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그늘 속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통계부터 마련하고 돌봄 복지 등 확대해야
‘제주도 한달 살기’를 떠난 일가족이 지난 달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가상 화폐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조모씨 부부가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해 ‘가족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죽음이 알려진 뒤 “10살 조양은 무슨 죄냐”라는 여론이 일었다. ‘가족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은 중대범죄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25일 의정부에서 40대 부부와 6세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을 예고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지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이들을 병원으로 옮겼지만 모두 숨졌다. 현장에서는 ‘빚이 많아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지난 20일에는 생활고 때문에 두 아들을 살해한 어머니에게 1심에서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지난 4월 초등학교 2, 3학년이던 두 아들을 잇달아 살해한 어머니는 범행 직후 자신도 세 차례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뒤 실패하자 경찰에 자수했다. 별거하던 남편의 생활비로 생계를 꾸리다 남편이 해고되고 살던 집이 압류될 위기에 처한 데다 남편과 연락조차 되지 않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어머니의 딱한 사정은 인정하면서도 ‘동반자살 시도’가 아니라 ‘자녀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부모를 살해하는 범죄는 ‘존속살해’라는 별도 죄명으로 통계를 낸다. 그러나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는 별도 죄명이 없다. 살인 사건으로 분류될 뿐 따로 통계를 잡지 않는다. 다만 이런 류의 사건은 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검찰의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살인 사건(가해자·피해자 관계 미상인 경우 제외) 중 가족을 대상으로 한 살인이 평균 20.1%에 달했다. 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2000년 1월1일부터 2019년 10월31일까지 신문에 보도된 ‘가족 또는 동거 애인을 살해한 후 자살’하거나 ‘가족이 동반 자살’한 사례 426건을 분석한 결과, 범행동기 중 ‘처지 비관(25.6%)’이 가장 많았다. 이어 ‘생활고’(24.6%), ‘금전문제’(12.9%) 순이었다. 자녀가 피해자인 경우는 ‘생활고’가 33.1%로 가장 많았고, ‘처지 비관’ 30.5%, ‘불화’, ‘가족문제와 열등감’, ‘정서불안’ 각각 10.6% 등이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족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의 주요 동기라는 점은 유사 범죄의 증가를 걱정하게 한다. 최근 코인·주식 폭락, 부동산 거래 실종과 금리 인상으로 은행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홍영우 선임 연구위원은 31일 “중산층이 갑자기 경제적 곤궁에 처하게 될 때 그 충격을 감당하기 벅찬 데다 재기가 어려운 사회분위기로 인해 좌절감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며 “특히 가족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문화와 맞물려 유사 사건이 급증할 우려가 있는 만큼 대책마련을 위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당장 관련 통계부터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실태가 파악돼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 위주로 설계된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수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서비스센터장은 “지역 위기가정지원센터는 저소득층·한부모·다문화 가정 등이 주된 관리대상”이라며 “실직이나 부채 등으로 갑가지 위기를 맞은 가정의 경우 이런 제도가 있는 지도 모른다”고 했다. 제때 심리상담이나 개인희생·파산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삶은 자녀의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내가 없으면 누가 돌봐주나’라는 생각 역시 ‘자녀살인’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돌봄 등의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아동권리정책팀 선임매니저는 “조유나양의 부모가 만약 ‘내가 없어도 이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부양과 돌봄의 책임을 가정에만 지우는 사회는 ‘독박돌봄’이나 ‘간병살인’은 물론 ‘자녀살인’이나 ‘아동학대’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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