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강점 '소탈한 도어스테핑', 텔레그램 유출에 도루묵?

최진렬 기자 2022. 7. 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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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속마음 의심 우려 잠재우려면 '희망·통합 메시지' 내야
윤석열 대통령. [동아DB]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는 변호사나 기업가, 직업 정치인 중에서 주로 대통령이 나왔다. 대중과 소통하는 데 익숙한 직업군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는 다르다. 같은 법조인이라 해도 변호사와 검사는 화법에서 차이가 난다. 개인사업자인 변호사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도 '서비스한다'는 의식이 있다. 반면 검사는 '삶을 갈아 넣어서라도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의식이 뚜렷하다."

윤혜미 이미지평론가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화법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변호사나 최고경영자(CEO) 등 소통친화적인 직업을 가졌던 전임 대통령들과 윤 대통령은 삶의 궤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몸담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점 역시 이 같은 차이를 부각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윤 평론가는 퍼스널브랜딩 전문가로 선거 기간 여러 정치인의 개인 브랜딩을 강화하는 일을 맡아왔다. 그는 "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열어넣고 표현하는 스타일"이라면서도 "최근 들어 손동작과 표현 등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가 슬쩍 보인다"고 분석했다. 잇따른 설화에 윤 대통령이 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지도자가 겪는 소통 문제는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난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국가지도자가 수시로 도어스테핑(doorstepping·약식 회견)을 하는데, 이로 인해 국정 리스크가 발생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휴가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본인 소유 골프클럽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이 미국을 계속 위협하면) 전례 없는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발언해 국제 정세를 긴장케 한 것이 대표적 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올해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위기"라는 기자의 지적에 "멍청한 개자식(Stupid son of bitch)"이라고 욕설을 퍼부어 비판받았다.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벌어진 촌극이었다.

다만 도어스테핑을 잘 활용하면 국정운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 2001년 일본에 도어스테핑을 도입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대표적 예다. 일본에서는 여러 명이 매달리듯 둘러싸고 대화한다는 의미에서 도어스테핑을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매달리기)'라고 부른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하루 2번 부라사가리에 나섰는데 오전에는 사안을 자세히 설명하고, 오후에는 사안에 대해 함축적으로 발언하는 식이었다. 정책 이슈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그의 스타일을 두고 '극장정치'라는 말도 생겼다.

尹 '5 대 1 화법' 변하나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7월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고이즈미 전 총리가 5년 5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임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도 부라사가리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적재적소에 내놓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성공에 힘입어 언론 기피형 정치인으로 분류되던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마저 매달 10여 차례 도어스테핑에 나설 정도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역시 도어스테핑을 가장 잘 활용하는 일본 총리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10월 취임 이래 100번 넘게 부라사가리를 했다.

도어스테핑 후발주자인 한국은 어떨까. 역대 대통령비서실 측은 대통령과 기자의 대면을 되도록 피하고 싶어 했다. 대통령이 말실수라도 해 의도치 않은 국정 리스크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실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격의 없이 질의응답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발언과 관련된 전체 맥락이 충실히 담기기보다 언론이 일부 '문제적 단어'를 픽업해 말의 취지를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윤 대통령도 설화 리스크를 피해가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대화를 좋아하는 만큼 당초 도어스테핑과 궁합이 맞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전례 없는 시도에 긍정적 평가가 뒤따랐지만 말실수가 이어지면서 국정 리스크를 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연일 지적되는 인사 문제에 "전 정권 장관 후보자 중 훌륭한 사람 봤냐(7월 5일)"는 식으로 답변한 것이 대표적 예다. 실제로 7월 4일 "국정 지지율이 데드크로스를 기록했다"는 물음에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도리어 지지율 추가 하락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대통령실 출입기자 11명이 확진되는 등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7월 11일 도어스테핑이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당시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하락하면서 "실언 논란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언론을 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도어스테핑을 재개한 그는 "도어스테핑을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기자들 물음에 "뭐 이거야 하면 안 되겠느냐"며 "좀 괜찮아지면 며칠 있다가 여기서(근거리에서) 하자"고 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시를 기점으로 윤 대통령 화법이 변했다는 평가가 많다. 현장에서 '날것에 가까운' 메시지를 내던 과거와 달리 말수를 줄이고 발언에도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윤 대통령을 두고 대화를 좋아한다는 평이 많았다. 50분을 말하고 10분을 듣는다는 의미에서 '5 대 1 화법'을 구사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7월 15일 "(질문은) 2개 정도만"이라고 말하는 등 말을 줄이는 모습을 보였다. 사면 등 정치적 논란이 일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면에 대해선 언급 안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등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의 유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의 앞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초기에는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당의 공격에 과잉 반응하는 등 원래 습관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권 원내대표와의 사적 문자메시지 내용이 공개된 점이 큰 악재다. 국민은 대통령의 말에 '속마음은 다르지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관련 논란이 벌어진 다음 날부터 외부 일정을 이유로 도어스테핑에 나서지 않고 있다. 7월 29일 교육부 장관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어 도어스테핑이 예상됐으나, 대통령실 측은 추가 일정을 이유로 도어스테핑이 없다고 공지했다. 8월 첫째 주 윤 대통령이 휴가를 떠나는 만큼 한동안 '도어스테핑 부재'가 이어질 전망이다.

"도어스테핑 이름 바꾸라"

윤 대통령이 향후 도어스테핑을 좀 더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꼽았다. 애드리브로 상황을 돌파하려 하지 말고 미리 대통령실 직원들과 현안 질의에 대한 답변을 준비한 후 집무실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 출신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전 7시 30분쯤 상황점검회의 결과를 받은 후 언론 브리핑 준비를 함께했다"고 말했다.

이전 정부와의 비교 대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 교수는 "국민은 대통령에게 초당파적 통합의 메시지를 원한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 화두에 맞는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최대한 가릴 수 있는 식으로 도어스테핑 형식을 개편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윤혜미 평론가의 말이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은 소탈한 모습이다. 도어스테핑 현장을 보더라도 기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등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려 힘쓰고 있다. 다만 '도어스테핑'이라는 딱딱한 이름이 참석자나 국민에게 심리적 장벽을 만들었다. '출근길 인사' 등 좀 더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용어로 순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해보자."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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