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루나 사태' 예상한 박선영 교수 "코인, 공시·불공정 거래 제재 필요"
623개 코인, 일부는 없어지겠지만 상승장 또 온다"
“미국의 금융 역사상 1837년부터 1863년까지를 자유은행 시대(Free banking era·중앙은행이 아닌 여러 민간은행이 각기 다른 가치로 은행권을 발행한 시기)라고 부른다. 이때도 어느 은행이 안전할지 몰라서 끊임없이 뱅크런(대량예금인출)이 발생하곤 했는데 이는 1934년 예금보험이 도입될 때까지 지속됐다. 결국 스테이블코인(stablecoin·달러 같은 현실자산과 액면 가치가 연동되는 코인) 발행사에도 언젠간 뱅크런이 발생할 것이다.”
가상자산 전문가로 꼽히는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작년 8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이후 올해 5월 스테이블코인을 자처하며 가치가 수십조원에 달했던 가상화폐 테라·루나가 불과 며칠 만에 0원이 된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했다. 글로벌 유동성이 말라가며 주식시장 이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는 가상화폐(코인)시장은 ‘스테이블코인 쇼크’까지 겹치며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시 중구 동국대 캠퍼스에서 만난 박 교수는 “테라가 망했다고 가상화폐가 다 사기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금융사이클에 따라 글로벌 주식시장의 상승장이 올 때 가상화폐 시장도 똑같이, 지금보다 더 많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번 사이클이 오기 전에 국제적 정합성에 맞는 가상자산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와 한국자본시장연구원을 거쳐 2020년부터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코인이었던 테라·루나가 한순간에 폭락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측했나.
“금융 시장이 발전해온 경로가 있다. 현재의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 가상자산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보면 스테이블코인의 붕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은 예금보험공사도 있고,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의 최종 대부자 역할도 한다. 이게 없으면 망한다는 걸 배워서 금융 안전망이 갖춰진 것이다. 테라·루나가 달러에 연동돼 있다고 했지만, 발행사가 보유하고 있는 담보(달러)만큼 코인을 발행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없었다. 100명이 100달러 상당의 스테이블 코인을 달러로 바꿔 달라고 했을 때 발행사가 이를 갖고 있지 않으면 못 줄 가능성이 큰 거다. 뱅크런 위험이 항상 존재했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가상화폐 투자심리도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스테이블 코인이 지속 가능하지 못했던 쇼크가 분명히 영향을 줬다. 여기에 금리 상승으로 유동성이 줄어드는 것도 겹쳤다. 가상화폐 시가총액이 약 8개월 사이 3조2000억달러에서 최근 1조달러가 됐다. 우리돈으로 2000조원 이상이 증발한 것이다. 2000조원은 우리나라 코스피·코스닥지수 전체 시가총액을 합친 수준이다. 코인 투자도 주식과 같다. 금융시장에서 이 침체기가 얼마나 갈 것인가, 그런 와중에 이 회사(발행사)가 잘할 것인가 두 가지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 프로젝트(코인) 하나하나가 스타트업이라고 보면 된다.”
-코인은 주식시장과 달리 투자자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많지 않다. 발행사가 내는 백서(사업계획서)만으론 충분하지 않은데.
“백서와 발행사의 기술을 분석하는 ‘쟁글’ 같은 코인 평가 회사 콘텐츠를 참고할 수 있다. 발행사가 백서에 주요 정보를 모두 담았는지,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투자자들이 지금 단계에서 검증할 방법은 없다.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여러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최근에 무비블록이라는 코인이 상장돼 있는 거래소 3곳에 유통량을 다 다르게 적어내 ‘유의 종목’으로 지정되는 일이 있었다. 투자자 입장에서 공시 문제가 있었던 거다. 회사 측이 소명해 지정이 해제됐는데, 그것이 공식화되기 전날에 가격이 30% 가까이 급등했다. 이건 불공정거래일 수 있다. 유의 종목에서 해제되는 정보(좋은 뉴스)가 사전에 유출됐을 가능성이다. 이런 일이 굉장히 만연해있을 것이다. 공시 의무와 불공정거래 제재 두 가지가 가장 필요하다.
현재 가상자산과 관련된 13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공시에 대한 부분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공시 주체를 발행사가 할 것인지, 거래소가 할지는 다르게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공시 의무를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거래소 발행(IEO)’이라는 안전장치를 도입해 투자자를 보호하겠다고 공약했다.
“지금 테라가 망하면 투자자가 피해를 보지만, IEO를 통해 테라가 상장됐으면 이에 대한 손실을 거래소가 물어줘야 한다. 거래소가 코인 상장 시 여러 검증을 충분히 하고,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면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공약에서의 IEO다. 당연히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칫 제도적 설계가 잘못되면 가뜩이나 여러 기능이 집중돼 있는 거래소를 더 키울 소지도 있다. 거래소가 책임지기 싫으니 정말 괜찮은 코인 아니면 상장을 안 시킬 수 있다. 스타트업과 같은 코인 발생사들의 상장이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각 프로젝트 생태계(발행시장)를 육성하겠다는 제도적 취지가 보장되기는커녕 거래소(유통시장)에 되레 권력이 집중될 여지도 있다.
거래소는 사업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불공정 거래를 금지하고 신의성실(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는 식이다. 이미 올라와 있는 법안에도 담겨져 있다. 현재 거래소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관련 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 영역에 대해서만 규제를 받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를 보면, 발행사의 내부 규율도 필요해 보인다.
“최근 국내 1위 대체불가능토큰(NFT) ‘메타콩즈’의 이두희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법인차량으로 2억원짜리 애스턴 마틴을 사서 사적으로 썼다는 내부 경영진 폭로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투자자 자금을 조달해서 이런 식으로 돈을 쓴다는 것이 스타트업에서도 일반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자 입장에선 당연히 좋게 안 보인다. 발행사의 내부 규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가상화폐에 투자하나.
“100만원 상당의 이더리움에 투자하고 있다. 코인 시장도 금융 사이클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코인 상승장이 올 것이냐’ 하는 질문은 ‘주식시장 상승장이 올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에 623개 코인이 상장돼 있다. 지금 상장돼 있는 코인이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려운 시기에 누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시가총액 상위 코인이라든지 기술적으로 괜찮은 발행사에 투자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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