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타 죽는다' 발언 뒤 숨은 '펠로시와 중국의 악연'

남승모 기자 2022. 7. 3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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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회 의장의 아시아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일정이 주목을 받은 건 타이완 방문 검토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지난 1997년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의장의 타이완 방문 이후 25년 만에, 미국 내 최고위급 인사가 다시 타이완을 찾는다는 소식에 중국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올 가을 3연임을 앞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지도력에 흠집을 내는 일로 간주하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현지 시간 28일 5번째 미중 정상 통화에서 시 주석은 타이완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습니다. 시 주석은 "우리는 타이완 독립과 분열, 외부세력의 간섭을 결연히 반대하며 어떤 형태의 타이완 독립 세력에게든 어떤 형태의 공간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결연히 수호하는 것은 14억여 중국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며 "민심은 저버릴 수 없으며,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11월 화상 회담에서도 '불장난'이란 말을 쓴 적은 있지만 '타 죽는다'는 거친 표현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중국의 반발이 펠로시 의장의 방문만을 겨냥해 한 말은 아닐 수 있지만 그녀의 방문 소식으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진용천자(眞龍天子)에 비유될 만큼 발언 하나하나 신경 쓰는 중국 지도자까지 나서 이렇게 반발하자 미국도 상황 관리에 힘쓰는 모양새입니다.
 

'강경 일변도' 중국…'상황 관리' 미국

지도자 간 대화에서 이 정도 언사가 나왔으면 불쾌했을 법한데 회담 당일 백악관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당일 백악관 대변인 브리핑에서 오간 기자와의 질의응답 내용을 보겠습니다.
 
Reporter : Two questions on two topics. First, on the Xi call: Beijing said in its readout of the call that President Xi told President Biden that, quote, "Those who play with fire will perish by it." So does the White House consider that as an escalation by China?

MS. JEAN-PIERRE: I'm not going to -- I'm not going to speak to that statement -- that comment that you just read out.

기자) 2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첫째,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와 관련해 베이징은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그 불에 타 죽는다."라고 전했는데 백악관은 이를 중국이 (양국 간 긴장을) 높이는 걸로 생각하시나요?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저는 그 발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방금 말한 그 논평에 대해서요.
 
미국은 현 상태를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나 타이완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중국의 이런 강도 높은 반발에는 상당히 신경 쓰는 모습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앞서 펠로시 의장의 중국 방문 검토에 대해 "군 관계자들은 그녀의 타이완 방문이 현재로서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에 부정적인 기류만 있는 건 아닙니다. 먼저 하원 의장 등 의회 구성원이 어디든 가고자 하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행정부가 의견을 낼 순 있지만 이를 막는 건 민주 정치 체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원론적인 접근 외에도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밀리면 안된다는 분위기도 강합니다. 펠로시 의장과 다른 당 소속인 공화당 스티브 채벗 하원의원도 "미국은 타이완에 연대를 보여줘야 하고 중국이 원하는 대로 움츠러들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독 펠로시 의장 방문에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

펠로시 의장은 아시아 방문길에 오르기 직전까지 타이완 방문 여부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현지시간 2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보안상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현재 확인된 순방 국가는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입니다. 중국 측이 전투기를 동원해 펠로시 의장 항공기가 타이완에 착륙하는 걸 저지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상황이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이런 반발은 중국 공산당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 지도자의 3연임을 앞두고 권위에 상처가 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로 볼 수도 있지만 '낸시 펠로시'라는 정치인에 대한 그 간의 구원(舊怨)도 없지 않다는 게 미국 현지 언론의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펠로시와 중국 정부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화면출처 : 뉴욕타임스

 
"Ms. Pelosi has a history poking China in the eyes."

뉴욕타임스에 실린 관련 기자 소제목 중 하나입니다. 직역하자면 "펠로시는 중국의 눈을 찌른 전력이 있다." 정도로, 펠로시 의장이 중국이 불쾌하게 여기는 일들을 한 적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이런 반발이 펠로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펠로서 의장은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유지해왔고 이는 그녀가 중국에 적대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캘리포니아 재선 의원이던 1991년, 펠로시 의장은 베이징을 방문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천안문 사태로 수천 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목숨을 잃은 지 2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몇몇 의회 동료들과 기자들이 함께 광장으로 갔는데 거기서 펠로시 의장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습니다. "To Those Who Died for Democracy in China.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이들에게)" 당시 CNN 특파원은 기사에서 펠로시 의장이 택시를 타고 광장을 빠져나간 광경을 회상하며, 중국 공안들이 기자들을 체포하고 몇 시간 동안 억류했다고 적었습니다.

중국이 타이완 문제만큼이나 신경 쓰는 곳 중 하나가 티베트 지역입니다. 티베트는 중국 근대화를 이끈 덩샤오핑이 점령한 지역으로, 당시 중국은 유혈사태 없이 편입되는 조건으로 이 지역에서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을 보장했지만 1958년 토지개혁에 귀족들 반발하고 대기근으로 주민들이 봉기하자 이를 유혈 진압했습니다. 이듬해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했고 아직까지 갈등의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화면출처 : 뉴욕타임즈
 
펠로시 의장은 달라이 라마와 테베트의 권리를 지지하는 강력한 후원자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통상 외국 관리나 기자에게 출입이 금지된 티베트 중심 도시인 라싸를 지난 2015년 중국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아 엄격한 통제 하에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신념 있는 정치인이겠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셈입니다.
 

'격추' 협박 속 타이완행 강행할까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미국의 국가 권력 서열 3위입니다. 중국이 그녀의 신변을 위협할 경우 미국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인물을 놓고 중국 내에서, 비록 중국 당국의 직접 발언은 아닐지라도 '격추'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대표적 관변 언론인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장은 "미군 전투기가 펠로서의 타이완 방문을 에스코트할 경우 그것은 침약이므로 중국군은 펠로시가 탄 비행기와 미군 전투기를 강제로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트위터에 적었습니다. 이어 "우리 전투기가 방해 수단을 다 썼음에도 효과가 없을 때는 펠로시가 탄 항공기를 격추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비록 트위터 계정에서는 '격추' 주장은 삭제됐지만 펠로시 일행이 타이완 방문을 강행할 경우 일정 부분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거라는 추정은 가능해 보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을 중국이 물리력으로 방해할 경우 항공모함 기동 같은 보호 조치 시행을 검토 중인 걸로 알려졌습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녀가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안보와 경제, 나아가 국제 질서를 놓고 맞붙은 미중 양국 간 대결이 팽팽한 상황 속에서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 계획은 성사 여부에 따라 어느 한쪽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걸로 보입니다. 이런 소식이 남의 나라 싸움 구경에 그칠 수 없는 건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가 미중 양국 간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양국 간 협조가 절실한 우리로선 안타까울 뿐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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