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發 밥값 전쟁..식대 비과세 한도 상향 놓고 노사 '동상이몽'

윤희훈 기자 2022. 7.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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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식대 비과세 한도 10만원 → 20만원 확대 추진
月 300만원 급여 근로자 세부담 18만원 줄어
임금 항목 조정 아닌 '인상' 기대하는 근로자
경제계선 "기업 비용 증가로 귀결될까 우려"

직장인에 대한 식대 비과세 한도가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되면서, 기업 현장에서는 내년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서 ‘밥값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용자가 근로자 급여 항목 중 식대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려야 근로자들이 세금 절감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을 올리더라도 식대를 현재처럼 10만원으로 유지할 경우, 근로자는 세법 개정으로 인한 소득 증가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된다.

내년도 임금 인상분 일부를 돌려서 식대를 20만원으로 맞추면 근로자들은 정부가 약속한 세금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임금 인상 없이 기존 임금의 일부를 돌려 식대를 20만원으로 조정만 해도, 근로자는 세금 절감을 통한 소득 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반대로 사용자 측에서 기존 관행대로 식대 10만원을 유지하면, 근로자는 정부가 제공하는 세금 절감 기회를 누릴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내년 임단협 등에서 식대가 노사간의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식대를 20만원으로 올려, 근로자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세금 절감을 통한 임금 소득 증가 효과를 내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식대가 늘어나는 만큼 급여가 인상되기를 기대한다. 내년 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노사간의 동상이몽이 임단협 이슈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6일 점심시간 서울의 한 식당가. /연합뉴스

◇ “임금 중 일부를 식대로” vs “비과세 한도에 맞춰 식대 인상해야”

3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근로소득자의 세부담 완화를 위해 식대의 비과세 한도를 현행 월 10만원에서 월 20만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행 소득세법령은 근로자의 월 급여에 포함되는 10만원 이하의 식대를 비과세 소득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비과세 한도를 월 20만원으로 늘리겠다는 게 정부안이다. 식대 비과세 한도가 높아지면, 회사에서 받는 연봉은 그대로더라도 소득세를 더 적게 내게 된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 같은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에 따라, 총급여 ▲4000만원이면 세금이 약 18만원 감소 ▲6000만원이면 세금이 약 18만원 감소 ▲8000만원이면 세금이 약 29만원 감소하는 효과를 받는다. 정부는 급여 수준이 동일하더라도, 식대로 지급되는 소득이 20만으로 확대되면 세금 감소에 따른 소득 증대 효과가 발생한다.

근로자와 사용자 간 ‘밥값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세법 개정에 따라, 사용자 측은 급여 항목 중 식대 비중을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과세 대상 급여 중 10만원을 식대 명목으로 지급함으로써 근로자의 세부담이 줄어 실질 소득이 인상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근로자들은 기존 급여는 종전 수준을 유지한 채, 식대가 비과세 한도만큼 인상되길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 근로자 입장에선 세부담 완화를 넘어 근로 소득 자체가 늘어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손민균

◇ 식대 비과세 확대로 세부담 얼마나 줄어드나

월 급여 300만원인 근로자를 가정해 이번 세법 개정으로 인한 소득 증가 효과를 분석해 봤다. 월 급여 300만원, 연봉 3600만원인 근로자는 현재 매달 10만원씩 연간 120만원의 소득이 식대 명목으로 지급돼 비과세되고 있다. 이 구간 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은 15%로, 120만원의 15%에 해당하는 18만원의 감세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측이 현재대로 근로자의 임금 구조를 ‘290만원(식대 외 급여)+10만원(식대)’으로 놓으면, 근로자의 세금 절감액은 18만원 수준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사용자 측이 급여 구조에서 식대를 늘려 ‘280만원+20만원(식대)’으로 조정하면 근로자들은 세금 감면액이 36만원으로 늘어난다. 급여 항목에서 식대를 10만원 늘리는 것만으로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이 18만원 늘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비과세 항목을 제외하고 과세항목에만 부과되는 4대 보험료도 줄어드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특히 4대 보험료는 사용자도 함께 부담한다는 점에서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는 사업주에게도 돌아가게 된다.

연봉이 7800만원(월급여 650만원)을 초과해 과세표준이 5000만원이 넘는 근로자들은 감세 혜택이 더 크다. 과세표준 5000만원 이상에 적용되는 세율은 24%로, 연간 120만원의 소득이 비과세 대상이 되면서 세금이 28만8000원 감소하게 된다.

적지 않은 혜택이지만 근로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급여 항목 간 가감으로 조정할 게 아니라 식대 자체를 증액해야 한다는 게 근로자들의 희망사항이다. 만약, 기업이 식대 인상분 10만원을 고스란히 임금 증액으로 늘릴 경우 근로자의 급여액은 310만원(290만원+20만원)이 된다. 세금 절감액이 18만원 늘고, 명목 급여 120만원이 늘어 총 138만원 가량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차와 관련해, 경제계에서는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가 근로자의 임금 확대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 조치가 회사에 따라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근로자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정책이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열린 현대차 노사의 2022년 임금협상 조인식에서 이동석 현대차 대표이사와 안현호 현대차지부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뉴스1

◇ 식대 비과세 한도 상향은 뜨거운 감자…인사 담당자들 ‘곤혹’

실제로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후 식대 인상 방안을 놓고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인사 실무자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카페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 인사 담당자는 “정부 안으로 봤을 때는 동일한 연봉 내에서 비과세 비율을 높이는 게 합리적인 안으로 보인다”면서도 “직원들이 식대로 돌리면서 줄어든 급여 항목을 들고 와 ‘왜 이 항목이 줄었나’라고 따질 것 같은데, 걱정이 많다”고 했다.

다른 인사 담당자는 “신입 최저 임금을 190만원으로 산정하고 여기에 식대를 10만원 지급하는 형식으로 급여 체계를 운용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식대를 20만원으로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직원들 입장에선 감세 혜택이 있지만, 원천징수액이 줄어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로서는 식대 항목을 증액하지 않으면, 근로자들의 세금 절감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식대 증액만큼 임금을 인상하는 것도, 다른 급여 항목액을 줄여 식대를 늘리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 한국공인노무사회 관계자는 “식대는 지급 의무가 있는 법정수당이 아니기 때문에, 비과세 한도가 상향 조정됐다고 해서 10만원이던 식대를 2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해석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봉 인상분을 식대로 반영하여 조정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겠으나, 사용자가 임의로 비과세 혜택을 위해 연봉 총액을 유지한 상태에서 식대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조정하면서 그만큼 기본급을 낮추는 것은 통상임금 저하 등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며 “그럴 경우 임금 조정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 19년 전 책정된 식대 10만원… 그동안 외식물가는 70% 뛰어

일정 수준의 식대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식대가 ‘실비변상적 급여’이기 때문이다. 업무를 하면서 사용한 경비를 보전해주는 성격의 급여라는 것이다. 식비 외에도 차량유지비라고 부르는 ‘자가운전보조금’이나 ‘연구활동비’도 같은 이유로 비과세 대상이 된다.

정부가 식대 비과세 한도를 10만원으로 책정한 것은 지난 2003년이다. 당시 5만원이던 비과세 한도를 10만원으로 2배 증액했다. 이후 19년동안 식대 비과세 한도는 변화가 없었다. 직장인들은 이 같은 비과세 한도가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19년 전에야 한끼를 5000원 정도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만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외식물가는 2배 가까이 뛰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6월 외식물가지수는 110.67로 식대 비과세 한도가 책정됐던 2003년 6월(65.87) 대비 68.2% 올랐다. 특히 국제 곡물·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최근 1년 사이에만 외식 물가가 8% 뛴 상황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그간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해 근로자의 식사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비과세 한도를 상향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도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에 대해선 여야 간 의견 차이가 없어 비과세 조정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비과세 한도 확대로 인한 수혜자는 1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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