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전약후] 루스벨트의 생이 끝난 순간..혈압약의 역사가 시작됐다
90년대 들어 CCB·ARB 계열 단일성분 신약 쏟아져..특허만료로 복제약 및 여러 성분 넣은 복합제 봇물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고혈압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큰 질병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고혈압은 혈액 순환을 용이하게 하려는 신체의 보상 기전일 뿐이란 인식에, 혈압을 인위적으로 낮추려는 생각은 배척되곤 했다.
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6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급서하는 사건 이후 그 원인을 놓고 국가적 관심이 높아졌다. 지금으로 치면 악성 고혈압 환자일 정도의 높은 혈압을 갖고 있던 그였지만 당시 분위기대로 대통령조차 고혈압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주치의는 고령에 따른 자연스러운 정도의 혈압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다만 당시 미국인 사망원인 1,2위였던 심장질환과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 현직 대통령의 사망으로 집중 조명됐고, 국가심장법안 제정과 국립심장연구소 설립 등으로 이어졌다.
고혈압이 심장질환의 주요 위험인자라는 사실은, 매사추세츠주 작은 마을인 프레이밍햄 전체를 대상으로 1948년 대규모의 장기 코호트 연구인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가 시작된 지 9년이 지난 1957년에야 밝혀졌다. 그제서야 혈압을 낮춰 심혈관 발생 위험을 낮출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70년도 되지 않았을 때 얘기다.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찾는 노력 끝에 이뇨제가 주목받았고, 베타차단제 등 발전된 혈압약들이 선보였다. 1990년대 들어선 획기적인 신약(먹는 약)들이 쏟아졌다. 이 약 성분들은 지금까지도 복합제 개발에 사용되는 '스테디셀러'로서 전세계인들의 혈압 관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약이 미국 화이자사의 전문의약품 '노바스크(성분 암로디핀)'다. 우리나라에서 1990년 첫 허가를 받고 출시된 노바스크는 한 때 처방 1위를 기록하며 국민 고혈압 약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연간 매출 100억원만 거둬도 블록버스터급 치료제로 불리던 2001년에는 무려 국내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현재 노바스크 판권은 화이자의 특허만료 약 사업부문과 외국계 기업 마일란이 합병한 비아트리스가 갖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다른 계열의 고혈압 신약 성분인 '사르탄' 시리즈가 우후죽순 출시됐다. 미국 제약사 MSD의 '로사르탄'을 시작으로 스위스 노바티스의 '발사르탄',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칸데사르탄',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의 '텔미사르탄',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올메사르탄'이 1995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차례로 허가를 받고 처방이 시작됐다.
암로디핀과 사르탄은 각각 현재 고혈압 치료제의 양대 축인 CCB(칼슘채널차단제)와 ARB(안지오텐신II 수용체 차단제) 계열 성분이다.
CCB 계열 치료제는 심장 세포막에 위치한 칼슘채널을 차단해 혈관을 확장하는 원리로 혈압을 낮춘다.
ARB 계열 치료제는 체내 'RAAS(Renin-Angiotensin Aldosterone system)'에서 안지오텐신II 수용체를 차단해 혈압 상승을 막는다.
이외 다른 계열 고혈압 치료제로는 이뇨 작용을 촉진해 혈압을 떨어뜨리는 이뇨제와 교감신경 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저해제(ACEI) 등이 있다.
고혈압 치료제는 특허가 만료되면서 수많은 복제약 혹은 복합제 개발로 이어졌다. 이를 테면, 2013년은 고혈압 복제약 개발 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던 해로 꼽힌다. 그 해 텔미사르탄(ARB)이 특허 만료를 앞둔 상태에서 LG생명과학(현 LG화학) 등 20여곳의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복제약 허가를 받았다. 또 암로디핀(CCB)과 발사르탄(ARB) 성분 복합제인 노바티스의 엑스포지 그리고 성분 올메사르탄(ARB)이 같은 해 특허가 끝났다. 국내 기업들이 비집고 들어갈 이들 시장규모는 2000억원이 넘었다.
오리지널 약들이 하나, 둘 특허가 끝나자 발 빠르게 복합제 개발에 속도를 내온 국내 제약사들이 외국기업들을 밀치고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한미약품은 2009년 6월 아모잘탄(복합성분 암로디핀·로사르탄)을 출시했는데, 이 약은 회사의 최대 효자 품목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까지 아모잘탄은 다른 성분이 1~2개씩 더해지면서 총 4종의 '아모잘탄 복합제 제품군'으로 성장했다. 이 제품군은 지난해 12월 31일까지 누적 처방 1조원을 돌파하며 국내 처방액 1위를 유지 중이다. 누적 판매량은 11억5776만여정에 달한다.
아모잘탄 제품군 4종은 Δ아모잘탄 Δ아모잘탄에 고혈압 치료성분(클로르탈리돈)을 더한 3제 복합제 아모잘탄플러스 Δ아모잘탄에 이상지질혈증 치료성분(로수바스타틴)을 더한 3제 복합제 아모잘탄큐 Δ아모잘탄큐에 이상지질혈증 치료성분(에제티미브)을 더한 4제 복합제 아모잘탄엑스큐 등이다.
국내 다른 제약사 보령의 경우는 자체 ARB 신약 카나브(성분 피마사르탄)를 개발한 뒤 2제 복합제 듀카브(피마사르탄, 암로디핀) 그리고 여기에 이뇨제인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를 더한 3제 복합제 듀카브플러스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틈새시장을 향한 4개 성분 복합제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종근당이 고혈압·고지혈증 치료용 4제 복합제인 '누보로젯정(누보로젯, CKD-348)'을 지난 20일 허가받았다. 누보로젯 성분은 텔미사르탄과 암로디핀 그리고 고지혈증 치료를 위한 '에제티미브'와 '로수바스타틴' 등 총 4개로 구성돼 있다. 만성질환인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상관관계가 크다보니 복합제 개발 열기가 계속 뜨거운 상태다.
또 유한양행의 '듀오웰에이플러스정'이 지난 5월 20일, GC녹십자의 '로제텔핀정'이 같은 달 23일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들 제품은 모두 누보로젯과 성분이 모두 동일하고, 각 성분별 용량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고혈압 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1조8000억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고혈압·이상지질혈증 복합제 시장 규모는 11.1% 수준인 약 2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고혈압은 18세 이상의 성인에서 수축기 혈압이 140mmHg 이상이거나 확장기 혈압이 90mmHg이상인 경우를 의미한다. 고혈압 전단계부터 주의를 기울여 고혈압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게 좋다. 고혈압으로 판단되면 전문의 진료를 거쳐 자신에 맞는 처방을 받아야 한다.
고혈압 약은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통설이 널리 자리잡으면서 가까이 하기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체중을 줄이고 생활습관을 고치면 약을 줄이거나 끊을 수도 있다.
l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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