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간절하지만 험난한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김성모 기자 2022. 7.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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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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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싼 비행기표도 못 말린 ‘보복 여행’

3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에게 여름은 여행을 의미했다. 7, 8월이 되면 공항은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하늘길이 봉쇄되기 전까지 매년 그랬다.

올해 초부터 각국 정부가 입국 제한 조치들을 잇달아 완화했다. 마스크 착용과 감염 검사 요건 등을 해제했다. 미 정부는 지난달 12일 미국에 입국하는 여행객들이 비행기 탑승 전 코로나19 음성 테스트 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규정을 없앴다. 높은 백신 접종률과 감염에 따른 면역 생성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미국과 유럽에서는 해외여행자가 폭증했다.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7월 1~4일)가 시작된 이달 1일 교통안전청(TSA)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인원은 249만 명으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3년 전 같은 날인 218만 명을 넘어섰다. 2019년 연휴가 시작된 7월 4일 목요일(275만 명)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억눌렸던 ‘보복 여행’이 시작된 듯하다.

사실, 한두 달 전만 해도 다수의 여행 계획이 취소될 수 있다는 예측이 꽤 있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6월 연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1%를 기록하면서 5월(8.6%) 고점 기록을 넘어섰다. 유럽과 신흥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비행기표 값이 많이 올랐다. 6월 CPI에서 항공료는 전년 대비 34% 뛰었다. 강한 수요와 항공사 직원 부족 등에 따른 공급 차질, 항공유 가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는 한국 통계청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국제 항공료는 전년 동월 대비 21.4% 올랐다. 인천과 유럽 주요 도시(런던·파리 등)의 왕복 항공권 가격(직항 기준)은 140만~200만 원대에서 최근 180만~350만 원까지 올랐다.

각종 교통비와 외식 물가까지 안 오른 것이 없는 상황에서 쉽사리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도 하늘을 날고자 하는 MZ세대(밀레니얼, Z세대)의 의지가 강렬했다.

미 차량 공유 업체 어베일이 최근 미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Z세대 중 72%가 올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도 68%나 됐다. X세대(60%), 6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51%)와 차이를 보였다. Z세대 여행자 중 51%는 해외여행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휴가철이 오면서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신용카드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스티브 스쿼리 최고경영자(CEO)는 22일 2분기(4~6월) 실적발표에서 “글로벌 여행과 엔터테인먼트에서의 강한 소비가 매출에 반영됐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 카드 회원의 지출이 48% 증가했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험난한 출발과 좌초된 캐리어들

문제는 여행 업계가 여행객들의 마음만큼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한 달 동안 유럽의 주요 공항에서는 매일 수백 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영국 런던 히스로(히드로) 공항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스키폴) 공항에서는 탑승객들이 보안 검색대에서 최대 6시간을 기다렸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터미널 밖 주차장까지 넘쳐흘렀다.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가 취소된 것을 확인하러 히스로 공항을 찾은 엘리자 글래스 씨(28)는 “정보가 없어서 혼란스럽고, (비행편 취소로) 좌절한 사람들로 공항이 가득 찼다. 한 시간 동안 빙글빙글 돌다가 가방에 걸터앉아 펑펑 울었다”고 지난달 14일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항적 정보제공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이달 2, 3일 미국에서 28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됐고, 2만644편이 지연됐다.

플라이트웨어는 5월 26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주요 공항의 예정 항공편 지연 비율을 집계했다. 최악은 52.5%가 지연된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45.4%)과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43.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41.5%)도 10대 중 4대 넘는 비행기가 제때 출발·도착을 하지 못했다. 런던 개트윅(41.1%)과 히스로(40.5%) 등 영국의 2개 공항도 상위권에 올랐다.

승무원도 하루하루가 악몽 같다. 한 지상직 승무원은 “20년 업무 동안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며 “많은 사람이 결혼식과 장례식, 크루즈 여행 등 중요한 일을 놓치며 우는 것을 봤다. 그 눈물은 정말, 거짓 없는 ‘진짜’였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NYT에 털어놨다.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캐리어가 못 탔을 수 있다. 최근 온라인에는 각국 공항에 방치돼 있는 수천 개의 수하물(캐리어)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4일 한 트위터 사용자가 올린 영국 히스로 공항의 모습. 수백 개의 여행용 캐리어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공항에 방치돼 있다. 해당 트위터에는 “한 달 넘게 수하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악몽과도 같은 여행이었다” 등의 답글이 수십 개 달렸다. 트위터 캡처


● ‘에어마겟돈’(에어포트+아마겟돈)

공항이 이처럼 혼란스러운 이유는 인력 부족 탓이다. 보안을 담당하는 공항 직원과 지상직·객실승무원, 조종사 등 모두 부족한 상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당장 지상직이 부족해 가방을 검색하거나 탑승권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객실승무원 부족은 항공편 취소까지 불러오고 있다. NYT는 “승무원은 안전 때문에 법적으로 한 번에 12~16시간의 업무 시간제한이 있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백업 승무원이 많지 않아 항공편이 취소될 수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비행기를 조종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올리버와이먼은 올해 말까지 북미에서만 8000명 이상의 조종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콧 커비 유나이티드항공 CEO는 “대부분의 항공사가 조종사 부족을 겪고 있어서 항공편을 얼마나 제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면서 “최소 5년 동안 부족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항공사들도 이 같은 상황을 예측 못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항공사들은 올해 4월 전달보다 관련 인력을 5000명 이상 더 고용했다. 2019년 4월보다는 1만6000명을 늘렸다.

항공사들은 인력을 더 뽑고 싶었지만, 규정이 문제였다. CNN에 따르면 미국에서 항공 관련 직원을 고용하려면 최대 4개월의 신원 조회와 허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조종사는 18개월 이상의 교육 과정도 필요하다. 말라키 블랙 미국 지역항공사연합 대표는 “항공기 조종사는 자격증 취득이 어려운 데다 훈련비용도 비싸 바로바로 구하기 어렵다”며 “들어오는 조종사보다 나가는 조종사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참다못한 영국 히스로 공항이 12일 출발 승객 수를 하루 10만 명으로 제한했다. 항공사에는 여름철 항공권 판매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장시간 대기와 결항, 수하물 분실 등으로 대혼란을 겪는 ‘에어마겟돈’(에어포트+아마겟돈)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존 홀랜드 케이 히스로 공항 CEO는 “승객들이 안전한 여행을 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며 “9월까지 승객 수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크게 반발했다. 1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에미레이트항공은 “하루 10만 명의 출발 승객 한도는 허공에서 뽑아낸 말도 안 되는 수치”라며 “요구를 거절한다”고 밝혔다. 항공편 운항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FT는 “주요 항공사와 공항이 운항 여부에 이견을 보이는 건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수천 명의 승객이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뉴시스


● 미국인들의 인플레이션으로부터의 휴식

운항편을 줄인 것은 히스로 공항만이 아니다. 스히폴 공항도 2019년 대비 승객 수를 약 16% 줄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 역시 피크 타임의 항공편을 시간당 104회에서 94회로 축소했다. 유럽 주요 공항 대부분이 난리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여행객들이 유럽에 더 몰렸을 가능성이 크다. 대다수 국가가 해외 입국자의 격리 의무 조치를 해제했지만, 아직 많은 나라들이 PCR 음성 확인서와 백신 접종 증명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싱가포르, 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여행보험에 가입하게 하거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이런 규정을 전면 해제했다. 여행객들이 백신 접종이나 검사 결과 등을 증빙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뜩이나 오랜만에 떠나는 해외여행. 코로나19 관련 서류까지 신경 쓰기보다는 익숙한 유럽을 목적지로 택했을 수 있어 보인다.

특히, ‘킹달러’를 지닌 미국인들이 유럽으로 많이 향했을 수 있다. 최근 유로화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미국인들이 과거보다 저렴하게 유럽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달 12일 유로·달러 환율은 1대1 패리티(1유로=1달러)를 기록했다. 유로화 가치가 한때 1달러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유로와 달러의 화폐 가치는 1대 1.1 수준을 유지해왔는데, 유로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다.

이 같은 패리티는 2002년 이후 20년 만이다. 유로화는 1999년 처음 도입됐고, 2002년 유로존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 초반 미국 경제는 좋은 반면 유로존 경기가 침체해 1유로의 가치가 0.83달러까지 하락했었지만, 이후 유로화가 적극적으로 쓰이면서 2002년 말 이후부터는 1유로의 가치가 1달러를 웃돌았다. 금융 위기로 미국 경제가 주저앉은 2008년에는 1유로의 가치가 1.6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패리티가 미국 사람들에게는 유럽 여행하기 유리한 여건인 셈이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디자이너 알리사 브라운 씨(26)는 “파리에서 생로랑 브랜드의 선셋 미디엄 체인백을 사는데 1833달러(약 240만 원)를 썼다. 미국 가격인 2550달러(약 333만 원)보다 700달러(약 93만 원) 이상 저렴했다”고 WSJ에 말했다.

미 부가가치세(VAT) 환급 제공업체인 플래닛에 따르면 올해 6월 미국 여행객들이 유럽에서 쓴 금액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6월보다 56% 증가했다. 주로, 명품 가방과 보석, 시계 등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미국인들의 유럽 여행은 인플레이션으로부터의 휴식을 제공한다”며 “달러의 강세가 유럽의 높은 비용 중 일부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18일 전했다. NYT는 ‘해외여행 중 최대한 돈 벌기’라는 기사에서 “2008년에는 로마에서 5유로(약 6700원)짜리 와인 한 잔이 8달러(약 1만500원) 정도였는데, 현재 화폐 비율로는 5.2달러(약 6800원)면 마실 수 있다. 올해 여름 파리의 100유로(약 13만3000원)짜리 임대 아파트는 104달러(약 13만7000원)면 묵을 수 있지만, 유로 화폐가치가 정점이었을 때는 158달러(약 20만7000원)였을 수 있다”고 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유로·달러의 1대1 패리티(1유로=1달러)로 미국 여행자가 저렴하게 유럽을 여행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WSJ 홈페이지 캡처


● 달러, 왜 강할까?

달러는 왜 강하고, 유로화는 왜 약할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 움직임 때문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80년대 초반 이후 가장 가파른 통화긴축에 돌입했다. (인플레이션은 신비월드 15화, “치솟은 주가가 지구로 돌아왔다. 파티는 끝났다”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최근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연이어 단행했다. 이자율은 환율의 중요한 결정 요소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돈은 더 높은 이자율을 쫓아 국경을 넘는다. 해당 국가의 자산이 더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달러 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강(强)달러는 미국 내 수입 물가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경기 침체 전망이 더해지면서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의 심리도 더해졌다.

참다못한 유럽중앙은행(ECB)도 21일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했다. 유럽중앙은행의 11년 만의 금리 인상이었다. 유럽의 기준금리는 이제야 0.50%가 됐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2.25~2.50%다. 아직 격차가 크다.

유럽도 미국만큼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지만, 금리를 따라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리를 올려봐야 금리 인상 목적인 ‘인플레이션’이 잡힐 것 같지도 않다. 물가의 큰 축을 차지하는 에너지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천연가스의 40%를 수입하던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수급 차질에 직면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스 공급을 점점 더 무기로 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이탈리아의 내년 GDP가 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모두 러시아 가스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70%가 넘는 국가들이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제 붕괴 우려가 유로화의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픽사베이(pixabay.com)


● 더블룸 가격의 싱글룸 숙박

미국인들이 달러 강세를 누리더라도 코로나19 이전보다 험난한 해외여행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비행기 티켓값의 급격한 상승과 혼잡한 공항 관문을 버텨도 숙박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수요가 몰려 방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여행사 지카소의 직원인 탄 씨는 “이탈리아의 로마, 피렌체 같이 인기 있는 목적지는 객실이 완전히 예약돼 있다”며 “포르투갈이나 크로아티아처럼 덜 인기 있는 곳으로 가야 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올해 여름에는 호텔 예약이 주말에 더 몰릴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출장 수요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면서 여행객들 위주로 고객이 구성됐기 때문이다.

스테파니 린나츠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사장은 “비즈니스 여행객이 집으로 돌아가는 목요일을 매니저들이 ‘체크아웃의 밤’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주말 휴가가 길어진 여행객들로 목요일이 ‘체크인의 밤’으로 뒤집혔다”고 했다. 이는 요일과 시즌별로 수요에 맞춰 가격을 책정하는 호텔에게 주말 객실 요금을 더 비싸게 받을 요인이 된다.

올해 들어 호텔 운영비가 급격하게 오른 것도 있다. WSJ은 “인건비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용품 가격 상승으로 호텔 운영비용이 상승했다. 숙박비용이 높아졌지만, 더 나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글로벌 호텔 데이터 분석 회사 STR에 따르면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유럽의 호텔 객실의 일평균 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로 퍼진 인플레이션이 여행객들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탄 씨는 “지난해 크로아티아의 미쉐린(미슐랭)가이드 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는데 이후 메뉴 가격이 20% 상승했다”고 WSJ에 말했다. 여행 플랫폼 투어리스트져니는 “이탈리아 여행비가 지난해 여름보다 6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 모습. 출처: 픽사베이(pixabay.com)


●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해외여행

설레고 즐거운 해외여행을 앞두고 머릿속 숫자 계산을 잠시 내려놨다고 치자. 그래도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남아 있다.

현지에서의 이동 수단을 면밀하게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는 렌터카 업계에서 공항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고객도 모르게 예약이 취소되는 일이 더러 발생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모펀드에서 일하는 에릭 라이트 씨는 “필라델피아에 예약한 렌터카가 나도 모르게 예약이 취소돼 있었다. 우버에서 세 배 많은 돈을 써야 했다”고 했다.

국가에 따라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미국 뉴욕의 지하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3분의 2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오클랜드의 버스도 3년 전의 절반만 돌고 있다. 영국은 파업과 기록적인 폭염으로 열차 운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식당, 가게에서 현금을 안 받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비대면 주문·결제를 도입한 곳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 여행객은 “영국 지방의 작은 술집에서도 카드를 받았다. 한 인도 식당에서도 ‘이제 더 이상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NYT에 전했다. 현금보다 해외 결제가 가능한 카드를 준비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달 터키로 취재를 하러 갔을 때 메뉴판이 없는 식당이 꽤 있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QR코드를 사진 찍어 스마트폰으로 메뉴를 보게 바꿔놓은 것이다. 직원이나 물건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려는 이유에서다. 고객 숫자가 감소한 만큼 직원 숫자를 최소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 같다. 처음 메뉴 글자를 영문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여정이 끝나갈 무렵 코로나19 증세가 나타난다면, 그것보다 심각한 상황이 없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두고 돌아와야 한다.

20일 승객들이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열차 일정을 확인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파업과 기록적인 폭염에 따른 설비 문제로 열차 운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 아직은 요원한 여행 산업의 회복

2018년 전 세계 사람들은 14억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2000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이 쓴 돈도 어마어마하다. 코로나19 이전에 전 세계 관광객들은 매년 1조6000억 달러(약 2100조 원)를 지출했다. 스페인 GDP보다 큰 규모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비행기 조종사부터 여행 가이드, 리조트에서 일하는 청소부까지 전 세계 약 3억3000만 개의 일자리가 여행 산업에서 비롯됐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인 관광객에게 상그리아를 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술집은 수출업자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주류를 수출한 것과 맞먹을 수 있다”며 “관광산업은 전 세계 수출 수익의 원천이며 식품, 자동차 산업보다 규모가 크다”고 했다. 각국이 뜨거운 관광객 유치전을 펼치는 이유다.

과거 18세기 귀족들은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 마차에 가방과 가구 등을 가득 싣고, 하인을 태워 갔다고 한다. 19세기에는 일부 부유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여행이 유행처럼 번졌고, 1970년대부터 일부 관광객과 출장을 떠나는 경영진들로 공항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바퀴 달린 가방(캐리어)은 ‘대중 여행의 시대’를 상징한다”고 평했다.

대중 여행의 시대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추억을 쌓는 기회를 안겼다. 기업과 공급망을 연결한 측면도 있었다. 사람(직원)과 물건을 빠르게, 대량으로 옮길 수 있게 만들었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2020년 3월 전 세계 5분의 4가 국경을 닫으면서 중단됐던 해외여행이 올해 들어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코로나19 이전과 다른 느낌이다. 돈도 문제지만, 바이러스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이 남아있다. 국가별로 요구하는 여행 조건들도 신경이 쓰인다.

간절하지만 험난한 해외여행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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