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게 죄..갈비뼈 보일 때까지 굶어야죠"

김남명 기자 2022. 7. 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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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가 30kg대였으면 좋겠다"
단식·초절식 반복하며 극단적 다이어트
SNS 통해 식욕억제제 암거래 하기도..
"일상생활 무너져도 살만 빠지면 괜찮아"
전문가 "다양한 생활영역서 자존감 유지해야"
자신을 ‘프로아나’라고 소개하며 함께 살을 뺄 사람들을 구하는 게시물. 트위터 캡처
[서울경제]

“키에서 몸무게를 뺐을 때 125였으면 좋겠어요. 갈비뼈 보일 때까지, 양말 신었을 때 발목이 헐렁할 때까지 살 빼고 싶어요.” (고등학생 김 모 씨)

“초절식과 단식을 번갈아 가면서 해요. 아침에 오이 하나, 점심에 달걀 하나 이렇게. 하루 종일 굶을 때도 있고요.” (20대 여성 이 모 씨)

최근 SNS를 중심으로 목표 체중과 다이어트 방법 등을 공유하며 함께 체중을 감량할 이들을 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이 살을 빼는 방식은 극단적이다. 하루에 섭취하는 음식 양을 지나치게 줄이거나, 온종일 물만 마신다. 간혹 제대로 된 식사를 하더라도 살이 찔 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내 다 토해내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프로아나’(거식증을 지향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31일 서울경제가 만난 10대 청소년들은 ‘개말라’(엄청나게 마른 사람) 혹은 ‘뼈말라’(뼈만 보일 정도로 마른 사람) 등의 용어를 쓰며 마른 몸을 동경했다. 고등학생 김 모(17) 씨는 “교복을 입었을 때 나오는 ‘개말라’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거나 히비스커스 차나 물만 마시고, 변비약을 복용하는 방법으로 2주 만에 7㎏을 감량했다”며 “지금 키가 160㎝, 몸무게가 40~41㎏ 정도인데 30㎏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박 모(18) 씨 역시 “SNS에 보면 사람들이 다이어트 자극을 받으려고 모아 놓은 사진이 쭉 뜬다. 보통은 아이돌 멤버의 다리, 팔, 흉통 사진”이라면서 “폭식하고 토하면서 살을 뺄 때는 너무 힘들다가도, 이런 걸 보면 다시 마른 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물론 부작용이 뒤따른다. 김 씨는 “초절식, 단식을 번갈아가며 하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몸에 힘이 없다. 어지러워서 거의 누워만 있다 보니 살 빼는 것 외에는 다른 활동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약을 복용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더 심각하다. 이른바 ‘나비약’이라고 불리는 식욕억제제 ‘디에타민’이 대표적이다. 이 약을 복용한 적 있다고 밝힌 이 모(20) 씨는 “배가 고파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효과를 언급하면서도 “밤에 잠이 안오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학교에서도 당연히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고, 일상생활이 완전히 무너져서 마른 몸을 갖는 것 말고는 다른 생활이 불가능한데도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디에타민은 만 16세 이하가 복용할 수 없고, 전문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지만 ‘식욕 억제’ 효과를 보고 싶은 초, 중, 고등학생 사이에서는 이미 암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트위터 등 SNS에서는 디에타민 한 알에 3000원에서 6000원 정도의 웃돈을 얹어주면 쉽게 구매가 가능했다. 일부 판매자들이 약을 미리 처방 받은 후 이를 되팔이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마그밀’이라 불리는 변비 약도 다이어트 목적으로 자주 복용하는 약 중 하나다. 약사 관계자는 “다이어트를 하다보면 변비가 와서 변비 약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이럴 때 변비 치료를 위해 마그밀을 일시적으로 복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소화불량, 탈수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프로아나’가 되길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살이 쪘을 때 받는 사회적인 시선을 견딜 수 없어서다. 김 씨는 “비만이었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내 얘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냥 싫어하는 것 같았다”며 “뚱뚱한 게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하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마른 몸에 집착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대한민국에 사는 여자들은 어쩌면 다 섭식장애를 앓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다.

중학생 박 모(15) 씨는 “솔직히 살 찐 애가 학교에서 친구 없이 조용히 있으면 ‘우울하고 음침한 애’라는 평가를 받지만 마른 사람은 ‘분위기 있는 친구’라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예쁘게 마른 나’라는 자기 만족도 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좋은 얘기를 듣고 싶어서 살을 더 열심히 빼는 것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미디어 등을 통해 마른 몸매를 동경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미디어 속 연예인의 모습, SNS 등을 통해 접하는 콘텐츠 등이 여성 청소년의 외모, 몸매 콤플렉스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실에서 본인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나 기회는 되게 적은 반면, SNS나 미디어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에 시달릴만한 외적 환경이 조성이 되면 청소년들이 체형에 극단적으로 집착을 하게 되고, 살이 빠질수록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다”면서 “일단 한번 보상 사이클이 형성되면 대처가 어려운 만큼, 부모는 아이들이 외모·체형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적절한 반응을 통해 소통하고, 외모 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아이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남명 기자 nam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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