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문란"이라더니..'치안감 인사 번복' 경징계로 꼬리 자르기
정부가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사고의 책임이 경찰에서 파견된 행정안전부 치안정책관(경무관)에게 있다고 결론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기문란’으로까지 규정한 초유의 인사번복 사고는 치안정책관을 경징계에 회부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대통령실, 행안부, 경찰청이 모두 관여됐을 가능성이 큰 사고를 파견 경찰관 한 명의 실수로 결론내린 것을 두고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말이 나온다.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청 감사관실은 지난 30일 “국무조정실 조사 결과 인사안 혼선은 행안부 장관 지시를 받은 치안정책관이 최종안 확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치안정책관을 경징계 의견으로 중앙징계위에 회부했고, 중앙징계위가 징계 수위를 결정하면 경찰청은 대상자를 인사 조처하게 된다.
행안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치안정책관을 징계하면서 이상민 장관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안정책관 개인의 실수라고 해도 이 장관이 지휘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공무원법에 따르면 총경 이상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장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번 일은 치안감 추천·제청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런데도 국무조정실은 이 장관은 조사하지도 않았다. ‘경징계’라는 징계 수위 또한 ‘국기문란’이라는 규정과는 괴리가 크다.
대통령실, 행안부, 경찰청이 관여된 이 사고의 모든 책임은 경찰청이 졌다. 경찰청 감사관실은 “경찰청 인사와 홍보 기능도 언론의 혼란 상황에서 내부 협의를 성실히 하지 않은 과오가 지적됐다”며 인사담당관과 홍보담당관을 직권경고 처분했다.
행안부는 이번 사고를 들어 경찰국 신설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행안부는 “경찰청 인사 혼선은 그간 행안부 내 장관의 경찰 고위직 인사 제청을 지원하는 조직·인력이 없어 벌어진 일”이라며 “이런 이유로 행안부 내 공식적이고 대외적으로 공개된 경찰 지원 조직, 경찰국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새 정부가 경찰의 인사관행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사고일 가능성이 큰 데도 견강부회식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종전까지 행안부에 경찰국이 없었지만 이런 대형 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치안정책관 징계 배경을 설명하면서 “장관 지시”라는 표현을 넣었다가 행안부가 반발하자 “인사에 차질 없도록 하라는 지시였다”고 재공지하는 일도 벌어졌다.
경찰청 감사관실은 30일 오전 “국무조정실 조사 결과 인사안 혼선은 장관 지시를 받은 치안정책관이 최종안 확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음이 확인됐다”고 언론에 공지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행안부는 “이 장관이 치안정책관에게 인사안을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경찰청 감사관실은 당일 오후 “장관 지시는 ‘인사를 차질 없도록 진행하라는 지시’였음을 의미했다”며 “국무조정실 조사 결과에서도 장관이 치안정책관과 인사안을 공유한 바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31일 통화에서 “해당 사안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한다면 한 기관만의 잘못인지, 다른 기관의 잘못도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 당연하다”며 “이 장관이 치안정책관과 아예 접촉도 없었다는 취지의 행안부 설명은 ‘꼬리 자르기’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행안부의 반박 이후 경찰청이 징계 배경을 재공지한 데 대해선 “경찰국이 신설되기 전부터 행안부의 위력이 발휘되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내무부(현 행안부) 장관과 경찰이 한몸일 때 일어났던 사회적 폐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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