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이상 외환거래 경고 무시한 은행들..'뒷북' 대책 마련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이지헌 민선희 오주현 김유아 기자 = 거액의 이상 외환거래가 국내 여러 은행에서 발견되자 금융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은행들도 내부적으로 점검을 시행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외환거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자 은행들이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들, 외환거래 점검 강화…전산 시스템 개선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송금액이 5천만달러 이상인 외환거래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이상 거래 의심 건 등이 포함된 자료를 지난 29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이는 지난달 말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비정상적인 수조원대 외환거래가 발견되자 금감원이 이달 초 국내 은행들에 유사한 거래가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고 그 결과를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금감원은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검토한 뒤 필요하면 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주요 점검 대상 거래 규모는 53억7천만달러(약 7조원) 수준이다.
점검해야 할 외환거래의 규모가 작지 않은 데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 우려마저 나오는 가운데 은행들은 각자 외환거래 점검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우선 하나은행은 내달 중 외화 송금의 적정성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팀을 본점에 꾸리고, 영업점에서 특이사항이 있다고 판단되는 외화 송금 거래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한 번 더 들여다볼 예정이다.
또 이상 외환거래를 선별하는 기준을 내부적으로 마련하고, 사기·편취 등이 의심되는 수출입거래를 감지하는 자체 경보 시스템 '트레이드워치'(Trade Watch)에 적용해 4분기 중에는 외환거래 관련 위험요인도 자동으로 걸러낼 수 있도록 한다.
이외에도 다음 달부터 영업점 직원들이 외국환거래 업무를 처리할 때 법상으로 문제가 없는 송금인지, 제출받은 서류는 사실과 일치하는지 등 세부 내용을 더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에 '체크박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외국환 거래에 전문화된 은행으로서 시스템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도 해외 송금을 처리할 때는 추가 정보를 요청해 거래 진정성이나 자금 원천을 미리 확인하고, 자금세탁 방지 관련 사항도 고려해 유관 부서와 협의하도록 하는 등 주의 환기 조치를 시행했다.
이달 초에는 금감원의 요청과 별개로 전 영업점에 대해 외환거래에 대한 증빙서류 유무, 업체 규모 대비 송금 규모의 적정성 등에 대해 특별 점검했다.
다른 은행들은 일단 금감원의 조사 결과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지난해부터 외환송금 관련 수 차례 '경고'
지난해부터 금감원이 외환거래법 상 확인 의무 등을 강화하라고 은행들에 경고했음에도 빠르게 대처하지 않아 이번 이상 외환거래 사태가 확대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초부터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 거래가 늘자 같은 해 4월 5대 시중은행 외환 담당 부서장을 상대로 화상회의를 열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는 하나은행에서 3천억원대 외환거래를 적발한 직후다. 그해 5월에는 하나은행에 검사를 나가 다른 은행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신호를 줬다는 게 금감원 입장이다.
당시 적발된 건으로 하나은행의 관련 영업점은 과징금 5천만원에 4개월의 업무 일부 정지 처분을 받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거래가 많았다. 가상화폐는 외국환거래법상 근거가 없는 상품인데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니 관련해 확인을 철저하게 해달라고 은행들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외환 송금 과정에서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호소도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외환거래를 하려는 업체가 실제로 제출한 서류대로 업무를 하는지 등에 대해 현장 실사를 할 강제 수단도 없는 데다 고객이 가상화폐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면 일방적으로 거래를 거절할 방법은 많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세무서 근처 지점에는 사업장을 열자마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확인 의무가 없음에도 실제로 사업장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업체가 보내는 돈의 출처를 작정하고 숨긴다면 은행도 이를 알아낼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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