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학, 다가올 50년]가장 큰 현미경으로 가장 작은 것 분석하기

박근태 기자 2022. 7. 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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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여왕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가 7월 28일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과학혁신 컨퍼런스'첨단과학, 다가올 50년'에서 발표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원자는 수 세기 동안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기본단위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원자가 가장 단위라는 믿음은 20세기와 21세기 들어 현대 입자물리학을 통해 통렬히 깨졌다. 쿼크와 전자처럼 그보다 훨씬 작은 입자들의 존재가 하나둘 밝혀지면서다.  거대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가속기는 흡사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보듯 더 작은 입자 세계로 인간의 관심을 인도했다. 지난 반 세기간 물질을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의 존재와 힘을 밝힌 것처럼 과학자들은 앞으로도 그보다 더 작은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란 기대를 모은다.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28일 최종현학술원이 개최한 과학혁신 콘퍼런스 ‘첨단과학, 다가올 50년’에서 “새로운 50년에도 더 크고 강력한 에너지의 가속기로 더 작은 세계를 탐구하는 연구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거쳐 시카고대 물리학과장을 역임했다. 7년간 미 국립 페르미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고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장을 맡고 있다. 2024년에는 미국 물리학회장에 오를 예정이다.  실험입자물리학자인 김 교수는 고에너지 가속기와 강력한 검출기로 소립자 질량 기원을 찾는 연구를 해왔다.  미국 과학잡지 '디스커버'는 지난 2000년 ‘향후 20년간 세계 과학 발전을 주도할 과학자 20명’ 중 한 사람으로 그를 뽑았다. ‘충돌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이때 얻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50년간 가속기와 함께 해온 입자물리학의 놀라운 성과와 앞으로 50년 과제를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류가 볼 수 있는 세상은 가장 작은 입자에 관한 탐구와 극복을 통해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여기엔 작은 핀셋이나 현미경이 아닌 가속기라는 거대한 실험장치가 동원되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2500년전 고체나 액체를 포함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이자 더 작게 분리되지 않은 조각으로 원자를 개념을 소개한 이우 수세기간 이는 정설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가속기 등장과 함께 최근 100여 년간 그 믿음은 계속 깨져나갔다.  김 교수는 "이제  더는 원자가 가장 작은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1897년 원자에서 전자가 발견됐고 그두 10년만에 원자보다 크기가 10만분의 1에 불과한 원자핵이, 다시 20년 뒤 핵보다 10분의 1에 불과한 양성자와 중성자의 존재가 밝혀졌다. 양성자의 1000분 1에 불과하지만 전자와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인 쿼크도 밝혀졌다.

인류가 더 작은 세계를 보면서 척도도 더 정교해지고 있다. 원자 척도가 나노미터(nm 10억분의 1m)를 쓰는데 쿼크와 전자는 nm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입자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가 밝혀지면서 이들 사이에 주고 받는 힘의 정체도 속속 밝혀졌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쿼크가 강한핵력의 지배를 받고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와 원자핵 사이엔 전자기력이 지배한다. 김 교수는 “수많은 원소 종류를 정리한 주기율표는 19세기 과학의 위대한 업적이지만 결과적으론 모든 원소 내부는 업쿼크와 다운쿼크, 전자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 근교에 있는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전경

김 교수는 “작은 세계를 보기 위해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이 발명됐지만 나노미터보다 훨씬 작은 존재를 보려면 더 강력한 현미경인 가속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에너지를 넣으면 더 작은 세계를 볼 수 있는 파장이 짧은 빔이 만들어진다. 

충돌형 가속기는 매우 높은 에너지 빔을 만들어서 정면충돌시키는 장치인데 이 과정에서 입자가 서로 소멸하지만 에너지가 보존되면서 140억년 전 빅뱅 직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큰 입자를 만들어낸다. 과학자들이 높은 에너지를 가진 초기우주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가속기를 ‘타임머신’으로 부르는 이유다.

김 교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보유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현대 기술로 초기 우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같다”고 말했다. 쿼크 6개와 경임자(렙톤) 6개, 매개입자 4개로 이뤄진 표준모델은 입자물리학의 살아있는 역사다. 1972년 이후 50년간 등장한 새 입자들의 발견 장소는 미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SLAC)와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와 미국립 페르미연구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과 겹친다. 참쿼크를 비롯해 타우렙톤, 톱쿼크와 매개입자인 글루온과 W보손과 Z보손이 이들 연구소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지난 2012년에는 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에서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궁극의 입자인 힉스 보손까지 발견됐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표준모형은 완벽하고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면서도 “입자를 발견하고 표준모형 표를 만드는 게 입자물리연구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자와 힘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연법칙 상호작용 이해해야 한다”며 “중력 문제처럼 표준모형에도 여전히 많은 궁금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당장 표준모형의 기본입자가 왜 서로 질량이 다른지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또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쿼크 입자에 대해 표준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김 교수는 "눈에 보이는 별과 은하나 우주먼지는 우주를 구성하는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다"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관한 탐구도 연구도 입자물리학 연구의 숙제로 남아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많이 알수록 더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입자물리 연구에 그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29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이던 어니스트 로런스가 자석과 전선을 조합해 자기장에서 입자를 가속하는 최초 가속기를 만든 이후 과학자들은 더 높은 에너지와 더 큰 가속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돌에너지는 1980년대 600억eV(전자볼트)에서 현재 LHC에선 13TeV(1TeV는 1조eV)에 이른다. 초창기 참여국은 3~4개, 참여 연구 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하던 가속기 실험에는 이제 40개국에서 30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10억번 충돌에 한번 충돌이 일어날까 말까 하는 실험에 이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통해 더 나은 알고리즘이 적용되면서 데이터 규모도 더 커졌다. CERN을 비롯해 미국 페르미연구소와  일본 고에너지물리연구소(KEK) 연구 프로그램은 연구자들에게 강력한 에너지에 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 교수는 “1950년대 새로운 입자물리학을 개척하면서 더 높은 에너지로 충돌시키기 위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돌려 1TeV 에너지를 구현하는 기술을 구상한 일이 있다”며 “과학자들은 그뒤 열린 과학을 지향하며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훨씬 작은 시설로 반세기 만에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이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더 높은 에너지 가속기가  등장하고 이 분야 연구가 앞으로도 더 나아갈 것은  분명하다”며 “빅뱅의 시간에 더 가깝게 다가서고 힘을 하나로 이해하는 방법을 찾는 등 더 완벽한 이론을 만드는 일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7월 28일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과학혁신 컨퍼런스'에서 김영기 시카고대 석좌교수와 하택집 존스홉킨스대 교수, 앤드리아 게즈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 니마 아르카니하메드 프린스턴고등과학원 교수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관련영상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 바로가기 https://youtu.be/oXp97-4aNIc)

[박근태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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