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안보동맹 넘어 경제동맹의 의미 : 경제동맹이 조금 불편한 이유

이종윤 2022. 7. 3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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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4' 핵심은 한국이 얼마나 빨리보다 얼마나 실용적·실행 가능의 문제
지구촌 정체성 중심으로 블록화, 탈동조화는 불가항력적인 부분 있어..
바이든, 핵심 산업 공급망서 中 배제하고 믿을 수 있는 국가 중심 재편..
한국, 美 동맹국이나 中과 경제관계 유지도 중요한 딜레마에 처해 있어
IPEF 미래 경제이익 약속하지만 美 시장개방 없는 확실치 않은 모험 성격
핵심,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미 공동으로 대응해 줄 수 있어야 '경제동맹'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후(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파이낸셜뉴스]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인 ‘칩4’(Chip4) 혹은 ‘패브4’(Fab4)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에 참여 여부를 8월 말까지 알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의 핵심 생산시설이 중국이 있어 한국의 ‘칩 4 동맹’ 참여가 중국의 보복을 불러올 것이라는 한국 일각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 고문을 지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클로드 바필드 연구원은 지난 18일 VOA에 “미국이 일본, 타이완, 한국에 대해 중국과의 모든 반도체 무역과 투자를 완전히 끊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분야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반도체 설계를 구상하며 반도체 생산망에 대한 투자를 논의하는 등 공동 계획을 원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동맹들의 강점과 비교 우위를 한데 모아 협력 관계를 만들겠다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라며 “반도체 생산 공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에 강점이 있으며, 한국과 타이완은 그 설계를 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위탁생산에 강점이 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헤리티지재단의 앤서니 김 연구원은 “한국도 계획된 ‘칩 4’ 동맹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미국에) 문의할 권리가 있다. 미국의 초대에 한국이 얼마나 빨리 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며 “핵심은 기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맥락에서 ‘칩4’를 얼마나 실용적이고 실행 가능하게 만드냐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원은 "‘칩4’의 △출범 시기 △형태 △회원국 간 역할 분담 등을 논의해야 한다. ‘칩4’는 궁극적으로 한국, 타이완, 일본 기업들을 미국 본토에 유치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한국은 사드 사태 이후 대중국 수출무역, 관광업, 게임산업 분야 등에서 큰 피해를 보았고 특히 최근 대중국과의 무역에서 27년 9개월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대중국 무역 적자는 지난 5월에 약 11억달러→ 6월 12억달러를 상회한데 이어 적자 폭은 확대 추이에 있다. 한·중수교 30년, 중국과의 무역 역조가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 무역 보복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으며 이러한 원인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기술적 추격, 격차가 좁혀진 요인뿐 아니라 한국의 적극적 IPEF에 동참 등에 따른 중국의 대한국 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최근 중국은 한·일 등 아태 지역 국가들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중국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앞으로 나토의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상황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지구촌은 미·중 경쟁, 코로나 팬대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이유로 국제 공급망이 붕괴하고 불한정해지면서 경제와 안보가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 가고 있으며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적성 국가에 의존할 경우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또 지난 30년 동안 세계화의 질서에서는 국가의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공산 독재 국가인 중국도 세계화에 참여하며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하며 호혜적인 경제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들이 정체성을 중심으로 다시 헤쳐 모여를 하며 블록화하고 있다. 탈동조화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발생하고 있고,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지만, 미국의 정책이기도 하다는 해석이다.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반도체 동맹, 원자력 동맹, 우주 동맹, 그리고 경제동맹 등 지난 한·미 정상 회담 후 동맹이라는 용어가 남발하고 있지만, 사실 국제정치학에서 동맹(alliance)은 상호방위조약과 같은 안보 협정으로 맺어진 국가 관계를 뜻한다"고 짚었다.

동맹은 같은 편을 먹고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국가가 맺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협정으로 공동의 적이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체결하는데, 동맹국이 침공받으면 참전해 같이 싸우겠다는 “전쟁 공동체(war community)”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 동맹국이었다면 과연 러시아가 벌건 대낮에 침공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동맹은 늘 세계 전쟁사의 중심에 있었고, 동맹은 국제정치학의 주된 연구주제로 국가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상당히 오래전부터 동맹은 외교 안보의 수단으로 역할 해 왔다는 것이다.

이어 김 교수는 "제임스 D. 모로우 교수에 의하면 대칭적인 동맹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으로부터 안보 보장을 받는 대신 정책의 자율권이 침해받는 상충관계(tradeoff)에 직면하게 된다"며 "따라서 약한 동맹국은 자율적으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안보 보장을 확실히 받으려면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협조적 게임이론과 선택이론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로 유명한 미시간 대학교의 모로우 교수의 이론에 의하면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이 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방기(放棄: abandonment)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강한 동맹국의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원하지 않는 분쟁에 연루(連累: entrapment)될 수 있는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연방 의회 건물. 자료=VOA 홈페이지 캡처
김 교수는 또 "핵으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실질적 핵보유국 북한이 한국을 공격했을 때 과연 미국은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의 핵 타격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방기에 대한 걱정, 이러한 방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미동맹의 방위 범위를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더 들어 주다 보면 미국이 중국과 타이완을 놓고 전쟁을 벌일 때 한국이 연루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등은 이러한 이론으로 설명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美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때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이라는 전면적인 디커플링 정책을 추진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선 '공급망 강화 정책(supply chain resilience)'을 들고나왔다"며 "전면적인 디커플링이 아니라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미국이 믿을 수 있는 국가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에 동조해야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순조롭게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라도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이 불편한 구석이 있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통상 국가이고, 중국의 경제보복은 한국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이라도 여전히 중국과 원만한 경제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IPEF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하지만 IPEF로 미국은 시장을 개방할 생각은 없다. 역내 경제관여 정책으로 핵심이 빠진 것"이라며 "IPEF는 미래의 경제이익을 약속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참여국에는 중국의 위협을 불사해야 하는 일종의 모험"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동맹이 되려면 보복당할 경우 동맹국이 함께 싸워준다는 협약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는 아픈 사드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중국에게 맞을 때 미국은 보복해 주지 않았다. 지금 한국 정부는 이러한 방어 기제를 마련하기도 전에 미국의 요구를 너무 선뜻 들어주는 경향이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한국은 NATO 정상회담 참여, 러시아 제재 등 해야 할 일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으로 받을 수 있는 보복에 대해서는 미국 등 다른 국가와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어 놔야 한다. 넋 놓고 보복만 당하기만 한다면 진정한 동맹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새 정부 출범 이후 IPEF에 동참하기로 했고,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미 관계가 진정한 의미의 경제동맹이 되려면 적에게 침공받았을 경우 안보동맹이 같이 전쟁에 참여해 싸우는 것처럼 한국의 선택에 의해서 발생하는 중국의 보복에 미국이 공동으로 대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동맹의 핵심이다.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조만간 양산에 돌입하는 차세대 GAA(Gate-All-Around) 기반 세계 최초 3나노 반도체 시제품에 사인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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