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타 죽는다' 발언 뒤 숨은 '펠로시와 중국의 악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회 의장의 아시아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일정이 주목을 받은 건 타이완 방문 검토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지난 1997년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의장의 타이완 방문 이후 25년 만에, 미국 내 최고위급 인사가 다시 타이완을 찾는다는 소식에 중국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올 가을 3연임을 앞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지도력에 흠집을 내는 일로 간주하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현지 시간 28일 5번째 미중 정상 통화에서 시 주석은 타이완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습니다. 시 주석은 "우리는 타이완 독립과 분열, 외부세력의 간섭을 결연히 반대하며 어떤 형태의 타이완 독립 세력에게든 어떤 형태의 공간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결연히 수호하는 것은 14억여 중국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며 "민심은 저버릴 수 없으며,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강경 일변도' 중국…'상황 관리' 미국
Reporter : Two questions on two topics. First, on the Xi call: Beijing said in its readout of the call that President Xi told President Biden that, quote, "Those who play with fire will perish by it." So does the White House consider that as an escalation by China?
MS. JEAN-PIERRE: I'm not going to -- I'm not going to speak to that statement -- that comment that you just read out.
기자) 2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첫째,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와 관련해 베이징은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그 불에 타 죽는다."라고 전했는데 백악관은 이를 중국이 (양국 간 긴장을) 높이는 걸로 생각하시나요?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저는 그 발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방금 말한 그 논평에 대해서요.
미국은 현 상태를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나 타이완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중국의 이런 강도 높은 반발에는 상당히 신경 쓰는 모습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앞서 펠로시 의장의 중국 방문 검토에 대해 "군 관계자들은 그녀의 타이완 방문이 현재로서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유독 펠로시 의장 방문에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
중국의 이런 반발은 중국 공산당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 지도자의 3연임을 앞두고 권위에 상처가 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로 볼 수도 있지만 '낸시 펠로시'라는 정치인에 대한 그 간의 구원(舊怨)도 없지 않다는 게 미국 현지 언론의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펠로시와 중국 정부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Ms. Pelosi has a history poking China in the eyes."
뉴욕타임스에 실린 관련 기자 소제목 중 하나입니다. 직역하자면 "펠로시는 중국의 눈을 찌른 전력이 있다." 정도로, 펠로시 의장이 중국이 불쾌하게 여기는 일들을 한 적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이런 반발이 펠로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펠로서 의장은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유지해왔고 이는 그녀가 중국에 적대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캘리포니아 재선 의원이던 1991년, 펠로시 의장은 베이징을 방문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천안문 사태로 수천 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목숨을 잃은 지 2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몇몇 의회 동료들과 기자들이 함께 광장으로 갔는데 거기서 펠로시 의장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습니다. "To Those Who Died for Democracy in China.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이들에게)" 당시 CNN 특파원은 기사에서 펠로시 의장이 택시를 타고 광장을 빠져나간 광경을 회상하며, 중국 공안들이 기자들을 체포하고 몇 시간 동안 억류했다고 적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달라이 라마와 테베트의 권리를 지지하는 강력한 후원자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통상 외국 관리나 기자에게 출입이 금지된 티베트 중심 도시인 라싸를 지난 2015년 중국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아 엄격한 통제 하에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신념 있는 정치인이겠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셈입니다.
'격추' 협박 속 타이완행 강행할까
비록 트위터 계정에서는 '격추' 주장은 삭제됐지만 펠로시 일행이 타이완 방문을 강행할 경우 일정 부분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거라는 추정은 가능해 보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을 중국이 물리력으로 방해할 경우 항공모함 기동 같은 보호 조치 시행을 검토 중인 걸로 알려졌습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녀가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안보와 경제, 나아가 국제 질서를 놓고 맞붙은 미중 양국 간 대결이 팽팽한 상황 속에서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 계획은 성사 여부에 따라 어느 한쪽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걸로 보입니다. 이런 소식이 남의 나라 싸움 구경에 그칠 수 없는 건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가 미중 양국 간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양국 간 협조가 절실한 우리로선 안타까울 뿐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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