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토크] 이창용 한은 총재, 왜 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 접견했을까

김문관 기자 2022. 7.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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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의장 접견, 극히 이례적인 일"
한은 관계자들 "대외활동 활발한 총재" 평가
의장 접견도 이 총재 요청에 따른 것으로 파악
대표 '국제통' 경험 살린 활동도 눈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이례적으로 국회의장을 예방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일고 있다. 국회의장이 통화정책의 수장인 한은 총재를 일대일로 접견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20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오후 김진표 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이 총재를 만나 “경제부처가 한목소리를 내 시장관계자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위기가 오지 않도록 경제팀과 적극 협조”라는 메시지를 냈다고 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오른쪽)이 지난 20일 오후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정치권과 한은에 따르면, 김 의장은 지난 20일 오후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접견하고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외환위기를 극복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전 국민의 단합과 통합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일수록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간 회의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며 “경제부처가 한목소리를 내서 시장 관계자들을 안심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총재는 “김 의장이 1997년을 말씀했는데 그런 위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제부처 다른 팀과 같이해서 그런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열심히 노력하고 많은 조언을 부탁한다”고 답했다.

특히 김 의장은 “미국이 이달 말 기준금리를 얼마나 올리느냐에 따라 한미금리 역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이는 초유의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국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26∼27일(현지시각)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단행할 경우 한국(2.25%)과 미국의 기준금리(2.25∼2.50%)가 역전돼 외화가 유출될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후 지난 27일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금리를 0.75%p 실제로 인상했다. 이 총재는 접견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과 고유가의 여파가 이어지는 향후 3개월이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위기가 오지 않도록 경제팀과 적극 협조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날 접견에는 박경미 의장비서실장과 고재학 공보수석비서관이 함께했다. 국회에 따르면 해당 접견은 이 총재의 아이디어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신조처럼 여겼던 역대 한은 총재들은 정치권과 거리두기를 해왔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정부 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정치적으로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한은 총재가 정치인을 공개된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금기시됐었다. 더구나 한은법 등 한은과 관련된 입법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을 만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창용 총재의 국회의장 예방은 종전 관례를 깨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은 출신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 총재가 국회의장을 단독으로 접견하고 통화정책 메시지를 냈던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복수의 한은 관계자들은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누가 먼저 요청했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이 총재가 여기저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한은 총재가 개인적으로 누굴 만나도 조용히 만나서 보도자료화까지 되지는 않았는데 이 총재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총재와 김진표 의장의 개인적인 인연을 만남의 배경으로 거론한다. 재정경제부 차관,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 의장은 관료로 재임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이 총재와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후에도 지난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내던 시절 이 총재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한은 여성 직원들과 만나 '경제학계와 여성'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한국인 첫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국장을 역임하는 등 대표적인 ‘국제통’인 이 총재의 활발한 대외활동 중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의 ‘깜짝’ 한은 강의였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을 찾아 “그 모든 좌석을 채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젊은 여성들을 보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했다. 이날 옐런 장관은 ‘경제학계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한은에서 근무하고 있는 30여 명의 여성 직원들과 대담을 진행했다. 여성 경제학자로서의 소회와 여성들의 활약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이 같은 이 총재의 행보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총재가 김 의장을 만났던 지난 20일은 국회 상임위 위원장 배분 등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정부 경제정책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이 총재가 야당 출신 김진표 의장을 만나 통화 정책 관련 논의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류가 강하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어쨌든 ‘이창용 한은 총재 임명’이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행사한 고위 공직자 인사였다는 점을 여권에서는 탐탁지 않은 기억으로 생각할 것”이라면서 “이 총재가 광폭 행보를 하는 게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지켜왔던 관행과 행동 준칙을 어길 경우 쓸데없는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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