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서 딸, 손녀로 이어진 담양군 '전통 엿'.."옛 제조법 힘들지만 '우리것' 자부심"

고귀한 기자 2022. 7. 3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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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쌀로 전통 엿을 만드는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모녀삼대쌀엿공방의 윤영자 할머니(오른쪽)와 딸 최영례씨(왼쪽), 손녀 김청희씨(가운데). 모녀삼대쌀엿공방 제공

전통 방식으로 쌀 엿을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5~6시간 정도 가마솥에 쌀을 불린 뒤 건져 올려 1시간가량 물기를 뺀다. 물기가 빠진 쌀로 고두밥을 찐다. 다 된 고두밥은 엿기름, 물과 섞어 8~9시간 발효시킨다. 이후 엿물을 따로 분리해 가마솥에 넣고 쉬지 않고 저으며 고아낸다. 4시간가량을 젓다 보면 엿물이 그대로 굳어 갱엿이 된다. 갱엿을 적당히 식힌 뒤 100번 넘게 반복해서 잡아당겨 엿가락을 만든다. 이 작업만 꼬박 이틀이 걸린다.

어머니 최영례씨(51)와 딸 김청희씨(27)는 이렇게 ‘전통 쌀 엿’을 만들고, 알리는 일이 ‘모녀의 운명’이라고 했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서 ‘모녀삼대쌀엿공방’을 운영 중인 이들에게 엿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우리 것’을 지킨다는 자부심이자 소명이 담긴 음식이다. 최씨의 어머니 윤영자 할머니(83)로부터 3대에 걸쳐 6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가업이기도 하다.

윤 할머니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에게 처음 쌀로 엿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1960년쯤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터를 잡고 엿을 만들며 생계를 꾸려갔다. 최씨는 그런 어머니를 곁에서 돕다가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엿 제작에 뛰어들었다. 조리학을 전공한 뒤 외식업계에서 일하던 딸도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2020년부터 합류하게 됐다.

김씨는 지난달 3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을 돕다가 자연스레 엿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가업을 잇게 됐다”며 “힘들고 매우 고단한 일이지만, ‘우리 것’이 잊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 함께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전통을 잇는다는 게 고되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딸에게 선뜻 권하지 못했지만, 딸이 먼저 함께하자고 나서줘 고맙고 큰 힘이 된다”라고 밝혔다.

엿 제조의 전 과정은 최씨와 김씨 모녀가 도맡아 하고 있다. 고령인 윤 할머니는 최근 일선에서 물러나 제조 과정에 필요한 조언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엿을 만드는 거의 모든 과정에는 두 사람이 들어도 옮기기 쉽지 않은 무쇠 가마솥이 사용된다. 윤 할머니의 어머니로부터 80여년의 시간을 지나 전해 내려온 솥이다. 기계화된 자동 가마솥을 쓰지 않고 옛 가마솥을 쓰는 이유를 묻자 최씨는 “요즘 가마솥들과 달리 열이 잘 빠지지 않아 엿을 만드는데 가장 최적화돼 있다”며 “가업을 잇고 있는 우리 모녀에게는 보물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모녀삼대쌀엿공방 대표 최영례씨 가마솥을 이용해 엿을 만들고 있다.

최상의 엿은 고된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된다는 게 모녀의 설명이다. 최씨는 “전통 쌀 엿은 공장에서 찍어낸 엿과 달리 식감은 바삭하고, 은은한 단맛이 난다. 치아에도 잘 들러붙지 않는다”고 했다.

정성이 담긴 맛이 소비자들에게도 통한 것일까. 이들이 운영하는 ‘모녀삼대쌀엿공방’은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잇따라 단골만 300~4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모녀의 엿은 담양군이 마을기록단이 사라져 가는 동네 이야기를 담은 서적 ‘소쿠리’에도 소개됐다.

최씨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지켜온 자부심을 많은 이들에게 맛으로서 인정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모녀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엿이 젊은 세대, 아이들까지 즐겨 찾는 간식이 될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다. 최씨는 “지금처럼 딸과 함께 만든 옛날 엿을 계속 알리고 젊은층이 좋아할 수 있는 맛으로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전통이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했다.

모녀삼대쌀엿공방의 최영례씨가 딸과 함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쌀 엿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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