬보에서 가스를 구입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 게티이미지

- 반정부 시위를 초래한 스리랑카의 경제난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1년 전에 점심 한 끼를 해결하는 데는 150루피(약 545원)밖에 안 들었는데 지금은 400~500루피, 심지어 700루피를 써야 할 때도 있다. 비싼 걸 사 먹는 것도 아니고 쌀밥에 카레처럼 평범한 식사를 하는 데 예전보다 3~4배 비싼 값을 줘야 하는 셈이다. 연료 부족 사태도 심각하다. 가스로 밥을 해 먹을 수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장작을 패서 불을 때 밥을 해 먹는 시대로 회귀했다. 연료를 사들일 돈도 없으니까 택시 운행도 멈추고 개인 차량 이용도 거의 끊긴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디젤유를 구매하려고 72시간씩 정유소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건 일상이 됐다. 그렇게 기름을 사려고 줄을 서 있다가 죽은 사람들도 여럿 나왔다. 차를 타고 직장에 갈 수 없으니 재택근무를 하게 됐는데, 하루에 평균 5~6시간, 심지어는 13시간씩 정전이 일어난다. ‘정상적인 근무’는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보면 된다. 이게 노동 계급을 거리로 내몬 계기였다.”

- 연료 부족이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방아쇠’였나.

“그런 셈이다. 이번 스리랑카의 반정부 시위가 여느 반정부 시위와 차별화되는 점은 좌파 운동권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라 중산층 노동 계급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골로 가면 연료 부족이나 정전 등 문제가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줄어들지만, 교외 지역에 거주하고 도시로 와서 일하는 중산층 계급은 이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정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지면서 도시는 기능을 멈추기 시작했다.”

현 사태는 “무능한 정부와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합작”

- 현재 스리랑카의 경제난을 초래한 요인들은 무엇인가.

“우선 정부의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이 형편없었다. 국경을 봉쇄하자는 여론이 일었는데 당시 라자팍사 대통령은 ‘고작 28명이 죽은 걸로 어떻게 봉쇄를 시행하냐’면서 시민들의 고통에 무감각한 모습을 보였다. 확진자 수를 초기에 잡지 못하는 등 기민한 대응의 부재가 결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됐다. 또 스리랑카의 주력 산업인 관광업이 코로나19로 위축됐다는 점도 경제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사실 그 전에도 스리랑카는 부채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대목에선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나.

“그냥 거리에 지나다니는 스리랑카인 아무나 붙잡고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욕할 것이다. 예컨대 지난 2019년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빌린 자금으로 콜롬보 중심부에 로터스타워라는 건물을 지었다. 근데 이걸로 벌어들인 수입은 지금까지 0달러라고 들었다. 이용객이 너무 없어서 ‘유령공항’이라 불리는 마탈라 공항이랑,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있는 크리켓 경기장도 중국에서 빌린 자금으로 세워진 애물단지 건축물들이다. 또 중국은 굉장히 높은 금리로 융자를 빌려주는 데다가 채무를 갚아야 하는 기간도 아주 짧게 설정한다. 예컨대 일본은 우리에게 0.1% 금리로 경전철(LRT)을 설치하는 데 15억달러를 빌려줄 것을 제안했는데, 정부는 이걸 거부하고 중국으로부터 2% 금리로 25억달러를 빌리려 했다.”

- 라자팍사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사회 혼란이 가중됐다는 분석도 있다.

“맞다. 고타바야 라자팍사는 대통령이 되면서 전 정부의 과세정책들을 폐지했다. 스리랑카 2240만 인구 중 140만명이 공무원이다. 거둬들이는 돈은 없는데 공무원들한테 지급해야 할 돈을 마련해야 하니까 정부에선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쳤고, 정부는 환율을 인위적으로 고정하기 위해 외환보유고에 있는 달러를 쓰기 시작했다.”

- 외신에선 라자팍사 정부의 살충제 수입금지도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던데.

“라자팍사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던 유권자들은 싱할라족과 불교 신자들이었는데, 이 ‘킹메이커’ 세력 중엔 반서방 세력도 있었다. 이들이 서방에서 수입하는 화학비료나 제초제, 살충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갑자기 유기농 왕국을 이루겠다며 농업 부문의 붕괴를 불러온 정책들을 밀어붙인 것이다.”

20년 독재정권 내몬 이들은 ‘일반인 수백명’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집결한 시위대 영상. | 스리랑카 페이스북 갈무리

- 반정부 시위는 올해 초부터 시작됐는데, 어떻게 7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다.

“그 전에도 지역 단위 시위는 산발적으로 열렸지만 시민 수천명이 대통령 집무실로 행진하면서 하야를 요구했던 4월9일이 반정부 시위의 분기점이었다. 이날부터 사람들은 집무실 인근 공원에 텐트를 세우고 점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여기다 음악가들, 의사들, 변호사들, 시위대를 위한 심리상담가와 구급차 등이 모이기 시작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까지 마련됐다. 현장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일종의 축제 분위기까지 형성돼 이곳에 온 이들은 하나 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런데 5월9일에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곤봉을 들고 몰려와 텐트를 철거하라며 우리를 급습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시민들은 분노했고 이는 라자팍사 총리의 사퇴로까지 이어졌다. 그 후 우리는 조직적으로 시위를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결성된 위원회가 7월9일 시위 계획을 짰다.”

- 위원회는 어떤 이들로 구성돼 있나.

“7월9일 시위를 계획한 위원회는 마케팅 업계 종사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가, 교수, 의사, 예술가, 변호사 등 수백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사람들이 주변인들에게 그날 콜롬보에 모이자고 설득했고 그렇게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수 있었다. SNS로 사람들에게 소식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도 컸다. 스리랑카인들은 거의 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계정이 있다.”

시위, 그 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 13일(현지시간) 총리 집무실을 점거한 채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 게티이미지

- 대통령궁을 점거한 뒤 라자팍사 가문의 사치 수준에 경악한 스리랑카인들의 모습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나도 대통령궁을 방문한 뒤 경악했다. 정부가 우리를 배신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사치의 수준을 직접 목격했을 때의 느낌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날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사임한 지금, 시위가 성공했다고 보나.

“시위대의 초기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해 스스로에게 무한한 힘을 부여할 만큼 역대 스리랑카 대통령 중 가장 막강했던 대통령이었다. 시민들은 그렇게 힘센 대통령을 몰아내고, 사임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의회다. 전 대통령을 지지한 여당인 스리랑카인민전선(SLPP)은 여전히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멕시코나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만큼 막강한 정치 카르텔에 맞서고 있다. 의회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반정부 시위의 목적은 완전히 달성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 그럼 이제 시위대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의 세력이 반정부 시위대를 이끈 게 아닌 만큼 다음 목표에 대한 합의는 아직 없다. 시위대 중에는 위크레마싱헤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고, 그와 함께 개혁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 반정부 시위의 동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렇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의 사임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여러 세력과 단체들을 묶어줄 하나의 힘이 없어졌다.”

- 위크레마싱헤 대통령은 취임 후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급습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는데 이에 대한 시위대나 시민 사회의 반응은 어떤가.

“아주 격렬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은 전혀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경이 급습한 그 날 오후 2시에 정부 건물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이미 의사를 밝혔었다. 지금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이끈 주요 인물들을 하나씩 단속해 나가고 있다. 나도 당장 내일 경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도 계속되는 정부의 악행을 감시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한다. 정부는 평화적으로 시위를 전개해온 시민들을 체포하고 있다. 물론 시위대 중 일부는 통금을 어기거나 하는 식으로 법을 어기기도 했지만, 대다수 시위대는 부조리에 대항하는 투쟁을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해왔다. 대통령궁에 있던 현금을 보안요원들에게 넘겼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의회 개혁, 경제 정상화,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을 제대로 선출할 시스템의 도입 등 여러 가지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회는 영원히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기구로써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공고한 정치 카르텔에 맞설 힘을 실어달라.”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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